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지방생활정경 제11권
1839년에 발표된 〈잃어버린 환상〉의 제2부 〈파리에 온 지방의 위인〉은 뤼시앙의 여러 가지 꿈이 파리에서 하나하나 철저하게 좌절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서 뤼시앙은 한편으로는 심리적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활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독자를 위해 사회적 현실을 탐색하는 기술적 도구의 역할을 한다. 뤼시앙의 사회 체험은 출판계, 언론계, 문단, 정치계, 상류 사회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개되는데, 그의 체험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개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거기에는 문학이나 사랑 혹은 우정은 돈에 의한 공략의 대상일 뿐이며, 젊은 재능인의 아름다운 환상들은 추악한 현실과 부딪쳐 깨지고 만다.
고풍스런 인쇄소에 대한 교육적인 묘사로 시작하는 제1부에서는 작품의 물질적인 재료인 종이의 유래와 역사, 인쇄술의 변화 과정 등이 다뤄졌다면, 제2부에서는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근대 문학의 창작 기법, 대중 연극의 공여 장치와 배우들의 연기법, 문학 작품의 유통 메커니즘과 상품화 양상, 신문평으로 대표되는 문학의 평가, 신문 문예란의 작성 비밀과 그 기법, 상품화된 문학의 소비자로서의 독자 등, 문학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전 과정이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묘사된다.
그토록 우아한 척하는 파리에는 정작 부유한 여행객이 자기 집처럼 편히 쉴 수 있는 호텔은 아직 하나도 없었기에 뤼시앙과 바르즈통 부인은 파리에 도착해 춥고, 햇볕이 안 들고, 커튼은 바래고, 바닥 타일은 닳아빠져 빈곤해 보이는 초라한 호텔을 숙소로 정한다. 그런데, “생활의 틀이 되는 사람들이나 장소에서 일단 분리되면 더 이상 똑같은 모습이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초라한 호텔에서 마주한 뤼시앙과 바르즈통 부인은 서로에게 더 이상 앙굴렘에서의 서로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뭔가 초라하고 왜소하게만 여겨진다.
다음 날 오후에 샤틀레 남작이 호텔에 나타난다. 샤틀레는 바르즈통 부인이 앙굴렘을 떠남과 동시에 그녀를 뒤따라왔다. 그는 바르즈통 부인에게 그녀가 남편의 결투 후에 한낱 약사의 아들인 뤼시앙과 함께 같은 마차로 여행하고 같은 숙소에 묵고 있다는 사실이 신중하고 엄격한 데스파르 부인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파리의 사교계 전체에서 배척당할 거라고 지적한다. 그러니 뤼시앙을 사랑하더라도 숙소를 따로 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적당한 방을 찾아드리겠다고 제안한다. 파리식으로 무척이나 우아하게 차려입고 좋은 말이 끄는 멋진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난 샤틀레는 “사교계의 여자에게 사교계의 말을 했던 것”이다. 바르즈통 부인은 이내 수긍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 시간 후, 바르즈통 부인은 샤틀레가 보낸 마차를 타고 거처를 옮긴다. 뤼시앙은 “이미 자기가 앙굴렘의 뤼시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화려한 무도복을 입고 다시 나타난 샤틀레는 매우 우아하고 정중한 태도로 내일 바르즈통 부인과 뤼시앙까지 데리고 오페라 극장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바르즈통 부인은 파리의 호화로움과 사치스러움에 눌려, 행여 지방사람 티라도 날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뤼시앙은 처음으로 파리의 여러 대로를 걸으며 현기증 나는 파리의 빠른 움직임에 어리둥절하다. 앙굴렘에서는 존경받는 시인이었던 만큼 아무도 알아보아 주지 않는 파리에서의 상실감은 더욱 크다. 전직 비서관이었던 샤틀레가 파리에 오자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매끈한 모습인데 반해 뤼시앙은 그 특별한 미모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럽고 가련하기 그지없다.
다음 날 바르즈통 부인은 사촌 데스파르 부인을 만나러 가고, 뤼시앙은 저녁에 오페라에 가기 위해 양복점에서 새 옷을 사온다. 뤼시앙은 오가는 파리 여자들의 우아한 미모에 눈이 휘둥그레져, 상대적으로 바르즈통 부인이 초라하게 여겨진다.
