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섬 옮김
〈성유물(La Relique)〉은 1882년 10월 17일 《질 블라스(Gil Blas)》 지에 모프리뇌즈(Maufrigneuse)라는 예명으로 처음 발표된 소설로, 이듬해인 1883년에 단편집 〈피피 양(Mademoiselle Fifi)〉에 수록되었다.
앙리 퐁탈(Henri Fontal)이 옛 친구인 루이 데네마르(Louis d'Ennemare) 신부에게 보내는 서간문이다. 앙리 퐁탈은 루이 데네마르 신부의 여사촌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는데 그가 본의 아니게 저지른 대수롭지 않은 장난으로 인해 어처구니없이 파혼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당혹스러운 마음에 옛 친구인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는 그의 약혼자인 질베르트(Gilberte)를 잘 아는 신부라면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여인들의 생각과 신념은 정말이지 놀라움 그 자체다. 그녀들은 온통 예측 불가능한 추론과 역논리, 그리고 완고함으로 가득한 존재들이다. 특히 질베르트는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 못해 광신적인 면이 있었다. 여인이라기보단 소녀에 가까웠던 질베르트는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하거나 분노했다가 이내 애정을 되찾곤 했다. 그녀는 예뻤고,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숭배하듯 사랑했고, 그녀도 그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그는 그의 시술이 절실한 수술이 생겨 쾰른(Cologne)으로 황급히 와달라는 전보를 받았다. 다음 날 곧바로 쾰른으로 출발해야 했던 그는 질베르트를 만나러 갔다. 그는 잠시 쾰른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금요일에야 돌아올 예정이라서 수요일에 질베르트의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던 약속은 부득이하게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쾰른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눈물을 보였다가, 금요일에 돌아올 거라고 말하자 이내 손뼉을 치며 기뻐하더니, 그럼 쾰른에서 자신에게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가져오시라며 행복해 했다. 그러면서, 그의 상상력을 한 번 지켜보겠다며, 자신은 물건에 들인 돈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감동받고 싶다고, 아주 독창적인 기념품을 기대하고 있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다음 날 그는 쾰른으로 출발했다. 온 가족을 절망에 빠뜨린 끔찍한 사고였다. 절단이 시급한 상태였다. 그는 수술대 위에서 거의 죽을 뻔했던 위독한 환자를 수술했고, 꼬박 이틀 동안 거의 유폐되다시피 환자의 병상을 지켜야 했다. 온통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압박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이윽고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자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그런데 기차 시간을 착각해 시간이 남아돌았다. 그가 수술 환자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독일어를 할 줄 몰랐는데, 그에게 다가온 이는 프랑스어를 몰랐다. 그렇게 서로 동문서답을 이어가다 결국 낯선 이가 그에게 성유물을 사시라고 권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질베르트에게 약속한 기념품이 떠올랐고, 질베르트가 열렬한 신자라는 사실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녀를 위한 선물로 딱이겠구나 싶었다. 그는 그 사람을 쫓아가 그의 성유물 가게로 가서 성스러운 뼛조각 하나를 선택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질베르트를 위해 구입한 성유물이 들어 있던 상자가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성유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주머니를 뒤집어봤지만 장식핀 절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뼛조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신론자인 그는 골동품 상인이 파는 성유물의 신성함에 대해서도 전혀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별 생각 없이 성유물 뼛조각과 비슷한 동물의 턱뼈 조각을 구입해 성유물을 부착하는 타원형 보석에다 그럴싸하게 부착했다. 그리고는 질베르트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그를 보더니 걱정스럽게 웃으며 다가와 자신을 위해 무얼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는 짐짓 기념품을 잊어버린 척했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그래도 설마 하는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할 때 성유물 상자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성유물 상자를 보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상자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너무 좋아하자 그는 내심 죄책감이 느껴지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상자를 열어 확인한 그녀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진짜 성유물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하다고 답했고, 그녀는 어디서 구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가 한낱 행상인에게서 구입한 뼛조각이라고 실토하는 날엔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그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떠올랐고, 짐짓 비밀스런 목소리로, “당신을 위해 훔쳤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경탄과 황홀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더니, “나를 위해 이걸 훔쳤다고요? 성당 안 성골함에서요? 어서 자세히 좀 말해 봐요!”라고 중얼거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정확하고 경이로운 디테일까지 살려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는 성당 문지기에게 백 프랑의 뇌물을 주고 혼자서 성당을 방문했고, 당시 성골함은 수리 중이었지만 성직자와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기 때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패널을 제거한 뒤 성유물들 한가운데 있던 작은 뼛조각 하나를 꺼낼 수 있었으며, 성당을 나와 곧바로 세공사를 찾아가 그 뼛조각에 어울리는 원형 보석을 사서 뼛조각을 부착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멍하니 선 채 몸을 떨더니,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라고 속삭이며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위해 신성 모독죄를 저지른 셈이 되어버렸다. 그는 성당과 성골함을 모독했고, 신성한 성유물을 훔쳤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그것 때문에 그를 숭배했고, 그를 완벽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이런 게 바로 여자라는 존재다.
문득 두려워진 그는 신성모독죄가 발각되면 체포되어 독일로 유배당할 거라며 그녀에게 절대 비밀을 지켜줘야 한다고 신신당부했고, 그녀는 비밀을 약속했다.
그런데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녀는 그가 성유물을 훔친 장소를 보고 싶다는 광적인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녀는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그녀의 아버지를 졸라 쾰른에 갔다. 그에게는 쾰른에 간다는 사실을 숨겼다.
물론 그는 성당 내부를 본 적이 없다. 성유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따라서 성골함 근처에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몰랐다.
8일 뒤 그는 파혼 통보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성골함을 직접 보고서야 그의 거짓말을 알아챘다. 그녀가 성당 문지기에게 혹시 성유물 도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문지기는 웃으면서 그런 사건은 도저히 발생할 수가 없는 구조라는 걸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무신론자가 그런 신성한 장소에 침입해 성유물을 모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약혼자가 될 자격이 없어졌다. 그는 그녀의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그녀의 마음을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슬픔과 절망으로 병이 들어 버렸다. 그러자 지난주에 그녀의 사촌인 다르빌(d'Arville) 부인이 그를 찾아와 질베르트가 제시한 조건에 충족하면 그녀를 만나러 와도 된다고 제안했다. 성모의 것이든, 어느 순교자의 것이든, 교황이 인증한 진짜 성유물을 가져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는 로마에라도 갈 작정이지만, 교황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교황이 진짜 성유물을 일반인인 그에게 맡길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이렇게 옛 친구인 신부에게 도움을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다르빌 부인은 성유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질베르트가 절대로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진심으로 확언했기에 그로서는 혹시 루이 데네마르 신부가 고위 성직자에게만 허락되는 성유물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지, 만일 그렇다면 부디 그를 구해달라고 간곡하게 청하는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 La Relique〉 원문 번역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