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희 옮김
〈의자 고치는 여자(La Rempailleuse)〉는 1882년 9월 17일자 《르 골루아(Le Gaulois)》 지에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듬해에 출판된 단편집 〈멧도요새 이야기(Contes de la bécasse)〉에 수록되었다.
이 소설은 레옹 네이크(Léon Hennique)에게 헌정되었다.
베르트랑(Bertrans) 후작의 집에서 열린 사냥 개시 만찬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열한 명의 사냥꾼과 여덟 명의 젊은 여자, 그리고 마을 의사가 불 밝혀지고 과일과 꽃이 차려진 커다란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사랑 이야기가 나왔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일생에 사랑을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여러 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원한 논쟁이었다. 오직 한 번 진지한 사랑을 한 사람들과, 여러 번 격렬하게 사랑한 사람들의 예들이 제시되었다. 대개 남자들은 열정이란 질병처럼 동일한 존재를 여러 차례 덮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찰보다는 서정적인 면을 중시하는 여자들은 진정한 사랑, 위대한 사랑이란 오직 딱 한 번 찾아온다고, 그런 사랑은 마치 벼락과도 같아서 그것을 맞은 심장은 녹초가 되고, 피폐해지고, 남김없이 불타오른 나머지 다른 어떤 감정도, 심지어는 몽상조차도 다시 움을 틔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랑을 많이 해본 후작은 이런 믿음을 강력히 반박했다. 그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여러 번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여자들이 진정한 열정을 두 번 누릴 수 없다는 증거로 사랑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예를 제시하자, 후작은 이에 대해 자살이라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지 않았을 테니 틀림없이 고통에서 치유되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은 술꾼과 같아서, 마셔본 사람이 또 마시듯이 사랑도 해본 사람은 또 사랑하게 된다는 거였다. 요컨대 그건 기질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마을 의사를 중재자로 삼았다. 파리 출신으로 시골에 내려와 지내고 있는 나이 든 의사는 후작 말대로 사랑은 기질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는 5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단 한 번의 사랑을 지속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랑은 죽음이 찾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고 했다.
그런 필사적이고 감동적인 사랑을 받았던 사람은 바로 마을의 약사 슈케(Chouquet) 씨였다. 그를 그토록 사랑했던 여자는 매년 성으로 찾아와서 의자를 고치는 노파였다.
그러자 마치 사랑이 섬세하고 고상한 사람들에게만 닥칠 수 있다는 듯,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나 합당한 일이라는 듯, 여자들의 열광이 시들해졌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석 달 전에 의사는 왕진 요청을 받고 이 여자가 죽어 가는 침대 머리맡에 불려갔다. 노파는 전날에 늙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친구 겸 보호자인 커다란 검은 개 두 마리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었다. 의사가 도착해보니, 신부가 이미 와 있었다. 노파는 두 사람을 자신의 유언 집행자 삼아 그녀가 살아온 생애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의사는 그녀의 이야기보다 더 기이하고 비통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녀는 누더기를 걸치고 벌레처럼 더러운 꼴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부모님과 함께 도랑을 따라가다가 마을이 나오면 마을 입구에 마차를 멈추곤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길가의 느릅나무 그늘 아래서 마을의 모든 낡은 의자들을 고치는 동안 어린 딸은 풀밭에서 뒹굴며 놀았다. 어린 딸이 마차에서 너무 멀리 가거나 마을의 개구쟁이 녀석들과 친해지려고 하면, 아버지는 성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썩 돌아오지 못해, 이 바보 계집애야!” 그것이 그녀가 들었던 유일한 애정의 말이었다.
딸이 더 자라자 부모는 딸을 보내 파손된 의자들을 모아 오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몇몇 남자애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그 남자애들의 부모들이 나타나, “썩 돌아오지 못해, 이 악동 녀석아! 가난한 장돌뱅이와 그렇게 시시덕거려야겠어!”라고 매몰차게 외치곤 했다.
어린 남자아이들은 대개 그녀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마음 좋은 부인들이 동전 몇 푼을 손에 쥐어 주면 그녀는 그 돈을 은밀하게 간직했다.
그녀가 열한 살이 되던 어느 날, 그녀는 이 마을을 지나다가 묘지 뒤에서 어린 슈케가 울고 있는 걸 보았다. 슈케는 친구에게 2리아르를 도둑맞고 울고 있던 거였다. 불우한 그녀로서는 부르주아들의 삶은 언제나 기분 좋고 즐거울 거라고만 상상했기에 슈케의 눈물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슈케에게 다가가 그때까지 그녀가 모아둔 자신의 전 재산인 7수를 소년의 손에 쏟아 주었다. 소년은 눈물을 닦으며 자연스레 그 돈을 받았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대담하게도 소년을 와락 끌어안았다. 소년은 손에 쥔 동전을 유심히 살펴보느라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겼다. 소년이 자신을 밀치지도 때리지도 않자 그녀는 다시금 소년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고 입을 맞춘 뒤 달아났다.
그 뒤로 가여운 그녀의 머릿속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녀가 그 소년에게 애착을 품었던 건 부랑자인 그녀가 가진 재산을 그에게 몽땅 바쳤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달콤한 첫 입맞춤을 그에게 주었기 때문이었을까?
