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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Jan 15. 2023

명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새로운 내 일자리에 대한 소식을 듣고 명품 스카프를 선물로 사들고 왔다. 사방으로 명품 로고가 찍힌 실크 스카프였다. 그는 내가 어머니들한테 무시 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명품 로고가 큼지막한 걸로 골랐다며, "이런 거 두르고 다니면 엄마들이 무시 못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저 웃었고, 처음 만져보는 실크 촉감에 반했다. 명품은 역시 명품이었다.


     그런데 명품을 휘두르면 아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개념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누군가를 무시하게 되는 건 차림새 때문이 아니라 언행 때문이다. 인격도 성품도 생각보다 감추기 어렵다. 더군다나 어머니들처럼 매일같이 대면하는 사이라면 찰라의 눈빛 교환과 몇 마디 말만으로도 상대방의 대략적 인품이 전해진다. 아이는 구찌 신발을 신고 어머니는 루이비통 원피스를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모녀가 태반인 지역을 담당하고 있지만, 무얼 입고 먹든 어머니는 어머니일 뿐이다. 제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을 상대로 헛된 우월감을 발휘하는 어머니는 없다. 어머니가 내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뿐이다. 제 아이의 안전.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무시의 기준이 과연 상대방에게 있을까. 누군가를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뭘 들거나 뭘 휘둘러도 무시할 터이다. 그런 사람은 다만 무시하기 위해서 무시하는 걸 테니까. 반대로, 무시를 당한다는 느낌은 대개 상대방보다는 의외로 나로부터 유발된다. 나는 가난하고 그들의 명품이 부럽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해 주눅 들지는 않는다. 내게는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이 있고, 그들은 내게 상처를 입히거나 내 인격을 침해할 만큼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다녔던 직장의 한 선임이 명품을 휘두르고 다녔었다. 하지만 그의 언행은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걸친 버버리 코트도, 어딘가 낯익던 그의 까르띠에 시계도, 그가 직접 명품이라고 떠벌이기 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 명품 핏이 아니었다. 그의 싸구려 내면이 명품 외현을 앞도해버린 탓이다. 


     그의 손목에서 빛을 잃어가던 까르띠에 시계를 보며 나는 명품에 대한 생각을 새로고침 했다. 내가 명품이어야만 명품이 명품일 수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닦은 내면이 전제되지 않는 명품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일 뿐이다. 자신을 공들여 닦은 사람에게는 아우라가 있다. 형형한 눈빛이라든가, 꼿꼿한 어깨, 혹은 찬란한 미소 같은, 어딘가 주목을 끄는 그만의 배경색 같은 것. 하루 아침에 형성될 수 없는 바로 그런 아우라야말로 물리적 가치를 초월하는 명품 오브 명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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