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진열실

풍속생활연구 - 지방생활정경 제9권

by 글섬

작품 배경


〈골동품 진열실(Le Cabinet des Antiques)〉은 『인간희극』의 「풍속 연구」 중 「지방생활 정경」으로 분류된 작품으로, 1836년 3월부터 《파리 시평(Chronique de Paris)》 지에 연재되었다가, 1838년에 《콩스티튀시오넬(Le Constitutionnel)》에서 출간되었고, 이후 1839년에 《수버렝(Souverain)》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경쟁 관계(Les Rivalités)〉라는 제목 하에 〈노처녀(Le Vielle fille)〉와 2부작을 이루는 이 작품은 1822년 한 도청 소재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는 지방이 한 백작 청년이 파리와 대결하며 겪는 내용이지만 그곳에서 발휘된 현실에 대한 관찰과 통찰력은 〈고리오 영감〉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골동품 진열실〉이라는 제목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골동품 진열실이란 지나간 한 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구시대가 가고 신시대가 도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살아있는 골동품’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바로 그 ‘살아있는 골동품’의 시대착오적인 모습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아주 구조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도청 소재지들 중의 한 곳의 도시 중심부에 데스그리뇽(d'Esgrignon) 저택이라고 불리는 가옥이 한 채 자리하고 있다. 이 저택에는 데스그리뇽 후작이 살고 있었는데, 1789년 대혁명 때까지는 데스그리뇽 가문의 막대한 봉건 영지로 둘러싸인 성의 모습이었다. 혁명이 일어나자 데스그리뇽 후작은 과격 공화파들의 분노를 피해 잠시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사이에 데스그리뇽의 소유지는 손상되었고, 임야는 국가의 명령에 의해 매각되었다. 공포정치가 끝나고 후작은 성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권리는 박탈된 데다가 그나마 남은 영지마저 심하게 훼손되어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기에 후작은 공증인 쉐스넬(Chesnel)에게 저택을 맡기고 누이동생과 함께 성을 떠났다.


이제 그 도시에는 더 이상 데스그리뇽 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은 파괴되었고, 그 자리엔 수공업 공장이 세워졌다. 쉐스넬은 후작에게 남아있던 돈으로 광장 한 편에 위치한 오래된 집 한 채를 사들였는데, 그 집이 이제 데스그리뇽 후작의 집이 되었다.


1800년, 살생부에 기재된 이름이 손쉽게 말소되기 시작하자 몇몇 망명귀족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데스그리뇽 후작은 가문의 계승을 위해 이들 중 한 귀족 가문의 딸과 결혼했다. 아내는 출산 중에 사망했지만, 다행히도 아들 하나를 남겨주었다. 당시 후작의 누이동생인 아르망드 데스그리뇽(Armande d’Esgrignon) 아가씨는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여전히 아름다웠다. 공화군 군납업자로 벼락출세를 한 부유한 뒤 크로와지에(Du Croisier) 씨가 쉬스넬을 통해 결혼 의사를 밝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아르망드는 아버지가 만년에 징세 청부인의 손녀와 결혼해 얻었던 적출이었다. 이 때문에 더욱, 신분이 낮은 사람과의 결혼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때부터 후작은 쉬스넬에게 더 이상 다정한 호의를 보이지 않았고, 그 자신을 후작 가문의 일부로 여겨 헌신했던 충직한 쉬스넬은 상심이 컸다. 때문에 그는 뒤 크로와지에에 대해 혐오감을 품게 되었다. 그는 도시 전체의 신뢰와 존경을 얻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꽤 많은 가문들에게 뒤 크로와지에에 대한 혐오감을 고취시켰다. 청혼을 거절당한 뒤 크로와지에 역시 데스그리뇽 가문과 쉬스넬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되었다.


