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지방생활정경 제10권
〈잃어버린 환상(Illusions perdues)〉은 1937년부터 1843년까지 총 3부로 나뉘어 출판된 소설로, 제1부 〈두 시인(Les Deux Poètes)〉, 제2부 〈파리에 온 지방의 위인(Un grand homme de province à Paris)〉, 제3부 〈발명가의 고뇌(Les Souffrances de l’inventeur)〉는 각각 독자적인 구조와 의미를 지닌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에게 헌정된 이 소설은 『인간희극』의 「지방생활 정경」으로부터 「파리생활 정경」으로의 전환점에 위치한 작품이다. 발자크는 한스카 부인(Madame Hanska)에게 보낸 1843년 3월의 편지에서 〈잃어버린 환상〉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발자크가 이 소설에 쏟아 부은 긴 시간과 정성으로 볼 때, 그리고 이 소설에서 재현하고 있는 문학과 삶의 총체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발자크 소설 체계의 순환 축이 되는 작품이다.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방은 흔히 유폐와 고풍의 장소이고, 파리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지는 도가니이자, 가장 격렬한 정념들의 집합소이다. 주인공 뤼시앙 드 뤼방프레(Lucien de Rubempré)는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시인의 영광을 꿈꾸며 파리로 올라가지만, 그 야망을 달성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영혼만을 안은 채 낙향한다. 뤼시앙과 같은 청년에 의해 지방 생활과 파리 생활은 확연하게 대조된다.
1837년 베르데(Werdet) 출판사에서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판된 제1부는 훗날 제1부 제목이 전체 제목으로 채택되면서 새로이 〈두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변경된다. 제1부에서는 앙굴렘(Angoulême)이라는 지방 도시에서의 소규모 기업 활동과 일상생활, 그리고 사교 생활을 보여 주는데, 왕정복고 시대의 앙굴렘은 구체제의 전통적 질서에 복종하는 사회로 제시되어 있다.
발자크가 그리는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는 운동 중이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유형들도 끊임없이 변모한다. 발자크는 당시의 프랑스 사회를 지방과 파리로 분할하고, 사회적 계층들로 분할하고, 남자와 여자를 대립시키고, 전형들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생활을 여러 관점에서 관찰한다. 발자크의 독창성은 그러한 분할 요소들을 서로 교차시키는 데 있다. 발자크의 인물들은 그들이 생활하는 환경과 소속된 사회그룹, 그리고 관계를 형성하는 상대방의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른 삶의 양상을 보인다. 발자크의 인물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단순하게 규정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행동을 달리 하면서 그 성격이 규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은 타인들의 삶에 의존하면서도, 고정된 욕망에 괴로워하는 고독한 인물들이다. 특히 명예와 부를 좇아 지방에서 파리로 진출한 청년 인물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응고되지 않은 가변적인 인물의 특성을 보인다.
지리적으로는 파리(Paris)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으나 그 생활은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양태로 펼쳐지는 앙굴렘이라는 지방 도시에 조그마한 인쇄소를 경영하는 세샤르(Séchard) 영감은 아버지의 인쇄소를 떠맡으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경제적인 능력도 없는 아들 다비드 세샤르(David Séchard)에게 낡은 인쇄소의 경영권을 매우 비싼 값에 억지로 떠넘긴다. 다비드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파리의 대규모 인쇄소에서 인쇄술을 익힌 후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낡고 수익성 없는 인쇄소를 과도한 값에 사들여 운영하게 된다.
