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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 임호경 옮김

by 글섬

아니 에르노는 픽션을 거부해 오직 자전적 이야기로 개인성을 극복하고 사회성을 획득함으로써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로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년 전 <단순한 열정>으로 만났던 아니 에르노의 글은 내게 일종의 '배설물'로 기억된다. 유부남과의 성적 관계의 기억을 굳이 작품화한 작가의 결단이 필력보다는 스토리로 퇴색되어 버린 탓이다.


<남자의 자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이다. 겨우 백여 페이지 남짓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은 내내 20세기 남자의 생에 대해, 그리고 하나의 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것들이야말로 가장 사회적이고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는 신념에 따라 작가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시종일관 간결한 문장들로만 아버지의 일생을 재구성하려 노력하는데, 그로 인해 행간이 아주 깊다. 우물 같은 행간 속 무언의 말들은 그래서 더욱 눈물이 된다. 너무 깊은 것들은 굳이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도 곧장 전이된다.


남자는 큰 농가들에서 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거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자는 학교와 배움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난을 견뎌 내고 그 자신을 지탱해 내기 위해 배움을 배척했던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던 남자를 학교에서 빼내어 농가에 품팔이로 보내 버렸다.


남자는 외양간 다락에서 이불도 없이 짚 더미 위에서 지내며 새벽 5시에 소젖을 짜고, 마구간을 청소하고, 말들에게 글겅이질을 해주고, 저녁때 다시 소젖을 짜는 일상을 입대하기 전까지 반복했다.


1차 세계 대전은 남자가 군대를 통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제대 후 그는 더 이상 농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가속화된 산업화로 인해 소도시엔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남자는 직공으로 착실히 일했다. 간혹 영화 구경을 다니거나 유행하던 춤을 추기는 했지만 술집 출입은 삼갔다. 때문에 공장에서 만난 아내의 기억 속에 남자는 "한 번도 직공처럼 군 적이 없"는 사내였다.


말하자면 그는 부모의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공장보다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 기와장이로 일하다 지붕에서 떨어진 날을 계기로 부부는 다시 가열차게 저축을 시작해 마침내 대출을 받아 동네의 작은 선술집 겸 식료품 구멍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생은 노동자의 그것보다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외상은 쌓여갔고 동네엔 좀 더 현대화된 슈퍼마켓들이 등장해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진한 손님은 차라리 더없는 조롱처럼 느껴졌다."


결국 남자는 가게를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공장에 취직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던 첫 아이를 디프테리아로 잃고 얼마간 우울증을 앓는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공장이 불에 타고 남자는 임신한 아내와 피난길에 오른다. 독일군이 휩쓸려 지나간 뒤 난장판이 된 식료품점으로 돌아왔고, 그다음 달에 아이가 태어난다.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공포와 굶주림과 추위의 날들을 숱하게 지나는 동안에도 남자는 아주 먼 곳까지 자전거 뒤에 짐수레를 매달고 줄기차게 식료품들을 구해온다. 그것은 남자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의 여정이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노동자로서의 삶도 끝을 낸 남자는 학교를 다니는 딸아이를 통해 상대적인 열등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딸아이의 인생이 학교를 통해 점차 중산층으로 이동해감에 따라, 품위 있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언행이 불가능했던 남자, 철자법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던 남자, 동네 외상 단골들의 목로주점에 불과했던 영세 식료품점 수준 딱 그만큼이었던 남자가 부각된다. 삶이 가하는 위협들에 의한 증오와 비굴함, 그에 대한 혐오를 내포한 채 남자는 조용히 체념하는 나이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줄곧 불행하지만은 않았다. 그 모든 가난과 결핍을 뚫고 자라나는 일상의 행복이야말로 평등한 것이기에. 일테면 봄날의 아지랑이, 들녘의 가을바람, 일요일 가게의 왁자한 동네 모임의 쾌활함 등등 자라나는 딸아이의 눈에는 촌스럽거나 상스럽게 여겨졌을 그 모든 일상적 흐름 속에서 남자는 허름하고 하찮은 일상 그대로 행복했다.


딸아이는 점차 분리되었다. 남자는 토론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딸아이는 가끔씩 벌어지는 입씨름에서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그가 먹고 말하는 방식을 지적하고 비난했다. 남자는 더 이상 딸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게 되었고 딸아이는 많은 시간을 방에 처박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딸아이가 대학을 마치고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알프스 지방 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동안 "이제는 삶을 조금이나마 즐겨 보겠다고 마음먹고" 불안해하지도 열광하지도 않는 나날들 속에서 예순다섯 살이 되면 받게 될 사회 보장 연금을 벌써부터 흐뭇해하면서 "삶을 점점 더 사랑하고 있었"던 남자는 어느 일요일 새벽에 전날 먹었던 모든 걸 토해 버린 뒤 몸저 누웠다가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딸아이 아니 에르노가 중등 교원 자격 시험을 통과해 정식 교사가 된 지 2개월만의 일이었다.