이윽고 뤼시앙은 오페라에 들어선다. 바르즈통 부인은 뤼시앙을 데스파르 부인에게 소개한다. 오페라는 뛰어난 사회적 장소이다. 사교계 사람들은 스펙타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들을 관찰하러 그곳에 간다. 오페라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은 타인을 보는 것과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뤼시앙은 오페라 좌석에서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뤼시앙은 댄디의 외모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사교계의 예법을 배우는 능력이 별로 없었기에 사교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의 숨은 뜻을 올바르게 해독할 줄 몰라 그들의 냉소적인 표정을 간과하고, 바르즈통 부인의 심리를 완전히 틀리게 해석하고, 데스파르 부인의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는 또한 사교계 사람들의 과장된 찬사 뒤에 숨은 악의를 알지 못한다. 게다가 데스파르 부인의 세련된 모습에게 한눈에 매료되어 그녀를 뜨겁게 쳐다보는 시선을 바르즈통 부인에게 들키고 만다. 샤틀레의 은밀한 악의로 뤼시앙이 한낱 약사의 아들이며, 귀족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는 사실이 데스파르 부인의 귀에 들어간다. 데스파르 부인은 바르즈통 부인에게 파리 전체의 비웃음거리가 되기 전에 지금 당장 돌아가자고 재촉한다. 그리하여 뤼시앙은 이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두 부인은 오페라를 나서 마차에 오른다.
다음 날 뤼시앙은 바르즈통 부인을 방문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다른 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우연히 만난 샤틀레는 뤼시앙에게 뤼시앙의 천한 신분이 그 이유라고 알려주며 다락방에 박혀 걸작을 만들거나 어떤 권력이라도 붙잡으라고, 그러면 사교계가 뤼시앙의 발아래 엎드릴 거라고 충고한다. 뤼시앙은 자기를 거부하고 버린 바르즈통 부인의 편지들을 모두 모아 되돌려 보내면서, “파리에서 친구도 보호자도 없이 혼자”라는 것을 통감한다.
앙굴렘에서 들고 온 2천 프랑이 이미 거의 바닥난 뤼시앙은 가난한 학생들의 식당인 플리코토(Flicoteaux)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지낸다. 그곳에서 뤼시앙은 에티엔 루스토(Étienne Lousteau)를 만난다. 루스토 역시 2년 전에 고향인 베리(Berry)를 떠나 파리로 상경한 부르주아 출신이다. 그는 소신문의 기자로, 새로 나온 작품들에 대한 서평과 연극평을 주로 쓴다. 그러나 그는 돈이 없을 때만 플리코토에 와서 식사를 했기 때문에 열흘씩 보이지 않을 때가 잦았다.
뤼시앙은 오전에는 생트 즈느비에브(Sainte-Geneviève) 도서관에서 자신의 소설과 시를 조탁하고 역사를 공부하며 보냈는데, 그곳에서 다니엘 다르테즈(Daniel d’Arthez)를 만난다.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을 닮은 그는 현재의 가장 유명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고, “아름다운 재능과 아름다운 성격의 일치를 보여주는” 사람이며, “재능이 자기 노예들의 이마에 찍어주는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이다. 그의 생활은 무척 검소하여, 그의 유일한 사치는 방에 켜는 촛불이다. 뤼시앙이 파리에서 ‘형제’로 생각하는 첫 번째 친구인 다르테즈는 연상의 보호자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는 공부하고 말하는 방식에서, 그리고 옷을 입고 거주하는 방식에서 교사 역할을 한다. 다르테즈는 문학의 윤리를 대표하며, 뤼시앙이 쓴 소설과 신문 비평 기사들을 고쳐준다. 그는 뤼시앙이 쓴 소설 〈샤를 9세의 궁수(L'Archer de Charles IX)〉에 대해 엄정한 비판을 한다. 당시의 인기작가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아류가 되지 않으려면 그와 다른 수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의 주제를 다룰 때에는 측면에서도 다루고 뒷면에서도 다룸으로써 소설의 구상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역사를 소재로 삼을 때도 개개의 왕조에 대해 적어도 한권 이상의 작품을 써야 하며, 이미 알려진 사실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정신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뤼시앙의 소설을 비판한다. 다르테즈는, 소설은 그 시대의 의상, 가구, 가옥, 실내 장식, 개인 생활 등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때 역사적 구체성을 띨 수 있고 삶의 생동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소설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의 소설관은 발자크 자신의 소설관이기도 하다.