당시 지방의 상인들은 자유주의자들의 일감과 왕정주의자들의 일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고객을 얻으려면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표명해야만 했던 그런 시절이었지만, 다비드는 인쇄소를 경영하면서 사업가로서는 적절하지 않게, 왕정복고 정부에 생겨난 종교 세력의 반동에도, 자유주의에도 무관심하며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가장 해로운 중립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반면에 그의 라이벌인 쿠엥테(Cointet) 형제는 왕정주의와 보조를 맞추면서, 다비드를 자유주의자, 무신론자라고 비방한다. 이러한 비방에 영향을 받은 도청과 주교구는 마침내 쿠엥테 형제에게 인쇄의 특권을 부여한다. 덕분에 쿠엥테 인쇄소는 다비드 인쇄소의 주력 사업이었던 공보 신문을 발간해 도의 공고문과 재판 기사를 독점한다. 이로 인해 다비드의 인쇄소는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다비드의 아버지 세샤르 영감은 예민한 통찰력을 발휘해 쿠엥테 형제에게 인쇄 기계를 팔아넘기는 대신에 앞으로 다비드 인쇄소에서는 그 어떤 신문도 인쇄하기 않기로 약정해버린다. 다비드 인쇄소로서는 자살 행위였지만 이미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이제는 자기 소유가 아닌 인쇄소에는 별 관심이 없는 세샤르 영감은 그저 목돈을 손에 쥘 생각으로 쿠엥테 형제에게 신문을 팔아치워 버린다. 교활한 세샤르 영감은 사실, 아들이 경영난으로 집세를 밀리게 되면 선취득권 채권자가 되어 아들의 사업에 다시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노리고 있었다.
다비드가 사업에 이토록 무관심한 몇 가지 원인 중에 하나는 이 무렵 다시 만난 학교 친구 뤼시앙 샤르동(Lucien Chardon)과의 우정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뤼시앙은 약사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무척 심한 궁핍에 빠져 있었다. 뤼시앙과 그의 여동생 에브(Ève)는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미모를 물려받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온갖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뤼시앙의 장래를 위해 끝없이 헌신했다. 다비드는 인쇄 감독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뤼시앙에게 그 일을 배워 보라며 월급도 후하게 제시해 뤼시앙을 절망에서 구한다. 다비드와 뤼시앙은 두 사람 다 높은 지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밑바닥에 내던진 운명이라는 점에서 불과 며칠 사이에 강력한 정신적 우의로 결속된다. 게다가 다비드는 얼마 후에 아름다운 에브를 보고는 단번에 반해버렸기에 뤼시앙이 마치 선택된 형제처럼 여겨진다.
다비드와 뤼시앙은 지적인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인쇄소 운영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많은 독서와 명상을 해온 다비드와, 역시 많은 독서와 비교를 해온 뤼시앙은 고고한 견해로 사회를 비판하며 서로의 절망을 다독인다. 많은 시간과 견해를 함께 공감하는 두 사람이지만, 실은 그 외관과 성격에서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다비드는 가슴이 넓고 어깨가 튼튼하며 짙은 갈색 머리에 혈색 좋고 기름진 얼굴인 반면에, 뤼시앙은 조각처럼 아름답고 또렷한 이목구비와 희고 부드러운 살결, 곱슬곱슬한 금발과 가냘픈 몸에 우아함과 귀티를 지니고 있었다. 강한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심한 성격과 끈기를 지닌 다비드는, 여자처럼 부드럽고 우아한 몸맵시와는 어울리지 않게 대담한 구석이 있는 뤼시앙의 번득이는 재치와 야심 찬 기질, 육체적 아름다움의 우월성에 강렬하게 유혹되어 뤼시앙을 우상처럼 경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두 친구는 약 3년 동안 수많은 문학과 과학의 대작들을 함께 읽고 논하며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들은 둘 다 가난했지만 예술과 과학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현재의 비참을 잊고 빛나는 장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했다.