1804년과 1805년 사이에 망명 귀족의 3분의 2가 돌아왔는데, 데스그리뇽 후작이 거주하던 지방의 망명 귀족들도 거의 모두 돌아왔다. 그들 중에는 폐지된 귀족 계급과 붕괴된 군주제에 대한 그들의 신조를 아직도 버리지 못한 귀족 가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데스그리뇽 후작을 그들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며 그의 집은 그들 그룹의 회합 장소가 되었다. 데스그리뇽 후작의 훌륭한 품행과 기사도적인 세심한 배려와 고귀한 위엄은 도시 전체의 존경을 살만 했기에 사람들은 그의 귀족적인 편견들에 대해서까지 호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복고왕정 치하라는 새로운 사회에 자유주의자들이라고 불렸던 새로운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뒤 크로와지에는 후작의 그룹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데스그리뇽 후작의 살롱에 ‘골동품 진열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뒤 크로와지에는 데스그리뇽 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귀족에 대한 그의 향수와 욕망을 결혼을 통해 충족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청혼이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데스그리뇽 후작의 살롱에 출입하지 못하게 되자 뒤 크로와지에는 그때부터 증오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요컨대 집단의 욕망보다는 개인의 욕망이 우선적이고 직접적이기 마련인 것이다. 뒤 크로와지에는 그러한 모습의 대표적인 인물로, 세습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사이의 알력과 증오에도 불구하고 그의 증오심은 자신의 사적인 욕망의 좌절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1822년, 루이 18세가 매각되지 않은 재산들을 망명귀족들에게 반환되도록 하는 칙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데스그리뇽 후작에게는 아무것도 반환되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왕당파 세력에 소속된 데스그리뇽 후작은 대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의 사건들을 겪으며 낙담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상과 활동이 요지부동으로 고착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골동품 진열실이라고 명명된 그의 살롱에서 계속 귀족 계급의 우두머리로 군림했고, 반면에 뒤 크로와지에는 그 도시의 산업을 리드하는 우두머리로 군림했다. 요컨대 두 사람은 각 당파를 대표했다. 당시 지방은 당파 정신에서 싹튼 증오와 적대관계가 팽배해 있었다. 파리에서는 전체적이고 이론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당쟁이 지방에서는 개인적인 적대관계로 탈바꿈해, 지방의 두 당파는 서로를 혐오하고 헐뜯으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지방에서는 당파에 타격을 가한다는 구실 아래 신랄한 공격과 비방들이 개인에게 타격을 가했다.


데스그리뇽 가의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은 쉐스넬에 의해 신중히 관리되어 겨우 생계를 이어갈 지경이었다. 데스그리뇽 가문의 상속자인 후작의 아들 빅튀르니엥(Victurnien)은 고모와 아버지로부터 맹목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다. 대단한 미소년이었던 빅튀르니엥은 금발머리에 우아한 행동거지, 매력적인 이목구비를 갖추고 학문과 문학, 예술과 시, 모든 면에서 월등한 학식을 소유한 완벽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귀족적인 미모는 재산과 재능보다 더한 가치를 지녔다. 데스그리뇽 가의 상속자로서 맹목적인 사랑 아래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라난 그는 자연히 이기적이고 완고하며 무례하고 오만해졌다.


그리하여 18살이 된 빅튀르니엥 백작은 아버지의 살롱과 적대관계인 부르주아들을 상대로 온갖 악덕을 저질러 소송사건들에까지 말려들곤 했다. 이때마다 공증인 쉐스넬이 후작 몰래 자신의 돈으로 무마시켰다. 쉐스넬의 용의주도한 중재가 없었다면 백작은 처참한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궁지들에서 벗어나는 데 익숙해진 백작 청년은 부르주아의 법원을 경시하게 되었다. 뒤 크로와지에 당파는 이를 눈여겨보았다. 뒤 크로와지에의 증오심과 분노를 지원했던 사람들 중에는 롱쓰레(Ronceret) 법원장이 있었다. 그 역시 골동품 진열실의 영예를 열망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기에 데스그리뇽 가를 도와주는 척하며 데스그리뇽 가에 적의를 품는 격정들을 선동했다. 뒤 크로와지에는 빅튀르니엥의 악행들을 이용해 데스그리뇽 가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데스그리뇽 가의 살롱에 단골로 출입하는 한 귀족이 후작에게 이대로 빅튀르니엥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그를 궁중으로 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자 후작은 국왕을 위해 직무를 수행하려면 우아하게 채비를 갖춰 입궁해야 할 텐데 이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가 요원하다고 토로한다. 그러자 그 귀족은 쉐스넬에게 부탁해 보시라며, 사실 빅튀르니엥 백작이 이미 쉐스넬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고 알려준다. 이에 경악한 후작은 아들을 파리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살롱을 찾은 쉐스넬도 아르망드 아가씨에게 빅튀르니엥 백작이 놀음에 손을 대는 바람에 두 달 동안 막대한 재산을 날렸다고 고하며, 자신이 비밀리에 돈을 댈 테니 백작을 한시바삐 파리로 보내 조정에 나아가게 해야 한다고 충언한다.