몇 달 동안 그 소년에 대한 몽상에 잠겨 있던 그녀는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희망으로, 의자 수선비를 받거나 식료품을 사오라고 받은 부모의 돈에서 1수씩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주머니 속에는 2프랑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년의 아버지의 약국 유리창만 바라보아야 했다. 유리창 너머 빨간 표본 유리병과 촌충 병 사이에 어린 약사가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신기한 유색의 물과 반짝이는 유리병들에 매혹되고 경탄해서 그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마음속에 간직한 그녀는 이듬해 학교 뒤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는 그를 만나자 마구 달려가 두 팔로 그를 껴안고 격렬하게 입맞춤을 했다. 소년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울음을 달래려 그녀가 가진 돈을 주었다. 3프랑 20수였고, 정말이지 큰돈이었다.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돈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자신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뒤로부터 4년 동안 그녀는 자신이 모은 돈을 그의 손에 몽땅 쏟아 부었고, 그는 입맞춤의 대가로 그녀의 돈을 거리낌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어떤 때는 30수, 어떤 때는 2프랑, 또 어떤 때는 12수였다. 돈이 너무 적을 때면 그녀는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워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녀는 오로지 소년만을 생각했다. 소년도 초조하게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그녀가 나타나면 달려가 맞이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녀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취를 감추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거였다. 그러자 그녀는 온갖 수완을 발휘해 부모가 장사 여정을 바꿔 여름방학 때 이 마을을 지나가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2년이나 그를 보지 못했다. 2년 만에 그를 만난 그녀는 그 사이에 훌쩍 자란 그를 겨우 알아보았다. 그는 키가 컸고, 더욱 멋있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못 본 척하며 거만하게 그녀 옆을 지나가 버렸다.
그녀는 이틀 동안 울었다. 그때부터 끊임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매년 이 마을로 돌아왔지만, 그의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고, 그 역시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미칠 듯이 그를 사랑했다. 그녀로서는 그가 태어나 만났던 유일한 남자였고, 다른 남자들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부모의 일을 이어받았다.
어느 날, 이 마을로 돌아온 그녀는 슈케의 약국에서 어느 젊은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나오는 걸 보았다. 그가 결혼을 한 것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마을 광장 근처 연못에 몸을 던졌다. 밤늦게 귀가하던 주정뱅이 하나가 그녀를 건져 약국으로 데려갔다. 슈케는 실내복 차림으로 내려와 그녀를 치료해 주었지만, 그녀를 알아본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냉혹한 목소리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에 그녀는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가 그녀에게 말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행복했다.
그녀가 치료비를 내겠다고 고집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한평생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는 슈케를 생각하며 의자를 고쳤고, 매년 이 마을에 들러 약국 유리창 너머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상비약을 구입한다는 구실로 약국으로 들어가 가까이서 그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여전히 그에게 돈을 주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마친 그녀는 의사에게 그녀가 일평생 모아온 돈을 슈케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오로지 그를 위해 일했고, 돈을 모으기 위해 끼니까지 걸렀으며,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돈을 그에게 전해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그가 그녀를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녀가 건네준 돈은 2,327프랑이었다.
그녀가 숨을 거둔 다음날, 의사는 그녀의 돈을 들고 슈케의 집으로 갔다. 슈케 부부는 이제 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살찌고 붉은 낯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흡족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의사는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거라고 확신하고 감동적인 목소리로 의자 고치는 여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슈케는 그 떠돌이 행상인 의자 고치는 여자가 그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듣고 펄쩍 뛰며 화를 냈다. 마치 그녀가 그의 고귀한 명성을, 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어떤 것을 훔쳐 가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며 격분했다. 그의 아내 역시 그만큼이나 격분해서는, “그 거지 같은 여자가! 세상에, 그 거지 같은 여자가!”라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슈케는 벌떡 일어나더니 그 여자가 살아 있었을 때 알았더라면 경찰서에 신고해 그 여자를 감방에라도 집어넣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했었을 텐데, 이제는 죽어 버렸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펄펄 뛰었다.
의사는 자신의 기대와 어긋난 결과에 어안이 벙벙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기에 슈케에게 그 여자가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보아하니 슈케가 불쾌할 게 분명하니 그 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슈케 부부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의사는 호주머니에서 온갖 지역과 온갖 모양의 돈, 금화와 동전이 뒤섞인 그 비참한 돈을 꺼냈다. 슈케 부인은 그 여자의 유지라면 굳이 거절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슈케도 다소 당혹스런 태도로, 그 돈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좋을 대로 하시라고 말한 뒤 돈을 놓고 돌아섰다.
이튿날 슈케가 의사를 찾아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그 여자가 쓰던 마차는 어떻게 하셨냐고 물었다. 의사가 원하면 가져가라고 답하자 슈케는 그 여자의 마차로 그의 채소밭에 오두막이나 하나 만들 작정이라며 반색했다.
슈케가 돌아서려 할 때 의사가 그를 불러 세우고는, 늙은 말과 개 두 마리도 가져가시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흠칫 멈춰 서더니 그것들은 의사가 원하는 대로 처리하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의사와 악수를 하면서, “어쩌겠습니까? 한 동네에서 의사와 약사가 적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개 두 마리는 의사가 맡았다. 말은 큰 뜰을 가진 신부님이 데려갔다. 마차는 슈케의 오두막을 짓는 데 쓰였다. 슈케는 그녀에게 받은 돈으로 철도 채권 다섯 장을 구매했다. 바로 이것이 의사가 살면서 목격한 유일한 깊은 사랑이었다.
의사가 이야기를 마치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후작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국, 사랑할 줄 아는 건 역시 여자들뿐이군요!”
▶ 참고 문헌 : 〈멧도요새 이야기〉, 모파상 저, 백선희 역, 새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