앙굴렘은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뉘는데, 윗마을엔 정부와 사제관과 법원이 있고 귀족 계급이 살고 있는 반면에, 아랫마을인 루모(l'Houmeau)는 운송 회사, 우체국, 여관, 승합마차 회사 등이 밀집된 부유한 산업 도시이다. 윗마을에는 귀족과 권력이, 아랫마을에는 상업과 돈이 존재했기에 두 지역 사회는 끊임없는 적대 관계에 있었다. 윗마을에는 대부분의 귀족 가문이 살거나 자신들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오랜 부르주아 가문들이 살고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몹시 배타적이었다. 루모의 주민은 마치 천민 계급처럼 취급당했다. 때문에 루모의 주민이 윗마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뤼시앙이 사랑하는 바르즈통(Bargeton) 부인은 윗마을 귀족이었다. 바르즈통 부인은 문학과 예술을 몹시도 사랑했는데, 이런 고상한 취미를 교감할 만한 상대를 열망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인 사제로부터 문학과 예술에 대한 비범한 교육을 받은 그녀는 “스스로를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멸시”하고, “온갖 허영심으로 가득 찬” 여성이다. 그녀는 모든 일에 가슴이 설레었고, 몽롱해졌으며, 열광했다. 감정기복이 심해 끊임없이 감탄하다가도 이상한 경멸감에 사로잡혀 노호하다가 한순간 의기소침해지며 자신을 소진시켰다. 한때, 황제친위대 대령과 사랑에 빠졌지만, 대령이 전장에서 포탄을 맞고 숨지는 바람에 사랑의 상처를 떠안게 되었다. 이후로는 지방의 하찮은 남자들과의 사랑 따위엔 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위엄을 끌어올리고 여왕 같은 존엄성을 갖추기 위해 세련된 태도와 멋을 부리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아첨꾼들에게 꼿꼿하게 군림했다.
이 아첨꾼들 중 한 사람인 세무서장 샤틀레(Châtelet) 남작은 스스로 사교술에 강하다고 자부하는 인물이다. 그는 바르즈통 부인이야말로 자신에게 적합한 여인이라고 판단하고, 문학과 예술에 열광하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에게 앙굴렘에도 숭고한 젊은 시인이 있다며 뤼시앙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뤼시앙은 에브가 저축해 둔 금화로 장만해준 새 구두와 새 양복을 차려 입고 바르즈통 부인의 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루모 사람들에게 바르즈통 저택의 호화로움은 소형 루브르 궁이라 할 수 있다. 뤼시앙은 여왕처럼 앉은 채 미소를 보내며 우아한 교태를 부리는 바르즈통 부인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다. 뤼시앙의 빼어난 미모와 수줍은 태도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였기에 바르즈통 부인 역시 뤼시앙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간파한 샤틀레가 뜻밖의 연적을 처단하기 위해 뤼시앙 어머니가 산모를 돌보는 천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퍼뜨린다. 주변 귀족들이 바르즈통 부인을 찾아와 뤼시앙의 출신을 운운하자, 바르즈통 부인은 무릇 “천재는 언제나 귀족”이라고 단언해 일축해버린다. 이로써 뤼시앙은 우격다짐으로 바르즈통 부인의 사교계에 들어가게 되지만, 살롱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어떤 독소처럼 여겨진다.
바르즈통 부인은 뤼시앙을 천재 시인으로 추앙하며 귀족에 대한 그의 갈망을 일깨우고 마음의 타락을 부추긴다. 그녀는 그에게 과감하게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인 뤼방프레(Rubempré)라는 귀족 성을 쓰라고 조언한다. 이제까지 다비드의 차가운 이성으로 억제되어왔던 뤼시앙의 명성에 대한 열망은 증오에 불타던 자유주의자를 왕정주의자로 탈바꿈시킨다.
바르즈통 부인과의 사랑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뤼시앙은 그녀에게 자신이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형으로 여기는 다비드도 그녀의 살롱에 받아들여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바르즈통 부인은 사교계 사람들의 편견을 들어, 그녀가 먼저 다비드를 만나본 후에 결정하겠다는 회신을 보낸다. 상류 사회의 어법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뤼시앙은 그녀의 편지를 일종의 승리로 해석한다. 그러나 다비드는 사교계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고사한다. 더군다나 뤼시앙에게 연인을 잃게 될 위험까지 무릅쓰고 싶지는 않다며 뤼시앙에게는 사교계가 도움이 되겠지만 자신에게는 해로울 뿐이니 자신은 검소하고 근면한 삶을 살겠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뤼시앙은 다비드의 아름다운 영혼에 새삼 놀라고 감동한다. 곁에서 듣고 있던 에브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인다.