내겐 아버지의 기억이 별로 없다. 대령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전역한 아버지는 극도의 경상도 남자였다. 온종일 두어 마디 말 외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데 자녀 훈육엔 열정적이어서 회초리가 아닌 각목으로 대처했다. 언젠가 지인에게 아버지가 도대체 왜 그토록 침묵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그는 내가 미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혹은 하고 싶지 않았던) 뜻밖의 이유를 추측해냈다.


아버지는 육이오 참전 용사였다. 겨우 열아홉에 농사를 피해 직업 군인의 길에 들어섰고 곧 남북전쟁을 맞닥뜨렸다. 그건 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적어도 사람이 죽어가는 걸 목도했거나 직접 사람을 해했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경험을 한 후에는 두 가지밖에 없을 것 같다. 혼자만의 기억으로 가두기 위해 침묵하거나, 아니면 나만 소외시킨 채 번쩍번쩍해져 가는 세상을 향해 가열차게 욕을 해대거나.


전역 후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아버지는 사기를 당했고, 부동산을 열어 고전했고, 다섯씩이나 되는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다 늙도록 은퇴하지 못하고 신도가 수백 명에 육박하는 대형 종교단체에서 각종 민원으로 귀와 장기가 닳아빠지도록 책임 관리자로 일했다. 어느 날 밤 심장이 제때 피를 뿜어주지 못해 사지가 마비됨으로써야 겨우 은퇴할 수 있었다. 영리한 어머니가 재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한 덕에 겨우 전신마비를 면한 뒤 아버지는 오로지 혼자가 되길 원하셨고, 본가와 그리 멀지 않은 농가에 단칸방을 얻어 정말로 혼자 지내시다가 혼자 돌아가셨다. 그토록 혼자이길 원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때는 전혀 가늠할 수도 그럴 의향도 없었는데 삶의 갖은 위협과 방어 들에 지친 나이가 도래하자, 끄덕여진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사람에도, 믿었던 사람을 사기 치는 사람에도, 종교단체에서 악을 쓰며 아우성치는 사람에도, 그는 사람이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나 군인, 혹은 직원으로만 존재했다. 죽기 전 겨우 몇 년 동안 간신히 혼자가 된 그는 비로소 행복했을 거라고, 이제는 끄덕여진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어떤 상사는 칠순에 가깝도록 현역으로 일하다가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생을 저버렸다. 아무런 전조 없이 한순간에 돌아섰다. 그에게도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에게도 꿈꿔왔던 노년이 있었다. 생은 농담인가. 오늘을 살라면서도 내일을 위해 비굴하게 만들고, 내일을 향하다가도 오늘로 마감해 버린다. 어쩌라는 건가.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의 생을 살았던 그는 다분히 옳다. 보다 큰 도시에서 보다 큰 매장을 열고 싶었던 소망을 체념하고 다만 보통의 오늘을 살았던 그는 그 나름의 최선이었으니 되었다. 죄책감은 남은 자의 몫일 뿐, 그는 그로써 충분히 되었다.


관객의 주목을 끌지 못한 채 무대 왼쪽에서 조용히 등장해 한참동안 무대에서 저만 알고 있던 제 역할을 저도 모르는 새 모두 다한 뒤 아무런 표지 없이 무대 오른쪽으로 사라지는 평범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본다. 그게 부모라도, 그게 자식이라도, 그게 사랑했던 그 누구라도, 타인은 온전히 알지 못하는 저마다의 생을 생각해본다. 그러자 내가 나 자체로 좀 더 소중해진다. 한없이 작고 무용한 나는 아직 무대에 있고 비록 퇴장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중요한 건 왼쪽, 오른쪽이 아닌 나아가고 있다는 것.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 첫 발령지를 기다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20페이지)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자리를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47페이지)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들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는 우리의 행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우리의 조건을 둘러싼 굴욕적인 장벽들(<우리 집은 그렇게 잘 살지 못해>라는 의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순의 이쪽에 닿았다, 저쪽에 닿았다 하며 흔들흔들 나아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57페이지)


이들 세부적인 것들의 의미 규명은 이제 내게 하나의 절대명령으로 다가오며,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껏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확신하며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모욕당한 기억만이 그것을 간직해 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욕망에 굴복해 왔던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이 세계의 욕망에 말이다. (7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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