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에 관한 오만과 편견

by 글섬

가진 거 쥐뿔 없다.

그 중에서도 심각하게 없는 게 열정이다.


물론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열정 과다에 가까웠다. 하지만 경험은 기술뿐 아니라 열의까지 단련시킨다. 시간과 열정을 담보로 확보되는 노련함의 틈새로 관성과 무기력의 이끼가 자라난다.


경력이란 결코 줄어들지 않고 갈수록 늘어만 가는 업무량을 감당해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무기이다. 내가 바친 시간이나 열정을 되돌아볼 여력조차 없었던 시절을 정면 돌파해 도달하는 경력의 세계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세계에 그 여력의 틈이 열린다. 판도라의 상자다.


웃기지도 않는 이런 일 따위에 썪을 내가 아니야!

이래 뵈도 난 좀 더 거대한 범선으로 타고났다구!

그래봐야 범선이라는 통렬한 진실이 내 뒤로 숨는다. 진실이란 원래 이러려고 존재한다. 숨고 숨기고.


그게 뭐든 자기 자신의 뒤로 숨은 걸 찾는 데는 크나큰 행운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경력 뒤로 버려진다.


한 달 사이에 두 군데 회사에서 새로 시작했다.

이유? 경력 면접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지만..

휘갈기든 꾸욱꾸욱 눌러 적든 사직서를 쓸 때는 이유가 있다. 아니, 있었다 분명.


6개월 만에 세 번째 회사 이직을 위해 앉았던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무참히 패하고 낯선 은행 대기석에 공손히 앉아 애꿎은 번호표만 구기고 있을 때 문득


어떤 사직서는 단지 이직을 위해 쓰여진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리고 면접 당일에야 시야가 걷힌다.

무지개는 어디? 난 누구...


6개월 만에 두 번의 이직을 감행한 데는 만용이 그 일등공신이요, Somewhere을 향한 열망이 두 번째다. 나머진 그저 연이은 행운.


수 년 전 지인들이 네이버 밴드 열풍에 휩쌓여 너도 나도 동창회를 꾸렸다. 멀거니 구경하는 나로선 중년의 권태 이외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 자신 뒤로 작정하고 숨어버린 진실은 아주 크나큰 행운을 만나야 한다고.

돌이켜보면 그들의 핑계처럼 잃어버린 어릴 적 인연이랄지, 기억 저편까지 기어들어 가 캐내고 싶어진 인정욕이랄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아하게 마들렌 타령이나 해댔지만(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매개체),


침이 튀도록 그들을 손가락질할 때는 나도 몰랐다. 미안하다.

저 자신의 경력으로 오만해지면 무지개를 믿어 의심치 않는 편견의 쓰레기 속에 묻힌다는 걸.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노련함도 경력도 인정도 연봉도 아닌 어제만큼의 열정이다. 낡아도 낡지 않으려 기를 썼던 열정마저 낡으면


그래서 난 멈췄었다.

고 믿었다.

어제의 열정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직서를 남발했다.


드디어 내 번호가 울린다.

921번 고객님~

헐.. 진정 900명의 고객이 존재했던 걸까.

의자에 앉으며 눈을 맞춘 은행 직원은 나와 거의 동년배로 보인다. (아니었다면 이 또한 미안하다.)

그녀는 오후 4시 가까운 시각에 오전 9시 반의 미소로 나를 맞는다.


같은 자리에서는 어제의 열정을 빚어낼 도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나는 하수다. 주변에 이미 숱한 지인들을 두고도 고릿적 옛 인연을 찾아 새로운 열정을 갈망했던 동창회 그들이 하수였던 것처럼.


하마터면 난 유치원 동창회까지 내려갈 뻔했다.

(유치원도 안 나왔는데.)

어제의 난 없다. 그건 이미 죽은 말이다.

믿는 대로 보는 사람 눈에만 여울지는 무지개,

이번만큼은 취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쓴다.

농약 같은 무지개,

마약 같은 그 죽일눔의 사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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