다비드는 에브의 미모뿐만 아니라, 힘든 생활에도 조용히 순응하며 상냥하고 헌신적인 에브의 성품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 다 요란한 의사 표현 없이 서로를 은밀히 생각하며 순박한 정열을 간직했다. 다비드는 에브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에브는 궁핍 때문에 소심해져 있었다. 에브에게 있어 다비드의 가장 큰 매력은 뤼시앙에 대한 광신이었다. 다비드는 에브에게 사교계는 욕망만 자극할 뿐, 문학적 성공이란 고독 속에서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자존심 강한 뤼시앙이 성공을 이루기도 전에 사교계의 나태함과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재정적, 정신적으로 파산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며, 바르즈통 부인에게도 너무 미쳐 있기에 그녀가 뤼시앙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뤼시앙이 언젠가는 파리로 가게 될 것인데, 파리의 생활비는 비싸니까 다 함께 힘을 합쳐 뤼시앙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청혼한다. 결국 다비드는 에브와 결혼하고, 아내의 가족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황금빛 미래를 보장해주기 위해 새로운 식물성 원료를 이용한 종이의 제작에 몰두한다.
뤼시앙은 마침내 귀족과 부르주아의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 바르즈통 부인의 조언대로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뤼방프레라는 어머니의 귀족 성을 취한다. 시인으로서 재능은 타고났지만 사회적 현실 감각이 결여된 그는 상류 사회 사람들 모두가 그가 살롱에서 낭송하는 시를 지루해할 뿐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예의상 찬사와 갈채를 보낸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은 뤼시앙 뒤에서 그를 천대하고 그의 시를 폄하했지만, 뤼시앙은 바르즈통 부인의 치마폭에 싸여 귀족 놀음에 도취되어갔다.
어느 날, 귀족들은 바르즈통 부인의 오판을 일깨워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각자 거만스런 풍자로 뤼시앙을 모욕 주자고 의기투합한다. 그날의 충격으로 뤼시앙은 잠시 낙담하지만, 이내 결의를 다지고 다시금 살롱에서 시를 낭송하려 한다. 그러나 귀족들은 뤼시앙과 바르즈통 부인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며 카드놀이에만 몰두한다. 그러자 귀족들의 멸시에 상처를 받은 바르즈통 부인은 자기 방으로 사라져버림으로써 모멸에는 모멸로 응수한다.
귀족들의 멸시는 오히려 뤼시앙에게 상류 사회에 머물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리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한다. 바야흐로 뤼시앙은 이제 인쇄감독이 아니라 뤼방프레였으며, 루모 사람이 아니라 바르즈통 부인 댁에서 일주일에 네 번씩이나 만찬을 하는 윗마을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는 최상류 인사 중 한 사람으로 꼽혔고, 앙굴렘에는 뤼시앙과 바르즈통 부인의 사랑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파다해진다.
귀족들 전체가 호시탐탐 두 사람의 불륜에 대한 확증을 확보할 기회만 노리며 두 사람을 염탐하고 있던 어느 날, 바르즈통 부인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그녀와 대등하게 여겨진 나머지 그녀를 지배하려 드는 뤼시앙의 태도 변화를 간파한 바르즈통 부인은 그를 매몰차게 대했고, 이에 뤼시앙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사랑을 맹세하는데, 때마침 들어서던 한 귀족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야 만다. 소문은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불어나 바르즈통 부인의 정조에 대해 진실 공방이 벌어진다. 존엄성에 상처를 받은 바르즈통 부인은 그만 지방 생활에 혐오감이 들 정도로 지쳐버린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은 뤼시앙의 천재적 재능을 후원했을 뿐이라며 결백을 맹세하고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소문을 퍼뜨린 귀족을 찾아가서 결투를 청해달라고 간청한다. 바르즈통은 아내의 말대로 결투를 청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바르즈통 부인은 당분간 살롱을 폐쇄하고 파리에 가 있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뤼시앙에게 예술가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파리야말로 그의 지성의 성공의 무대가 될 터이니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녀의 친척인 데스파르 부인(Madame d’Espard)이 파리 사교계를 주도하는 대귀족이니 만큼 데스파르 부인을 통해 뤼시앙의 문학적 명성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부추긴다. 