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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비로토

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5권

by 글섬

작품 배경


〈세자르 비로토(César Birotteau)〉는 1837년에 집필된 소설로, 『인간희극』의 「파리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parisienne)」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은 소설의 전반적인 골조를 보여주는 〈세자르 비로토의 위대함과 쇠퇴의 이야기(Histoire de la grandeur et de la décadence de César Biroteau)〉 혹은 〈세자르 비로토의 위대함과 쇠퇴(Grandeur et de Décadence de César Biroteau)〉라는 긴 제목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느(Alphonse de Lamartine)에게 헌정된 이 소설의 첫 페이지에는 마치 굉장히 긴 제목처럼 작가 자신이 이 작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문구로, “상인이자 향수제조자, 파리 2구의 부시장이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수훈자인 세자르 비로토의 영화(榮華)와 쇠락의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상인 향수제조자’라는 직업명에 대한 구체적 명시는 세자르 비로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그는 향수가게의 점원으로 시작해서 자신이 일했던 향수 부티크를 인수하고 운영하게 되는 ‘상인(marchand)’이다. 하지만 그에게 사용된 ‘상인’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향수를 파는 상인의 의미만이 아니라 향수를 개발하고 직접 생산하며 더 나아가 가장 잘 팔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실행하는 근대적인 사업가로서의 면모 즉, 19세기 향수제조자(parfumeur)의 면모 또한 담겨있다. 세자르 비로토의 이러한 근대적 면모에는 당시 실제 향수제조자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19세기로의 전환기에 향수제조자들은 구체제 시대의 명장들의 후계자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제조비법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점원으로 일했던 ‘라공’ 가게의 비법을 전수받은 것에 기초하여 향수제조를 시작하는 세자르 비로트의 모습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실제 유명 향수제조자들인 장 마리 조제프 파리나(Jean Marie Joseph Farina)와, 증류물 제조인(distilateur)이자 향수와 화장품 제조인(cosméticien)이기도 했던 뷜리(Jean-Vincent Bully)를 모델로 삼고 있다.


발자크는 1830년대 쁘띠 부르주아(petit-bourgeois)의 전형적인 유형인 세자르 비로토를 통해 사회적 명예와 인정을 열망하고, 파리라는 세계의 가장 높은 단계에 오르기를 갈망하는 사회 계층의 야망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자르 비로토는 소작농의 막내아들로, 14살 때 투르(Tours) 근교의 그의 고향 쉬농(Chinon)을 떠나 걸어서 파리까지 올라온다. 무일푼이었던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에게 향수를 공급해 주던 라공(Ragon)의 가게 ‘장미의 여왕(La reine des roses)’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냉엄한 사회 현실을 경험하면서 사회의 원리들을 배운다. 아주 영리하며 현실적인 그는 고객들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한가할 때면 제품들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하여 그는 제품과 가격, 그리고 수치들에 대해 어느 점원보다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는 사업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소비자들의 취향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검소함과 신중함이 필수인 상인의 완벽한 한 전형”으로, 누구보다 성실하고 영민하게 일했던 세자르 비로토는 계산대를 담당하는 서열 두 번째의 사무원을 거쳐 마침내 라공의 후계자가 된다. 라공이 은퇴를 결심하고 세자르에게 가게를 물려주겠다고 제의하지만 그는 돈을 좀 더 모아 투렌(Touraine)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땅을 매입하고 싶어 한다. 세자르가 라공의 제안을 거절하려던 바로 그때, 한 여인을 만난다. 어느 날 생 루이(Saint-Louis) 섬으로 산책을 가던 비로토는 도로 모퉁이에 위치한 가게 ‘르 프티 마틀로(Le Petit Matelot)’ 앞에 서 있던 한 처녀에게 매료된다. 그녀는 그 가게의 점원으로, 콩스탕스 피예로(Constance Pillerault)라는 18세 처녀였다. 그때부터 비로토는 그 가게를 자주 찾아가서 물건을 사고는 한다. 콩스탕스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함이었는데, 그 와중에 그는 그 가게가 “파리에서 가장 외진 장소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광경”에 놀란다. 신상품들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그 인기의 주된 이유인 것 같았다. 그러나 비로토에게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는 그 엄청난 인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기에, 그는 그 가게만의 소비자를 유혹하는 방식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것은 바로 광고였다. 그 가게가 이용하는 광고 방식은 “채색 간판과 펄럭이는 두루마리 광고들”, “그 외에도 손님을 유혹하기 위한 많은 수단들, 즉 가격표라든지 리본 광고라든지, 광고 포스터”였다.