다르테즈는 과학과 철학과 문학에 매료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모임인 세나클(Cénacle)의 구성원이다. 브리도(Bridau), 비앙숑(Bianchon), 지로(Giraud), 리달(Ridal), 메이로(Meyraux), 랑베르(Lambert), 크레스티앵(Chrestien) 등의 세나클 멤버들은 다르테즈를 “이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신비스런 천재”로 여기면서 세나클의 우두머리로 삼고 있다. 다르테즈는 발자크가 스스로 원하는 자화상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비앙숑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의사이며, 지로는 심오한 철학자로서 “모든 체계를 휘저어 그것들을 판단하고 표현하고 형식화”한다. 서클에서 예술을 대표하는 브리도는 이탈리아 파의 뒤를 이은 새로운 유파의 대가로, 그의 그림은 대담하나 변덕스럽고 환상적이다. 리달은 몰리에르(Molière)나 라블레(Rabelais)와도 비견되는 희극 작가이고, 메이로는 퀴비에(Cuvier)와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 사이의 유명한 논쟁을 부추기고 일찍 죽은 과학자이며, 루이 랑베르는 발자크의 또 다른 분신으로 〈의지론〉을 쓴 신비주의 사상가이며, 마지막으로 클레스티앵은 유럽 연방을 꿈꾸는 공화주의자로, “지성계의 쾌활한 방랑자”, “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의 모습을 바꾸었을 위대한 정치이론가”이다. 이 멤버들은 서로가 존경하고 우의가 돈독하기 때문에 “가장 상반되는 사상과 교리들 간에도 평화가 유지”된다. 이들은 질투를 모르며, 성격은 오후하고 개방적이다. 모두가 빈곤한 생활을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서는 지적인 풍요의 호화로움이 감돈다. 다르테즈는 뤼시앙을 세나클에 받아들이고 격려하여 용기를 북돋는다. 파리의 사교계에서 거절당한 뤼시앙은 앙굴렘에서 다비드와 나누던 우정에 해당하는 환경을 세나클에서 찾아낸다. 오페라가 서로 감시하고 심판하기 위해 대면하는 장소라면, 세나클은 함께 연대감을 갖고 서로 사랑하는 장소이다. 오페라는 사교생활의 명소인 반면, 세나클은 지식과 정신생활의 명소이다.
얼마 후 뤼시앙은 플리코토에서 우연히 루스토를 다시 만난다. 뤼시앙은 루스토에게 자기가 쓴 소네트 시들을 읽어준다. 궁핍에 찌들고 야망에 사로잡힌 뤼시앙은 플리코토 한 쪽 구석에서 우울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던 다르테즈를 못 본 척하고 루스토를 따라간다. 루스토는 파리에서의 문단 생활을 뤼시앙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고, 저널리즘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그는 약품장수 마티파(Matifat)가 생활비를 대주는 여배우 플로린과 함께 살고 있다. 뤼시앙은 루스토에 이끌려 팔레 루아얄(Palais-Royal)의 정글을 발견하는데, 그곳에는 파리 사회의 온갖 타락상이 집결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서적상과 정략, 도박과 매춘과 패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발자크는 온갖 악덕이 교차하는 팔레 루아얄을 통해 문학까지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타락한 자본주의의 실례를 보여준다. 뤼시앙이 세나클의 우정을 포기하고 타락한 루스토를 따라나서는 것은, 저널리스트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뤼시앙이 홀로 탐험에 나서기에는 파리의 출판계나 언론계는 너무도 넓고,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는 저널리스트인 루스토는 지방 출신의 이 신참을 문학 세계에 소개한다. 뤼시앙의 재능을 알아본 신문사 사장 피노(Finot)는 뤼시앙을 저널리스트 무리 속에 끌어들여 그의 재능을 착취하기 위해 그의 비위를 맞춘다. 루스토는 신문기자란 “한 당파의 일원이 되는 것”이고, “여러 신문에서 적을 공격하고 서로 돕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성공을 위해 알아야 하는 비밀과 법칙들을 가르쳐 준다. 뤼시앙은 “다르테즈의 고귀한 우정과 루스토의 손쉬운 동료애 사이의 어떤 차이도” 알아보지 못한다. “멀지만 명예롭고 확실한” 세나클의 길과, “암초가 깔려 위험하며, 양심을 더럽혀야 하는 흙탕물로 가득 찬 길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뤼시앙은 신문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인다. 뤼시앙은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의 연극평을 써 신문 비평계에 혁명을 일으킨다.