그녀의 부추김에 한껏 고양된 뤼시앙은 다비드와 에브의 결혼식을 이틀 앞두고 파리 행을 결심한다. 다비드와 에브는 눈물을 흘리며 뤼시앙이 파리에 체류할 비용을 빚을 내 마련한다. 뤼시앙은 다비드가 보증을 서고 빌려온 2천 프랑을 들고 바르즈통 부인과 함께 파리로 떠난다.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추상적인 제목은 작중인물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은 발자크의 작품들의 제목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독특한 제목이다. 누가 무엇에 대한 환상을 어떻게 잃어버리는지 확실하지 않다. 발자크 자신은 1837년의 서문에서 ‘환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작가는 사람들이 지방에서 비교가 결여되어 서로 서로에 대해 품는 그러한 환상들에 대해 생각했었다. (중략) 그러나 〈잃어버린 환상〉은 스스로 위대한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청년과, 그로 하여금 자기를 믿도록 만들다가 파리의 한복판에 내던져 가난하고 보호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한 여인과만 관계되어서는 안 되게 되었다. 파리와 지방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그 불길한 매력은 작가에게 19세기의 청년을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 주었다. 작가는 금세기의 커다란 상처에 대해, 그토록 많은 삶과 그토록 많은 아름다운 생각들을 갉아먹고 지방 생활의 조촐한 종교에 끔찍한 반응을 만들어내는 저널리즘에 대해 갑자기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특히 이 시대의 치명적인 환상에 대해, 천재성에 어떤 방향을 부여하려는 의지도 없이, 어떤 일탈을 억제하는 원칙도 지니지 못한 채, 여러 가정이 어느 정도의 천재성을 지닌 자식들에 대해 품는 그런 환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림의 폭은 넓어지게 되었다.”
두 ‘시인’ 다비드와 뤼시앙은 이야기 전개의 두 축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뤼시앙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 뤼시앙이 주로 행동을 이끌어 나가며, 그에 대한 심리묘사가 다비드에 대한 것보다 월등하게 상세하다. 그러한 불균형은 두 친구의 성격 차이에서 기인한다. 수줍고 부드러운 기질의 다비드는 지워지고, 대담한 뤼시앙은 부각된다. 부동의 다비드는 작업장과 가정에 고정되어, 파리와는 멀리 거리를 둔 채 루모에서 떠나지 않는 반면에, 뤼시앙은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먼 거리를 이동한다. 또한 뤼시앙의 이야기로 무게추가 쏠리는 것은, 그가 거의 항상 무대 위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수시로 변화하는 능력과, 여러 가지 모험을 하는 능력, 성공의 기회를 잘 포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불완전하게나마 비밀을 간파할 수 있고, 인생의 예측 불가능한 사태들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안다.
다비드는 뤼시앙의 분신으로 뤼시앙을 돋보이게 하는 인물이고, 뤼시앙의 심판자이다. 신체적 측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은, 그 성향과 지적인 차원에서도 대조적이면서 일종의 ‘정신적 우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비드는 그 자신도 파산 직전에 있으면서 뤼시앙에게 인쇄소 감독의 자리를 제안함으로써 옛 학교 친구를 구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들의 운명의 유사성과 성격의 차이에 의해”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해진다. 뤼시앙은 자연과학도의 길에 예정된 운명이지만 문학의 영광으로 향하고 있고, 다비드는 명상의 재능이 있지만 정밀과학으로 기울어 있다. 그들은 각자 서로 다른 길을 통하여 ‘시’의 세계에 도달해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정치적인 차원,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 사람은 작품을 쓰는 시인이고, 기회주의적인 자유주의자이고, 유혹하기 쉬운 정신의 소유자인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새로운 종이 제조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고, 단호한 야당이고, 의인이다. 이렇듯 두 사람의 결합은 상반되는 것들의 조화로운 융합을 이루어낸다.
