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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Jan 14. 2023

경험은 배신하지 않는다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건설 노동자 송주홍 작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 <노가다 칸타빌레>에 이어 두 번째 에세이 <노가다 가라사대>를 펴냈다는 기사를 접했다.


     몸으로 일하시는 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잠자는 시간을 매일 2~3시간씩 쪼개어 글을 썼다고 한다. 건설 노동자의 육체적 피로는 차치하고, 필력은 어찌된 일인가 궁금했는데 과연 그에 상응하는 이력이 있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갑작스러운 가정사로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5년간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공들인 시간은 헛되지 않는다.


     또 다른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는 이금희 아나운서가 한 라디오 청취자 사연을 소개했다. 예순 넘어 배우기 시작한 무학의 아내와 그를 도운 남편의 사연이었다. 남편은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했지만 아내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내는 낮에 김 매고 밭을 일구면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시험기간에는 밤 늦게까지 공부하기 위해 커피를 사발로 마셔대며 고군분투했지만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절망했다. 그러자 남편이 등대 불빛 같은 말을 슬그머니 건넸다고 한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지잖아요. 물이 밑으로 빠지니까 눈에 안 보이지만 며칠 지나면 콩나물이 쑥 자라 있지요. 공부도 그런 법이에요. 아무 소용 없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는 새 실력이 쑥 자라니까요." 남편의 이 말에 아내는 힘을 내어 무사히 중, 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다고 한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힘이 더 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에 축적되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에 비해 너무 많은 힘을 쓰고 산다고 여겨지는 날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힘을 쓴 시간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 쌓여 남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갖게 된다. 나를 통과한 시간이 아니라 내가 애를 쓴 시간의 총합이 바로 나다. 오늘도 내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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