뤼시앙은 신문 기자들과 한데 어울려 그들의 권력에 감탄하는 자리에서 풍요로움의 환락을 처음 맛보고는 호사의 매력과 훌륭한 음식에 사로잡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그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배우 코랄리(Coralie)를 만나 관능적인 쾌락에 탐닉한다. 코랄리는 그녀의 생활비를 대주는 옷감 도매상인 카뮈조(Camusot)의 정부였는데, 뤼시앙을 열렬히 사랑한 나머지 카뮈조를 외면한다. 뤼시앙은 코랄리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동거생활을 시작한다. 돈이 절실해진 뤼시앙은 마침내 피노의 신문사 기자가 되는 계약서에 서명한다. 세나클 멤버들은 뤼시앙에게서 타락의 조짐을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지만, 뤼시앙은 진리나 정의를 결코 능욕하지 않고 유용한 교리를 확산시킬 수 있는 신문 기자가 될 거라고 확언한다.
뤼시앙은 신문 기자가 된 후에도 자신의 시집을 내기 위해 출판업자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피노의 신문사의 새로운 편집장이 된 루스토는 돈을 빌미로 뤼시앙이 사업성 없는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포기하고 신문사에 유익한 비평을 쓰는 기자가 되도록 교묘하게 이끈다. 뤼시앙이 루스토를 통해 체험한 “저널리즘은 지옥이고, 불공정과 거짓말과 배반의 심연”이다. 뤼시앙은 그의 상상력의 문을 열어주는 루스토의 ‘잔인한 교훈’ 덕택에 신문의 비밀에 입문한다. 뤼시앙은 저널리스트들과의 대화, 출판사와 서점들에 대한 직접 경험, 신문사 사장들과의 거래를 통해 현실 문학의 모든 메커니즘을 알게 된다. 문학을 지배하는 중심 원칙은 다름 아닌 돈이다. 뤼시앙이 파리에서 발견한 것은 꿈꾸던 시학이 아니라 ‘산업문학’이다. 당시엔 신문 광고 이외엔 달리 서적을 광고할 방법이 없었기에 출판업자는 식사, 아부, 선물 등을 통해 저널리스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책을 빌려 볼 수는 없고 반드시 사서 봐야 했던 당시엔 신문에 실린 기사 한 줄로 책이 불티나게 팔리거나,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아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었기에 출판업자의 운명이 저널리스트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루스토나 뤼시앙과 경쟁관계에 있는 또 다른 저널리스트 비뇽(Claude Vignon)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신문은 “성직이 되는 대신 당파를 위한 수단”이 되었고, “대중이 원하는 색깔의 말들만을 파는 가게”가 되었으며, 모든 신문은 “비굴하고, 위선적이며, 파렴치하고, 허위적이어서”, 앞으로는 사상과 제도와 인간을 말살하게 되어 있다. 뤼시앙은 이러한 저널리즘의 비열한 술책을 불과 몇 달 사이에 빠르게 익혀간다. 그가 저널리즘의 세계에서 만나는 여러 문인들의 모습은 현대 문학의 상품화 과정을 잘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노출된 창작인의 위험을 인식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발자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뤼시앙은 루스토와 협잡해 바르즈통 부인과 샤틀레 남작을 우롱하는 기사로 그들에게 복수한다. 또한, 사업성이 없다며 자신의 시집을 읽지도 않고 출판을 거부한 출판업자를 향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 신문 기사로 인해 낭패를 본 바르즈통 부인이 데스파르 부인을 내세워 뤼시앙을 상류 사교계 살롱에 초대하거나, 뤼시앙의 기사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본 출판업자가 돈을 싸들고 와서 화해를 청하자 뤼시앙은 자신이 휘두르는 펜의 힘을 절감하며 기고만장해진다. 그는 부정한 펜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취해 코랄리와 흥청망청 무절제한 유흥을 즐긴다. 그는 파티를 열고 게임을 즐기고 자신과 코랄리의 의상을 무수히 맞추고, 다이아몬드 단추며 넥타이핀, 반지 같은 장신구를 마련하느라 엄청난 돈을 쓴다.