1800년 5월에 비로토는 콩스탕스와 결혼하고, 라공의 가게를 인수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제품을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으로 일하면서 ‘장미의 여왕’에서 습득한 향수제조 비법을 바탕으로 직접 제조한 상품을 팔기를 바랐다. ‘장미의 여왕’ 인수 후, 세자르 비로토가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부르그 뒤 탕플(Faubroug du Temple) 가에 가건물 하나와 땅을 빌려 ‘세자르 비로토의 작업실(FABRIQUE DE CÉSAR BRIOTEAU)’이라고 대문자로 크게 쓴 간판을 건 것은 적은 양일지라도 직접 제조해서 팔기를 원했던 비로토의 야망을 잘 보여준다. 그는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Grase)에서 장인 한 명을 고용해 손익을 반분하기로 하고는 그와 함께 직접 비누와 에상스(Essence), 오드 콜론(Eau de Colonge)을 만들기 시작한다. 비록 이 동업은 6개월 밖에 지속되지 못하고 혼자 손실을 떠안아야 했지만, 향수화장품 가게 주인으로서 그가 만들기 시작한 비누, 에상스, 오드 콜론은 당시 화장품 사업의 주요 아이템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바로 이때, 어떻게 해서든 이 향수화장품 사업에서 이득을 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세자르 비로토의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은 한 권의 책이다.


혼자 사업 실패의 손실을 떠안고 실의에 빠져 파리의 거리를 거닐던 어느 날 저녁, 세자르 비로토의 눈길은 땅바닥의 큰 광주리 안에 널려진 책 몇 권들 사이에 있는 한 권의 책에 꽂힌다. 〈아브데케르 혹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기술(Abdeker ou l'Art de conserver la Beauté〉. 빛바랜 노란 색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한 세기 전 한 의사에 의해 쓰인 소설로, 아름다움을 위한 처방 혹은 비법들도 일부 담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운명처럼 집어 든 비로토의 시선은 향수와 관련된 한 페이지에 멈추었고, 길거리의 나무에 기대어 책장을 넘기던 그는 이 책을 사서 과학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 회원이자 유명한 화학자인 보클랭(Vauquelin)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세자르 비로토는 보클랭의 도움을 빌어 피부의 다양한 성질에 적합한 효과를 지닌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그 제품이 바로 ‘술탄 왕비의 크림’과 ‘양홍 화장수’이다. ‘술탄 왕비의 크림’은 손에 바르는 크림이고, ‘양홍 화장수’는 얼굴에 분홍빛 생기를 주는 일종의 에센스(또는 스킨)이다.


세자르 비로토는 그 신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먼저 파리 최초의 신상품 가게인 ‘르 프티 마틀로’의 방식을 벤치마킹한다. 비로토는 자기 가게에 ‘르 프티 마틀로’의 소비자 유혹 방식을 모방하여 채색 간판과 밴드 종류, 광고 포스터 등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는 가게 내에서의 광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개발한 두 향수 화장품을 홍보하기 위해 “어쩌면 야바위 짓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다량의 광고 포스터와 광고 전단 등의 인쇄 수단”을 이용한다. 그리하여 그는 광고를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한 최초의 향수화장품 상인이 되는데, 실제로 당시 파리를 비롯한 지방 도시의 벽들은 온통 광고물로 뒤덮여 있었다.