뤼시앙과 다비드 두 청년의 미덕은 ‘젊음의 소심함’, ‘수줍음’, 영혼의 고귀함이다. 젊은이들은 이곳-지금에 살지 않고, 끊임없이 기다림의 상태, 계획의 상태에 있다. 응석받이 뤼시앙은 빛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이 순수성 상실의 전조이다. 앙굴렘의 귀족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의 뤼시앙에게서는, “야심이 시작되는 순간 순진한 감정은 사라진다.” 바르즈통 부인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타오를 때는 뤼시앙의 ‘고귀한 감정’은 사라진다. 인쇄업자 다비드는 그의 ‘사회적 무의미’에 대해 갖는 감정 때문에 희망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영광스런 성공을 포기하면서 굳건하게 ‘아름다운 희망’의 세계에 남아 있다. 그러나 뤼시앙에게 있어서는 상실이 과대망상적 형세를 보이게 된다. 그는 바르즈통 부인과의 결혼, 문학적 영광의 획득, 사교계의 지배 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지닌다. 그러나 뤼시앙은 화려한 환상 속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고, 그의 권력 의지는 이내 현실의 장벽에 부딪친다. 뤼시앙에게 있어 현실과의 충돌은 먼저 바르즈통 살롱에서 겪게 되는 수모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로서는 앙굴렘의 여왕이 그를 사랑하므로 쉽게 잊을 수 있는 실패이다.
뤼시앙과 다비드의 우정은 다비드의 온정에 의해 공고해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감정의 상호성이 없고,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에고이스트 뤼시앙은 어머니나 누이, 친구 등, 자기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을 모른다. 반면에 다비드는 뤼시앙을 “어머니가 자식 대하듯” 애지중지하고, “우상처럼 경애”한다. 뤼시앙은 마치 사랑받는 여인처럼 ‘명령’하고, 다비드는 기꺼이 복종한다. 뤼시앙의 육체적 아름다움이 어떤 ‘우월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다비드는 전적으로 헌신한다. 다비드는 뤼시앙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그를 “제2의 나”라고 말한다. 다비드는 아내 에브와 함께 뤼시앙의 성공을 위한 ‘수호천사’ 역할을 하며, 뤼시앙의 방종한 생활에 대한 감시자 역할도 한다.
청렴한 다비드는 뤼시앙의 타락이 진전될 때마다 판관으로 변한다. 뤼시앙은 다비드의 능력을, “마음의 깊은 곳을 잘 파악하는 그 통찰력”을 두려워한다. 뤼시앙은 친구가 통찰력을 보여주는 때면 그에게서 멀어지고 보지 않으려 한다. 뤼시앙은 친구의 시선을 피해 물러나와,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기의 야심에 대한 합리적인 변명을 찾아낸 후에야 친구를 다시 만난다. 바르즈통 부인에 대한 뤼시앙의 사랑에는 ‘야심’이 깃들어 있어서, 그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출세도 하려고” 한다. 궁핍한 젊은이에게 그것은 “무척 자연스런 이중의 욕망”이다. “사교계의 냉혹한 법칙들”을 간파하기 시작한 뤼시앙은 “정치와 타산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뤼시앙은 “악에서 선으로, 선에서 악으로 다 같이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기에 그의 행동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바르즈통 부인만이 아니라 뤼시앙도 “불길한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바르즈통 부인을 따라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할 때 뤼시앙은 위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의 출발이 남은 가족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고, 집안을 정돈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비드는 파리에서의 뤼시앙의 앞날에 대해 불안해 할 따름이다. 뤼시앙은 바르즈통 부인에게서 버림받을 것이며, 파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다비드는 에브에게 예고한다.
바르즈통 부인은 여성 인물들 중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뤼시앙의 첫사랑인 그녀는 야심가가 계획하는 첫 번째 사회적 정복의 대상이다. 또한 그녀는 그의 첫 멘토이고, 자기 자신이 뤼시앙과 같은 야심가이다. 바르즈통 부인은 뤼시앙을 유혹하는 역할을 맡는데, 그녀는 청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고, 사교계에서의 성공과 문학적 영광에 눈이 멀어 있다.
▶ 발췌 논문 : 〈발자크의 교육소설: 『잃어버린 환상』〉, 이철(전남대학교).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6년
▶ 참고 문헌 : 〈잃어버린 환상〉, 발자크 저, 이철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 작품 배경 및 분석은 상기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발췌한 것이고, 줄거리는 상기 참고 문헌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