그러나 이들은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해군이나 육군이 되려면 명문가의 자제들도 평민들의 자제들과 똑같이 공개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빅튀르니엥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파리에서의 체류 자금을 얻지 못하게 될까 봐 아버지와 고모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다. 쉐스넬은 파리에 거주하는 오랜 공증인 친구에게 편지를 써 빅튀르니엥 백작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며 육만 프랑의 국고 채권을 맡긴다. 이틀 후, 백작은 파리로 떠난다.


역사적인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라는 권고를 받으며 자라난 빅튀르니엥은 귀족 신분을 악용할 줄 아는 심각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지방에서 고립되어 자라난 탓에 한 지방 도시의 삶의 방식만 익혔을 뿐, 그 시대의 삶을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아버지보다 더욱 시대착오적이었다. 허영심으로 가득 차 맹렬히 파리만을 열망했던 그는 신속하게 파리에 적응해갔다. 그는 파리에서는 돈이 없으면 그 어떤 명문가도 어둠 속에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간파했다. 뿐만 아니라, 바야흐로 복고왕정이 젊은 귀족들을 비난하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간파해, 궁중에도, 정부에도, 군대에도, 그 어느 곳에도 그에게 합당한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멋진 말과 마차, 세련된 의상과 사치품으로 중무장하고 파리의 상류 사교계로 진출해 쾌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부유한 체하며 그의 가문 뒤로 몸을 숨겼다.


한편, 쉐스넬의 공증인 친구는 이미 사망하고 없었기에 쉐스넬의 편지는 후임자에게 넘겨졌다. 후임자는 애초 쉐스넬의 의도와는 달리 백작이 요구하는 대로 돈을 다 지불해주었다.


백작은 단지 멋을 부리는 데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느라 오만 프랑을 소비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아버지가 아직도 오래된 후작 영지와 세습의 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자신들의 딸을 지참금 없이 결혼시키려는 상류 사교계의 부인들로부터 대단한 환대를 받는다.


빅튀르니엥은 사교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주교 대리가 초대한 저녁 만찬에서 드 마르세(de Marsay)와 라스티냑(Rastignac), 블롱데(Blondet)를 만난다. 이들은 백작의 허영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날 저녁에 그들은 백작을 데리고 데 투슈(des Touches) 양 댁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주교 대리는 백작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미인들 중 하나인 모프리뇌즈(Maufrigneuse) 공작부인에게 소개한다. 그녀는 백작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라스티냑은 백작에게 공작부인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여자라고 경고한다. 다음 날 아침, 빅튀르니엥은 고모에게 상류 사교계의 성공적인 데뷔에 대한 이야기와, 주교대리에 의해 공작부인에게 소개된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 보낸다. 골동품 진열실에는 축제가 벌어진다. 그들은 젊은 백작이, 옛날과 다름없이, 공작부인의 사랑에 의해 모든 것을 이룰 것이라며 기뻐한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오히려 백작의 돈을 털어 사치했으며, 그녀 역시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백작은 공작부인과 어울려 무도회와 축제, 오페라 관람과 놀음 등에 시간과 돈을 소비했다. 그러다 보니, 쉐스넬이 파리의 공증인에게 보낸 금액 이상으로 돈을 찾아가 채무를 졌고, 급기야 채무액이 지나쳐 공증인의 거절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백작은 쉐스넬에게 편지를 써 의논했고, 쉐스넬은 후작이 거래하는 은행가 이름으로 환어음을 발행한 뒤 그것들을 할인해줄 수 있는 그 은행가의 연락소로 가지고 가라고, 그리고 그 은행가에게 원금을 지급해달라고 가족에게 편지를 쓰라고 조언한다. 그리하여 백작은 뒤 크로와지에와 관계하고 있는 파리의 은행을 찾아가 어음을 할인받는다. 드 마르세도 서슴없이 지갑을 열어 돈을 빌려준다. 그는 공작부인의 옛 연인으로, 파멸해가는 백작을 바라보는 데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백작은 뒤 크로아지에로부터 언제든 마음껏 어음을 발행해주시면 영광이겠다는 편지를 받는다.