급기야 신문사와 루스토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의주장도 원칙도 없는 신문기자가 된 뤼시앙은 인기에 영합하여 수많은 타협적이고 경솔하며 변덕스런 기사를 씀으로서 사교적인 저널리스트가 된다. 그는 데스파르 부인의 살롱에 초대되어 바르즈통 부인과 재회한다. 두 여자는 뤼시앙의 비위를 맞추려 갖은 기교를 다한다. 뤼시앙은 사교계 탕아들과 어울려 다니며 쾌락적인 파티와 야회, 도박 등 방탕한 생활에 탐닉한다. 그러다 보니,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지며 빚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돈이 궁해진 뤼시앙은 출판업자를 찾아가 그의 시집 출판 계약을 맺고 원고의 소유권까지 양도해버린다.
데스파르 후작 부인은 장관에게 부탁해 뤼시앙의 이름을 귀족 이름으로 변경하는 칙령을 받아주겠다며 이를 위해 뤼시앙의 전향을 요구한다. 뤼시앙은 귀족 이름에 대한 야심에 이끌려 좌파에서 우파로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기사를 쓴다. 그러자 다르테즈가 지로와 크레스티앵과 함께 뤼시앙을 찾아와, 지금 프랑스 국민은 대다수가 좌파이기 때문에 자유파 신문의 암시를 받아들여 머지않아 부르봉 왕가를 쫓아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유파 언론을 중상 비방하기 위해 창간된 우파 신문들도 패배하게 될 거라며, 뤼시앙은 아직 신문의 은밀한 책략을 너무 몰라 너무 많은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지금처럼 경솔한 기사로 여러 파당의 분노에 휩쓸리지 말고 자중하라고 충고한다. 세 친구는 뤼시앙의 마음속에 극도로 달아오른 귀족적인 자존심과 허영심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뤼시앙이 귀족 성과 칭호에 집착하는 마음도 헤아릴 수 없었다. 다음 날 뤼시앙은 우파 신문의 기고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넣는다. 그리고 그는 자유파 신문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러자 그의 시집을 출판해주기로 약속한 출판업자는 대세의 흐름을 읽고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루스토는 돈이 필요한 뤼시앙에게 〈샤를 9세의 궁수〉를 출판해줄 출판업자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 한 푼 없이 세워진 출판사로, 작가들의 작품을 6개월 이상의 어음으로 사들이고, 같은 방식으로 지물상과 인쇄소에 돈을 지불한 뒤, 책이 성공하면 그대로 유지되고, 책이 팔리지 않거나 어음 할인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조용히 파산 조치를 취해버리고 잠적해버리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자본이 아닌 타인의 자본을 투기의 도박대 위에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악덕 출판사의 생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뤼시앙은 그들에게서 어음을 받고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그리고는 어음 할인을 받기 위해 어음 할인 중매인들을 찾아다니지만 이미 신용이 바닥난 출판업자들의 어음이기에 터무니없는 헐값을 제시하거나 아예 거절한다. 절망한 뤼시앙은 도박장으로 달려가 무서운 흥분과 그에 따른 달콤한 기분에 탐닉해 수중에 있던 돈을 모두 날리고는 술집으로 향해 만취해버린다.
어느 날 아침, 뤼시앙은 그가 화려하게 데뷔했던 바로 그 신문에서 그를 조롱하는 기사를 읽는다. 뤼시앙의 당파심과 상류 사회 친구들에게 잘 하고 싶은 욕망이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액의 돈과 플로린과 관련해 피노가 루스토에게 뤼시앙을 중상하는 바람에 루스토와도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버린다. 격분한 뤼시앙은 여러 왕당파 신문에 기사를 쏟아낸다. 이로 인해 뤼시앙은 자유파 신문 기자들의 표적이 된다. 또한, 그가 곧 귀족이 될 거라는 기대감은 왕당파 및 여당파 신문들 내부에서조차 질투와 반감을 산다. 결국 모두가 뤼시앙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기에 이른다.