비로토는 자신의 ‘술탄 왕비의 크림’과 ‘양홍 화장수’의 광고 전단을 인쇄소에 의뢰할 때 스스로 광고 문안을 작성한다. 그가 받은 교육이라고는 읽고 쓰고 셈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업적으로 말하자면, 우스꽝스러운 말투가 성공의 한 요소인 광고 전단의 광고 문안을 스스로 작성할 수 있을 만큼 더욱 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롱바르(Lombards) 거리에 있는 일용잡화 가게 ‘포피노 상점(La maison Popinot et companie)’이 배포한 광고 전단을 한 장 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광고 전단의 문안을 작성한다. 그리하여 “‘술탄 왕비의 크림’과 ‘양홍 화장수’는 화려한 천연색 광고 포스터로 광고되었다. 온통 동양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는 시대에, 여성들이 술탄의 왕비가 되기를 열망하는 것만큼이나 남성이 누구나 술탄이 되기를 갈망하는 나라에서 그는 그 ‘동양’이라는 말이 발휘하는 마술적인 힘을 알아채고는 화장품 이름을 ‘술탄 왕비의 크림’이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세자르는 자기 제품의 효능과 효과를 홍보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광고에 최초로 과학을 이용한다. 그는 광고 전단의 중간 부분에 “이 크림과 화장수는 우리의 저명한 화학자 보클랭의 증언에 기초하여 프랑스 학사원의 인정을 획득하였습니다.”라고 적었다. ‘프랑스 학사원의 인정 획득’이라는 광고 문구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사용된 문구로 마술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실제로 당시의 세상은 과학의 시대로, 과학적 정서는 확산일로에 있었다. 바야흐로 과학이 요구되는 산업혁명의 시대였던 것이다.


과학이라는 시대 정서를 이용해, 첫 번째 광고에서 과학적 지식 덕분에 큰 이득을 취한 세자르는 개암 열매 기름을 상품화할 때도 보클랭을 찾아가 모발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세자르는 보클랭에게서 얻은 화학 지식에서 사업적인 영감을 얻는다. 사실, 시중에는 발모제라며 아주 비싸게 팔리고 있는 기름이 있었는데, 마카사르 기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보클랭에 따르면, 세상에 발모에 효과가 있는 기름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마카사르 기름도 발모에 전혀 효과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그 기름이 마치 발모 효능이 있는 것처럼 잘 못 알고 비싼 값을 주고 사서 바른다. 그러니 세자르로서는 과학자의 증언에 기초하여 마카사르 기름의 효능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교정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출시할 개암 열매 기름이 효과와 효능 면에서 마카사르 기름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는 점을 부각시켜 광고하면 마카사르 기름을 눌러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암 열매 기름의 제조 판매는 포피노의 일이 된다. 세자르의 직원 중 한 명인 앙셀름 포피노(Anselme Popinot)는 라공의 조카로, 수줍음이 많고 정직하고 선하며 항상 열심히 일했다. 포피노는 세자르의 딸 세자린(Césarine)을 사랑하고 있었다. 세자르는 개암 열매 기름으로 마카사르 기름을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충직한 직원인 포피노와 상의한다. 포피노는 세자르의 계획을 성공시켜 세자린과 결혼하게 되길 희망한다.


포피노가 남몰래 개암 열매 기름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착수할 무렵, 바야흐로 향수화장품 업계에 자타공인 카이사르가 된 비로토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최고의 영예를 누린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제품으로 벼락부자가 된 비로토는 1818년 말에, 프랑스 주둔군의 철수를 기념하는 무도회를 열기 위해 자신이 살던 부르주아식 집을 호화로운 저택으로 개조하기로 결심한다. 집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포피노가 불안해질 만큼 막대한 지출을 감행하던 비로토는 스스로의 열망에 잔뜩 취해 있었다. 공증인 로갱은 비로토가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는 걸 간파하고 비로토에게 마들렌(Madeleine)에서 파리(Paris)에 이르는 구역의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다. 비로토는 집을 개조하고, 개조한 집에 맞춰 새로운 가구며 집기들을 장만하느라 막대한 돈을 지출했기에 실제로 돈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포피노가 공장에서 밤낮 없이 일하며 비밀리에 개암 열매를 이용한 머릿기름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교활한 사기꾼 로갱은 이중장부를 작성해 비로토에게 영수증 한 장 발행하지 않고 비로토의 전 재산을 횡령하고는 종적을 감춘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비로토 가게에서 일하다 도둑질 때문에 해고당한 직원이었던 뒤 티예(du Tillet)가 이제는 은행의 높은 직위에 올라 비로토에게 앙심을 품고 음모를 꾸며 비로토의 은행 신용을 무너뜨린다. 이로 인해 돈을 빌릴 수 없게 된 비로토는 삼촌인 피예로(Pillerault)와 아내와 딸의 갖은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곤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결국 그는 후계자 포피노에게 물려주려 했던 가게를 서기인 셀레스텡 크르벨(Célestin Crevel)에게 팔아 넘겨야 할 위기에 처한다.