1823년 겨울 무렵, 빅튀르니엥은 아무도 모르게 은행에 이십만 프랑의 빚을 지게 된다. 백작의 타락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려왔던 크로와지에는 어느 날 쉐스넬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백작에게 선불한 돈과 이자를 합쳐 이십만 칠천 프랑의 금액이 적힌 청구서를 쉐스넬에게 제시하고는, 이에 불응하면 백작을 즉각 소추하겠다고 협박하며 채무 상환을 요구한다. 쉐스넬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도 부족해 소유지까지 매각한다. 쉐스넬은 아르망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아르망드는 조카를 파멸에서 구하기 위해 직접 파리에 가서 조카를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아르망드는 쉐스넬이 챙겨준 여비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파리의 유능한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는 파리로 떠난다.


빅튀르니엥은 아무 생각 없이 2년을 아주 사치스럽게 보내고 난 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헤매는 중이었지만, 그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여전히 놀음판을 전전했다. 뒤 크로와지에가 백작에게 더 이상은 어떠한 대출도 금한다는 편지를 보낼 무렵에 백작은 자살이나 야반도주를 생각해야 할 만큼 곤궁했다. 그는 뒤 크로와지에의 편지에서 서명 부분을 잘라내어 유가증권을 만들어 은행에 가지고 가 현금으로 바꾸었다. 그는 그 돈으로 공작부인과 이탈리아로 도망쳐 행복하게 숨어살기를 바랐기에 은행으로 가기 전에 먼저 공작부인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은행은 백작에게 돈을 지급함과 동시에 뒤 크로와지에에게 이를 통지했다. 뒤 크로와지에로서는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온 것이다.


빅튀르니엥은 은행에서 받은 돈을 공작부인의 집에 가져갔다. 그러나 다음 날, 공작부인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한 약속을 번복했다. 궁지에 몰린 백작은 그녀를 심하게 몰아붙였다.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옥신각신했다. 결국 백작은 화가 난 나머지 공작부인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홧김에 미친 듯이 마차를 몰다가 광장에서 그의 하인과 마주쳤다. 하인은 집에 경찰이 와 있으니 여관으로 몸을 피하시라고 이른다. 그 여관에는 고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밤중에 쉐스넬의 집으로 마차를 몰았다. 백작은 쉐스넬에게 위조문서에 대해 털어놓았다. 쉐스넬은 한동안 넋을 잃었다. 그러다가 돈이 아직 공작부인 댁에 있다는 백작의 말을 듣고는, 그렇다면 돈을 찾아서 어음을 다시 회수한 뒤 크로와지에에게 탄원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 다음, 백작은 자신의 집에다 숨겨두고 혼자 파리로 향했다. 파리에 도착해 곧장 은행을 찾아갔지만, 환어음은 이미 뒤 크로와지에에게 보내진 뒤였다. 절망에 빠진 쉐스넬은 공작부인의 집을 찾아가 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백작은 경찰에 체포된 상태였다. 그러자 쉐스넬은 돈을 들고 뒤 크로와지에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그 날 저녁, 뒤 크로와지에 집에는 법원장 롱쓰레 부부와 검사의 수석대리 쏘바제(Sauvager), 예심판사 까뮈조(Camusot) 부부 등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쉐스넬의 집에 백작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쉐스넬의 후임자가 쏘바제에게 발설해 백작이 체포되었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백작의 재판에 대해 논의했다. 예심판사 까뮈조는 신중했다. 까뮈조 부부는 음모자들을 남겨두고 먼저 일어났다. 부부가 거리로 나오자마자 마주 오던 쉐스넬과 마주쳤다. 쉐스넬은 까뮈조를 담장의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데스그리뇽 가 편에 손을 들어주신다면 파리의 귀족들과 법무장관, 대법과, 국왕 등의 신망을 얻게 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자신이 곧장 파리로 가서 판결의 공정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고소장을 제출할 거라고 말한 다음, 까뮈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크로와지에의 집으로 돌진했다. 쉐스넬은 크로와지에의 발치에 엎드려 원하는 건 뭐든 해드릴 테니 고소장만 취하해달라고 애원했다. 이 순간, 크로와지에 부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공작 가문을 모셨던 하인 집안의 딸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자 왕당파로서 귀족계급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릎을 꿇고 있던 쉐스넬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크로와지에는 데스그리뇽 후작의 살롱 출입을 허용하고, 지금의 타협을 문서화하여 사십만 프랑짜리 저당권을 써주고, 자신의 조카딸 뒤발(Duval)을 백작 청년과 결혼시킨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그러자 쉐스넬은 결혼만은 안 된다고 펄쩍뛴다. 크로와지에는 그렇다면 돌아가시라며 거실을 나가버린다. 위조문서 사건들은 해당 돈이 반환되면 타결 가능한 일인데, 크로와지에는 백작이 그 돈을 이미 탕진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쉐스넬은 크로와지에 부인에게 호소하기 시작한다. 착하고 신앙심 깊은 부인이 쉐스넬의 애원에 몹시 동요하며 눈물을 보이자 쉐스넬은 그녀에게 돈을 내밀며 문서를 작성해달라고 간청한다. 부인은 남편에게 해가 없다는 확약을 받은 뒤에 문서에 서명한다. 쉐스넬은 부인에게 반드시 예심판사 앞에 출두해 문서에 적힌 날짜에 이 돈을 받았다고 증언한 뒤에만 이 돈을 크로와지에에게 건네주어야 한다고 다짐받는다.


