"누가 들어왔어."
기억은 주관적이다. 따라서 진실도 주관적이다.
몽유병은 정말 남편이었을까.
엔딩 씬은 묻는다.
방금 전까지 살인을 예고하며 악다구니를 써댔던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 순식간에 코를 곤다.
과연 그동안 집안을 헤집으며 애완견을 냉동고에 넣었던 게 정말 남편이었던 게 맞을까.
기억은 주관적이고, 그래서 왜곡된다.
내가 "우리편"인 건 그 생각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줄곧 아내의 시점에서 이어졌다.
한 시간 반 내내 그러다가,
마지막 1초에 아내가 코를 골며 암전된다.
그 순간, 영화가 끝나고,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그제야 여태 딱히 눈여겨 보지 않았던 영화 포스터에서 혼자만 눈을 뜨고 관객을 응시하는 아내를 발견한다.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건 축복일까.
사람이 생각을 하고, 그에 따른 믿음을 갖는다는 게 차라리 재앙처럼 여겨지는 요즘의 정치 환경이기에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가 더욱 또렷하다.
내가 보고 생각하고 선택한 건
내가 봤다고 믿고, 믿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선택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내가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수도 있다.
남편이 몽유병이라고 믿어도,
남편이 귀접했다고 믿어도,
아내가 몽유병이라고 믿어도,
아내가 정신병이라고 믿어도,
달라지는 건 관점일 뿐 불가능하지 않다. 그런 게 인간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솟구쳤다 스러지는 믿음이라는 거다.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도심 한복판에 특수 병력을 투입할 수도 있는 그거.
그러니,
내가 억울하다고, 내가 옳다고, 내가 여기까지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코를 골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한다. 어쩌면 잠든 줄도 모른 채 코를 골며 칼을 휘두르듯 내려쳤을 선택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한다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믿는 나일 뿐이다. 머릿속 필름을 되감으며 도대체 어디서부터 남편이고, 어디서부터 아내였을까,를 아무리 뒤적여도 어디도 남편이거나 동시에 아내일 수 있는 것처럼.
다만,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견지하는 입장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나에 갇힐 수밖에 없을지라도,
기습 계엄처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았거나 그러지 않기를 기원한다.
영화는 대단치는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평단의 호평만큼은 전혀 아니었다.
기대치가 높았던 탓도 있겠지만, 그 배우 그대로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대로 "우리편"에 대한 질문을 던진 감독의 의도가 주목할 만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가 다시 시작되었으니
그로써 좋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