바로 이때,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포피노가 각고의 연구 끝에 마침내 ‘머릿기름’을 개발한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머릿기름으로 마카사르 기름을 공략하기 위해 판매왕으로 유명한 고디사르(Gaudissart)를 찾아간다. 이 특별한 판매원을 고용하여 새로운 헤어 오일을 홍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쿠데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포피노로부터 상품과 모발에 대한 여러 정보를 들은 고디사르는 문학을 하는 피노(Pinot)에게 포피노의 제품에 대한 광고 문안 작성을 요청한다. 고디사르의 요청을 받아들여 포피노의 사업을 돕는 일에 동참하는 피노는 이제 막 생겨난 대중지를 광고 매체로 이용한다. 그리하여 그는 포피노를 광고주로 하여 일종의 광고대행업을 하기 시작하는데 마침내는 신문사까지 인수하여 광고업에 전념함으로써 초창기의 신문 광고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 고디사르와 피노 덕분에 포피노는 마침내 마카사르 기름과의 판매전에서 승리자가 된다. 예전에 비로토의 크림과 화장수가 그랬듯이, 포피노의 머릿기름도 폭발적인 인기로 대유행하고, 덕분에 비로토는 파산의 위기를 모면한다. 비로토가 파산을 향해 내리막을 치닫는 동안 포피노는 밤낮 없이 공장에 처박혀 비밀리에 개암 열매 기름 개발에만 매진해왔던 것이다. 때마침, 루이 18세가 이 충직한 왕당파 포피노의 정직함을 높이 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다시 패용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6천 프랑을 하사해준 덕분에 비로토는 모든 부채를 상환하고 1823년에 복권되어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다시 패용한다. 그러나 이 지난한 재정 싸움에서 이미 초죽음이 되어버린 비로토는 자신의 복권을 축하하고 세자린과 포피노의 결혼 피로연을 겸하는 날에 딸과 사위에게 자신의 사업과 모든 명예를 물려주고 눈을 감는다.




분석


‘양홍수’를 개발한 세자르 비로토의 모습은 1803년에 파리의 생토노레 거리에 향수가게이자 화장품 가게를 만든 뷜리의 면모와 오버랩 된다. 초산이 들어있는 향기롭고 소독의 효과가 있기도 한 화장수 ‘비네그르 드 뷜리(Vinaigre de Buly)’를 만든 뷜리는 화장품과 과학의 진보에 빨리 눈을 떠 자신이 만들어낸 제품들을 (과학적으로) 공식화 하는 데 일찍이 성공한 인물이다. 그의 이런 면모는 세자르가 자신이 발견한 비법서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한 걸음에 유명한 과학자 보클랭에게 달려가는 것이나, 또한 그에게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한 조언을 구하는 것, 더 나아가 기존 제품들의 한계를 과학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더 나아가 그와 함께 새로운 화장품을 만드는 비법을 찾아내 규범화된 비법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모습 등에 반영되어 있다. 향수와 화장품으로 유럽 전역에서 전례 없는 명성을 누린 뷜리가 1830년 혁명으로 인해 파산하게 되는 것 역시 세자르 비로토가 파산을 하게 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자르 비로토가 만든 ‘술탄 왕비의 크림’과 ‘양홍 화장수’에는 당시 ‘피베르와 디세(Piver et Dissey)’ 향수가게에서 실제로 ‘술탄 왕비의 세르키스(Serkis de Sérail)’라는 이름으로 술탄 왕비들이 아주 좋아하는 분을 팔아 유행시킨 사실 또한 반영되어 있다.