그 방법의 일환으로 코랄리가 지목된다. 왕당파는 뤼시앙에 대한 바르즈통 부인과 데스파르 부인의 증오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 부인들은 그를 멸망시키기 위해 왕당파에 던져 넣었던 것이다. 만일 뤼시앙이 바르즈통 부인과 재회했을 때 코랄리를 버리고 부인에게 돌아갔다면 모든 걸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뤼시앙은 코랄리를 저버리지 못했다. 이 부인들의 속내를 간파한 왕당파는 뤼시앙을 쓰러뜨려도 무방하다고 판단하여 피노와 협잡해 뤼시앙에게 기사를 주지 않고, 뤼시앙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극작가와 협잡해 코랄리에게 배역을 주지 않는다. 뤼시앙은 코랄리를 위해 돈과 배역을 구하러 백방으로 노력해 어렵사리 코랄리의 배역을 얻어낸다. 그러나 코랄리의 데뷔 전날에 또 다른 불운이 닥친다. 다르테즈의 책이 나온 것이다. 왕당파 신문에서 뤼시앙에게 다르테즈를 비난하는 기사를 요구한다. 뤼시앙은 거절한다. 그러자 왕당파 신문은 코랄리에 대한 호평 기사를 써주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뤼시앙이 다르테즈의 목을 조르지 않으면 코랄리가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뤼시앙은 처량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 다르테즈의 신간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현대 문학의 걸작이었다. 그러나 결국 뤼시앙은 조롱 기사를 작성한다. 그는 한밤중에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다르테즈를 찾아가 자신의 입장을 눈물로 호소한다. 다르테즈는 “조롱은 작품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비평은 때로는 찬탄이 된다”며 뤼시앙의 기사를 직접 교정해준다.
결국 다르테즈가 직접 교정해서 보내준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코랄리는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무대에 등장할 때 박수를 받지 못한 코랄리는 관객의 냉담함에 위축된 나머지 무대를 망친다. 당시엔 배우가 무대에 오를 때조차 파벌에 따른 박수꾼들이 동원되어 과장된 갈채를 보내곤 했는데, 정치적으로 고립된 뤼시앙과 코랄리를 위해서는 박수를 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신문에 코랄리에 대한 비난 기사가 쏟아지고, 코랄리는 병이 나버린다. 그러자 코랄리의 배역이 플로린에게 넘어가고, 플로린은 그 역할로 명성을 얻어 대배우가 된다.
절망에 내몰린 뤼시앙에게 피노는 법무장관에 대한 조롱 기사감을 건네주고, 돈이 절실한 뤼시앙은 기사를 쓴다. 재치 있고 신랄한 이 시사는 자유파와 국왕파를 기쁘게 했고, 법무장관은 뤼시앙에게 내리려던 칙령을 찢어버린다. 뤼시앙은 비로소 자신이 그를 시기하고 탐욕적이며 불성실한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쾌락과 허영심의 향락을 뒤쫓느라 모든 것을 희생시킨 잘못된 행동에 비로소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뤼시앙에게 크레스티앵이 다가와 다르테즈를 공격한 대가로 결투를 청한다. 결투 끝에 뤼시앙은 가슴에 총상을 입고 두 달 동안 병상에 누워 운신하지 못한다.
한편, 뤼시앙에게 어음을 발행했던 출판업자는 부도가 나 한 달 만에 파산하고, 〈샤를 9세의 궁수〉도 전혀 성공하지 못한다. 파산 신고를 하면서 그 출판업자가 돈을 만들기 위해 뤼시앙의 작품을 팔아넘기는 바람에 뤼시앙의 책은 여러 행상을 통해 헐값으로 되팔려 파리의 여러 다리나 강변 난간에 진열되는 신세가 된다.
코랄리는 뤼시앙이 총상을 입기 전에 카미유 모팽(Camille Maupin)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구해준 작품에 출연해 공연을 하는데, 또 다시 플로린에게 배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열의를 다하는 바람에 그만 병이 나버린다. 뤼시앙도 코랄리도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집달리들이 들이닥친다. 궁지에 몰린 뤼시앙은 다비드 셰샤르의 서명을 모방해 천 프랑짜리 어음 석 장을 만들어 배서하고 지물상 메티비에(Métivier)에게 가져가서 어음 할인을 받는다. 그는 다비드에게 반드시 기한 내에 돈을 지불하겠다는 편지를 쓰고는, 이를 위해 기사를 여러 편 써서 여러 신문에 보내지만 그 어떤 기사도 실리지 않는다.
코랄리의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더니 급기야 최후를 맞이한다. 뤼시앙은 코랄리의 장례비용을 구하기 위해 외설스런 시를 쓴다.