지방의 법원은 두 집단으로 명확히 나뉜다. 하나는 파리에서 야망을 펼치리라 벼렸던 희망에 지쳐버렸거나, 아니면 지방에서 수행하는 사법관직에 대한 주민들의 지나친 존경에 만족하는 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절망에도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출세에 대해 광신하는 젊고 유능한 사법관들의 집단이다. 당시에 왕정주의는 부르봉가의 적들에 적대적인 젊은 사법관들을 고무시키고 있었다. 데스그리뇽 백작의 운명이 결정될 법원에는 이 두 종류의 사법적인 성격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롱쓰레 법원장은 체념하고 지방법원에 정착하는 부류였고, 예심판사 까뮈조는 파리 왕립 법원을 갈망하는 부류였다. 법원장이라는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귀족계급으로부터 대접받지 못하고 있던 롱쓰레 법원장은 자신의 체념을 독립성으로 포장해 부르주아 편이 되었다. 그는 크로와지에와 좌파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왕립 법원의 환심을 사고 있었기에 어떤 당파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이런 애매한 정치적 입장으로 피곤해진 그는 자유주의파의 우두머리가 되어 크로와지에를 지배하리라고 결심했다. 데스그리뇽 백작의 사건은 그 결심의 첫 단추였다. 말하자면 그는 권력을 괴롭히고, 권력에 겸손함과 동시에 오만하며, 권력이 자신들보다 우월해지는 상황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서민들에게는 왕권에 복종하도록 요구하는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법원장은 아무도 모르게 쏘바제를 매수해 검사가 없는 동안 백작을 체포했다. 그는 파리에 가 있는 검사가 통보를 받기 전에 기소 판결이 이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바람은 예기치 않는 까뮈조의 변절로 인해 좌절되었다.


예심판사 까뮈조는 데스그리뇽 가에 손을 들어주게 되면 모프리뇌즈 공작부인과 그녀의 아버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되기에 기회가 오면 파리 관할 법원의 판사를 거쳐 파리 법원의 판사로 임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던 입장이었다.