세자르 비로토가 발견했던 책, 〈아브데케르 혹은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기술(Abdeker ou l'Art de conserver la Beauté)〉은 실제로 파리에서 1754년에 출판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콘스탄티노플 술탄궁전(sérail de Sultan)의 여성들을 관리해 주는 임무를 띤 한 젊은 의사 아브데케르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파트메(Fatmé) 사이에 있었던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로, 의사인 한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게 된 정부(情婦)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한 비법들(육체적인 원리 뿐 아니라 정신적인 원리까지 그 어떤 것도 누락되지 않은 비법들)을 알려주는 내용을 큰 축으로 하고 있다. 실제 의사였던 앙투안느 르 카뮈(Antoine Le Camus, 172-172)가 쓴 이 책은 독특한 형식의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단지 의사인 아브데케르의 사랑이야기를 읽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독서를 통해 그가 알고 있는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비법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세자르 비로토가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만나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18세기 여성미의 규범에 관한 책, 아름다워지는 비결과 함께 몸의 건강과 화장에 관한 개론까지 담고 있는 일종의 비법서였던 것이다. 사업 실패에서 재기하기 위해 새로운 화장품의 개발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였기에 그 책을 넘기다 발견한 피부와 관련 된 부분, 화장품의 제형과 효능에 관한 주해 부분은 세자르 비로토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비법서들은 프랑스 화장 문화의 발달에 있어 개인이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 쓰는 방식에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화장품 산업의 선구자였던 향수화장품 제조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세자르 비로토의 이러한 일종의 비법서와 관련된 일화는 비법서들이, 그리고 화장품 산업의 선구자들이 어떻게 화장품 산업을 본격화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화장관련 문헌들이 전문적인 향수 제조인들을 비롯해 과학과 만난 18세기 말을 시작으로 19세기 전반기 동안 화장품 산업은 독자적인 산업 영역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된다.


포피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세자르 비로토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제품인 개암나무 열매 기름으로 만든 ‘머릿기름(Pommade)’은 치열한 광고전 덕분으로 마침내 기존의 마카사르 기름과의 판매전에서 승리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획기적인 광고의 힘이 사용된다. 실제로 발자크는 작품 속에서 ‘광고(la publicité)’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 이 ‘광고’라는 어휘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에 의해 신조어로 인정되어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에 등록된 것이 1878년인 것을 감안할 때, 발자크는 분명 프랑스에서 ‘광고’라는 어휘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들 중 한 명이고, 그런 점에서 세자르 비로토는 분명 향수화장품 판매 상인으로서 첨단 광고를 활용한 독보적 존재였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자르 비로토는 당시 상업발달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상업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문)광고의 힘과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던 발자크의 분신이다.


이 작품에는 새롭게 개발된 화장품의 효율적인 판매 전략의 시도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산업의 발달과 함께 인식되기 시작하던 산업 소유권(propriété industriele)에 대한 실제도 나온다. 세자르 비로토는 자신이 개발한 화장품의 위조를 막기 위해 자신이 만든 정품 크림은 그의 이름이 서명된 종이에 포장되어 있으며 병 제품은 봉납되어 있다고 고객들에게 알리는데, 이는 혁명 이후 탄생한 산업 소유권을 실현하는 비로토의 개인적 노하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특허권 신청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포피노가 머릿기름을 개발한 뒤, 곧바로 실용신안특허장을 얻기 위한 신청을 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에서 특허권(Brevet d'invention)에 대한 법이 만들어진 것은 1791년으로,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특허권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791년과 1844년 사이에 제출된 수많은 특허권들 사이에는 화장품과 관련된 특허권이 상당했음을 고려할 때, 포피노의 특허권 신청은 산업 소유권에 대해 작가가 가지고 있던 관심의 반영인 동시에 화장품 산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갔을 때의 양상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참고 사이트 : 〈ABC북 맛보기 사전〉

▶ 발췌 논문 :

1. 〈19세기 전반기 프랑스의 화장품 산업 발달 양상 고찰 - 발자크의 『세자르 비로토 César Birotteau』(1837)를 중심으로〉, 이채영(숭실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 〈발자크의 작품 속의 광고 - 〈세자르 비로토〉, 〈유명한 고디사르〉, 〈고디사르 II〉를 중심으로〉, 김중현, 프랑스학회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사이트 및 발췌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발췌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상기 사이트 및 발췌 논문의 저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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