코랄리의 장례를 치른 뒤, 뤼시앙은 혼자라는 걸 절감하며 늘 그의 편이 되어주었던 어머니와 다비드 부부를 그리워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조차 없었던 뤼시앙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양복과 옷가지를 팔지만 마차 삯도 되지 못할 돈이다. 이에 몹시 화가 난 그는 그 돈을 들고 곧장 도박장으로 향해 한 푼도 없이 돌아온다. 코랄리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하녀로서 지금까지 뤼시앙 집에서 함께 살아온 베레니스(Bérénice)는 절망에 빠진 뤼시앙의 시선에서 자살 결심을 간파하고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해준다. 뤼시앙은 그 돈으로 마침내 파리를 떠난다.
제2부에서는 발자크의 소설 세계에서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대표적인 주제인 이상적인 결사 구성의 주제가 뤼시앙의 또 다른 관계를 통해 제시된다. 뤼시앙이 신문의 비열한 상업주의와 이간질, 배반의 희생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실추된 천사’ 루스토는 그에게 저널리스트들의 협박의 방식을 가르친다. 뤼시앙이 파리에 온 후 시인으로 데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가 아직 발표하지 않은 그의 소네트 시를 처음으로 들려주는 상대가 바로 루스토이다. 루스토는 ‘세상의 메커니즘’을 뤼시앙에게 들려주면서, 영혼으로 하여금 환멸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타락시키는 사회와의 싸움에서 순수한 시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경고하고, “저널리즘이라는 창가 출신의 첩인 평판”을 먹고사는 이류 문학만이 영광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파한다. 반면에, 다르테즈는 루스토와는 정반대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진실된 우의와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는 뤼시앙의 소설을 고쳐주고 거기에 훌륭한 서문까지 써 주면서 용기를 북돋우지만 루스토로부터는 사후에나 영광을 얻을 인물로 비난받는다. 다르테즈가 이끄는 세나클 회원들은 최후의 만찬을 위해 그리스도 주위에 모인 제자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세나클의 인물들은 모두가 발자크 자신이 폭넓게 독서하고 연구한 과학, 철학, 정치학의 영역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서 완전한 정신적 연합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구성원들의 지식과 신념의 총화는 다층 구조적인 발자크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루스토는 다르테즈와 반명제를 이루는 인물이다. ‘소신문의 결투꾼’인 루스토는 멘토로서의 품격은 지니지 못해서 동물 조련사 같은 ‘안내자’로 지칭된다. 다르테즈는 ‘사후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반면, 루스토는 시사성이 있는 사항들에만 매진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대표한다. 다르테즈는 세나클의 우두머리이지만 고독하게 사는 사람이고, 루스토는 신문의 공동 편집실에서만 힘을 내는 사람이다. 대조되는 지적 선택에 따라 그들의 생활양식도 상반되어서, 다르테즈는 금욕적인 문학 노동자의 생활을 하고, 루스토는 호화로운 방탕의 생활을 한다.
뤼시앙과 다르테즈, 루스토는 모두 발자크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의 유령들’이기도 하다. 뤼시앙은 의지력이 부족한 시인으로, 저널리즘의 저열한 술책에 연루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다르테즈는 세상에서 물러나 있는 천재로, 후세를 위해 일을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루스토는 발자크처럼 출판업의 파렴치한 생산물이다. 또한, 새로 등장한 저널리즘이 원칙이나 이념의 혼란에 휩쓸릴 때 어떤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발자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발자크 자신이 신문에 발표되는 비평에 대해서 평생 동안 불평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비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생트 뵈브(Sainte Beuve)에게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자크는 자기 작품에만 매달리는 고독한 생활을 했다. 발자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공격을 일삼던 비평가 쥘 자넹(Jules Janin)을 모델로 해서 에티엔 루스토라는 비평가를 등장시켜 비열하고 저속한 비평을 쓰는 기자의 대명사가 되게 하고, 뤼시앙을 한때 그에 버금가는 인물로 만든다. 뤼시앙이 돈에 팔려서 왕당파와 공화파 신문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초기 저널리즘의 병폐를 꿰뚫어본 발자크의 현실 풍자의 한 측면이다.
▶ 발췌 논문 : 〈발자크의 교육소설: 『잃어버린 환상』〉, 이철(전남대학교). 프랑스문화예술연구, 2016년
▶ 참고 문헌 : 〈잃어버린 환상〉, 발자크 저, 이철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 참고 사이트 : 〈네이버 지식백과〉 『잃어버린 환상』 - 〈인간희극〉과 인생유전의 전형들
▶ 작품 배경 및 분석은 상기 논문과 사이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발췌, 재배열한 것이고, 줄거리는 상기 참고 문헌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