다음 날 아침, 쉐스넬의 집에 남장을 한 모프리뇌즈 공작부인이 도착했다. 그녀는 원고 측을 매수해서라도 승소하라며 국왕이 사유 재산을 털어 내놓은 십만 프랑을 들고 왔다. 쉐스넬은 너무 기뻐 그녀의 발에다 키스를 퍼부었다. 쉐스넬은 그녀를 데리고 까뮈조의 집을 찾아갔다. 쉐스넬은 까뮈조를 만나 크로와지에가 고의로 2년 동안 백작에게 거액의 어음을 발행하도록 허락했는데 이는 자신이 전부 갚았다고, 이번에 크로와지에가 소송을 건 위조문서에 대해서는 자신이 갚으려 크로와지에 집을 찾아갔는데 하필 부재중이라 그 부인에게 지불했는데 부인이 이를 깜박 잊고 남편에게 말하지 않아서 벌어진 불상사라고 해명한다. 그 사이에 공작부인은 까뮈조 부인을 만나 국왕의 은밀한 지원을 귀띔한다. 까뮈조는 데스그리뇽 백작을 신문해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이때, 까뮈조 부인과 공작부인이 들어온다. 까뮈조 부인은 남편의 귀에 대고 공작부인으로부터 파리 법원의 대리 판사 자리를 약속받았다고 귀띔한다. 그런 다음, 까뮈조 부인은 공작부인을 데리고 부법원장인 판사 블롱데(Blondet)를 설득하러 그의 집으로 가고, 쉐스넬은 까뮈조의 안내로 쉐스넬을 만나러 감옥으로 간다. 블롱데 판사는 자신의 아들에게 판사직을 물려주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기에 까뮈조 부인은 블롱데에게 공작부인을 소개하며 데스그리뇽 백작의 소송을 최대한 빨리 봉합하면 곧바로 판사의 아들을 판사직에 임명해줄 것임을 확약한다. 공작부인은 판사에게 내일 사표를 제출하시면 이번 주 안으로 아드님의 임명장을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오전 9시 반, 공판이 열리기 전에 부법원장 블롱데와 까뮈조가 법원 회의실에 모여 소송에 대해 상의한다. 까뮈조는 크로와지에가 소송을 걸게 된 원인인 그 돈이 이미 자기 아내에게 건네졌는데 그가 이를 모르고, 혹은 모른 척하고 소송을 걸었다며 서명 위조는 그저 사소한 부정행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양심적인 블롱데 판사는 그래도 위조는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그러자 까뮈조는 애초에 크로와지에가 백작에게 어음을 발행할 권리를 부여한 게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그러자 블롱데는 위조란 사취의 의도가 보여야 하는데 이 사건에는 그런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며 이 사건을 신속히 진행시키자고 촉구한다.


오전 11시, 뒤 크로와지에는 오후에 예심판사실로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고 서둘러 소환에 응한다. 판사는 크로와지에에게 데스그리뇽 백작과의 거래와 어음 발행에 대해 질문한 뒤, 그 어음의 금액이 이미 그의 집에 건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는다. 크로와지에는 아연실색한다. 쉐스넬 역시 소환장을 받고 출두한다. 쉐스넬의 주장은 크로와지에 부인의 증언에 의해 확증된다. 감옥에서 이미 쉐스넬의 지시를 받은 데스그리뇽 백작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격분한 크로와지에가 아내를 추궁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이를 계기로 남편이 원하는 대로 조카딸 뒤발이 백작과 결혼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한밤에 쉐스넬은 공작부인을 데스그리뇽 저택으로 데리고 간다. 공작부인은 아르망드에게 백작은 구제되었으며 백작의 사치를 부추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사죄한다.


그 다음 날 정오 경, 백작의 소송 사건으로 온 도시가 웅성거린다. 오전 10시에 완벽한 증거들로 인해 공소기각 판결이 이뤄서 백작이 석방되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데스그리뇽 저택에서 백작과 공작부인이 재회한다. 쉐스넬은 백작에게 공소는 기각됐지만 부채는 청산해야 하기에 백작이 돈 많은 유산 상속녀와 결혼하는 수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충언한다. 공작부인 역시 신분을 가리지 말고 돈 많은 가문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고 동조한다. 귀족 가문을 목숨처럼 여기는 아르망드가 기겁하자 공작부인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는 그들을 질책한다. 19세기인 지금, 15세기 환상에 젖어 있는 거냐며, 이제 귀족 신분은 없고 특권 계급만 있을 뿐이며, 이제는 재산을 소유해야만 훌륭한 귀족 가문이 될 수 있는 거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그러자 쉐스넬은 크로와지에의 조카딸을 추천한다. 공작부인은 적극 찬성하고는 빅튀르니엥에게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며 냉정하게 작별을 고하고는 떠난다.


