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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Jan 16. 2023

약이 되는 다정

 

     나는 다정하다. 다정이 병일 정도로 다정하다. 타고난 성정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더욱 다정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마음에서 온기가 사라지면 내 안의 냉기만큼 외로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말썽꾸러기가 내가 담당하는 셔틀을 탄다.  녀석 때문에 어머니들이 돌아가면서 학원에 항의를 해대고, 심지어 어느 어머니는  녀석을 학원에  다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보니, 학원장도 내게 대놓고 그 녀석을 다른 아이들과 격리해 앉히라고 지시할 지경이었다. 


     나 역시  녀석이 골칫덩어리였다. 셔틀에서 영어만 사용하기로 규정하자, 한동안 차라리 입을 닫고 있더니 이내 당당하게 혼자서만 우리말로 말하는   녀석이기에. 큰소리로 야단을 쳐보기도 했지만, 친히 마스크를 내리고 혀를 낼름 내밀거나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나를 놀려대 했다.


     어느 때는 녀석에 대해 강한 미움이 솟구치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녀석이 측은했.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서 미움 받는 그 마음이라고 뭐 그리 편할까. 이제 겨우 여덟 살인 아이에게 미움은 가혹하고 부당하다. 어릴 적에 미움 받으며 자랐던 나이기에 더욱, 미움이 마음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일부러 녀석의 이름을 매일 불러주며  번이라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번이라도  눈을 맞추며 웃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하차 직전에 겉옷도 입혀주고 소지품도 챙겨주고 가방도 매주었고, 버스에서 내려주고 나면 반드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가라고 인사한 다음에 돌아섰다.


     그렇게 두어 달쯤 지나고 나자 녀석은  이상 내게 혀를 내밀지 않았다. 면에 나는 녀석이 다른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나쁜 말을 할 때면 평소의 다정을 버리고 강하게 저지하거나 야단했다. 그런 다음, 아이 앞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서 낮은 소리로 아이를 다정하게 타일렀다. 놀랍게도 아이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는 고개까지 끄덕이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다정을 쏟으며 공을 들이고 있을 즈음, 아이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셔틀에서 가장 조용했던 쌍둥이 남매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날부터 그 아이가 쌍둥이 남매와 어울려 다녔다. 남매는 말 그대로 천사였기에 나로선 의아함을 넘어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그 아이는 매일 조금씩 달라졌다. 철저하게 영어만 사용하는 쌍둥이 남매와 노느라 말수가 부쩍 줄면서 조용해졌고, 남매와 함께 조용히 앉아 학원에서 빌린 영어책을 읽기까지 했다. 불과 몇 달 전의 과격함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변화였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나치면 다정만큼 병이 되는 것도 드물지만, 다정만큼 약이 되는  또한 드물다. 그 아이가 과격했던 건 사실이지만, 먼저 과격했다는 이유로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똑같이 과격하게만 대했던 게다. 지금은 내가 주의를 주는 의미로 그 아이의 이름만 불러도 아이가 조용해지는 기적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내심 미운 사람이 있다면 내 안의 모든 다정을 끌어모아 그를 향해 한 번이라도 더 웃어보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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