6개월 후, 까뮈조는 파리 법원의 대리 판사로 임명된다. 블롱데는 왕실 법원의 고문으로 임명되었다가 그곳에서 은퇴한다. 블롱데의 아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롱쓰레 법원장의 권유로 뒤 크로와지에가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왕립 법원에 상소했지만 패소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백작이 위조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왕정주의자들은 크로와지에의 끔찍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두 파벌의 싸움은 백작의 소송 사건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궁중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빅튀르니엥은 국왕이 귀족원 의원직의 하사를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직업도 없이 곤궁하게 살아갔다. 빅튀르니엥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부르주아 상속녀와의 결혼이 불가능했기에 파리에서의 화려한 생활과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채 무위도식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1830년에 데스그리뇽 후작이 사망하자 일주일 후에 빅튀르니엥은 뒤발 양을 아내로 받아들였다. 뒤 크로와지에 부부는 뒤발의 결혼 계약서에 지참금 이외에도 막대한 유산을 기재했다.




분석


프랑스 및 세계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사건이 곧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 혁명으로 말미암아 구시대는 가고 신시대가 도래한다. 구제도는 오랫동안 굳어져 온 자신의 딱딱한 각질을 벗을 수밖에 없다. 봉건제도의 잔재인 귀족이라는 계급도 함께 종말을 고하고, 이제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산업혁명은 갈수록 돈에 더 큰 힘을 부여한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힘 있는 사람들로 부상하여 껍질뿐인 세습 귀족들을 은근히 몰아 부친다. 세상은 이제 돈을 가진 부르주아의 세계이지, 더 이상 귀족들의 세계는 아니다. 그러나 세습 귀족들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환상에 젖어 과거의 영화를 뺏기려 하지 않는다. 뼈대 있는 가문임을 내세워 ‘돈이나 가진’ 사람들을 무시한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귀족들은 그들의 영화로운 과거만을 음미하며 향수에 젖은 채 퇴행적인 삶을 거듭한다. 바로 이러한 인물이 데스그리뇽 후작이다. 그의 살롱에는 그 자신처럼 지난 시절의 ‘살아있는 골동품’들이 그룹을 이룬다. 반면, 현실을 상징하는 그룹이 뒤 크로와지에라는 상공업자의 살롱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들 두 그룹은 서로를 멸시하고 증오한다. ‘돈’과 ‘뼈대’ 사이의 마찰이며 알력이다. 이러한 대립은 발자크의 주요 테마들 중 하나로,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하는 세습 귀족들과 작위 대신 돈을 가진 현대판 귀족들인 대부르주아들 간의 알력과 싸움이며, 이는 지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발자크는 이처럼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사회 양상을 정확히 간파해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모습은 이익에 따른 사람들의 이합집산이다. 데스그리뇽 백작 청년의 위조 어음 사건에 대한 지방법원 판사들의 태도는 그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변화된 사회 속에서 계층 간, 그리고 개인 간의 이익에 따른 태도와 행위들을 구조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여 묘사해내고 있다.


발자크가 묘사하는 사회 공간 속에는 언제나 이익 때문에 대립하는 양측이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도 데스그리뇽 저택의 살롱 대 뒤 크로와지에의 살롱 간의 적대 관계, 그리고 데스그리뇽 백작의 재판을 두고 갈라지는 법관들 간의 대립 등이 선명하게 제시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상대편을 제거하기 위해 간악한 계략과 함정을 모색한다. 약한 쪽은 당하거나 제거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타협의 길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선에서일 뿐이다. 하지만 그 타협은, 이익의 균형이 어느 한 쪽에 의해 언제나 깨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 참고 문헌 : 〈골동품 진열실〉, 발자크 저, 최병곤/김중현 역, 국학자료원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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