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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노 케인

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9권

by 글섬

작품 배경


〈파시노 케인(Facino Cane)〉은 1837년에 《들로예 에 르쿠(Delloye et Lecou)》에서 「철학 연구(Études philosophiques)」 중 12권으로 발표된 단편 소설로, 1843년에 제목을 〈카넷 영감(Le Père Canet)〉으로 변경했다가 1844년에 애초의 제목인 〈파시노 케인〉으로 다시 변경해 《퓌른(Furne)》에서 『인간희극』의 「파리생활 정경」으로 발간되었다. 이 소설은 모험담과 풍속 연구를 동시에 결합시킨 이야기이다. 인간의 폭력적인 열정에 의해 몰락한 한 이탈리아 귀족의 이야기로, 『인간희극』 중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다.




화자가 열렬한 지식욕으로 낮에는 도서관에, 밤에는 다락방에 틀어박혀 매일 공부에만 매달렸던 시절, 공부 이외에 가졌던 유일한 즐거움이자 관심은 산책을 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뿐이었다. 화자는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 중독되어 갔으며,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좋은 점일 수도, 때로는 나쁜 점일 수도” 있으며 “누구나 선과 악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화자의 집 가정부가 화자를 자신의 여동생 결혼식에 초대한다. 가정부는 오전에는 화자의 집안을 청소하고, 오후에는 공장에서 겨우 일당 5펜스를 받고 일하는, 아주 가난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옷장을 만드는 기술자였지만 그 역시 수입이 형편없었기에 아이가 셋인 그들로서는 먹고 살기 빠듯했다. 그녀의 형편을 훤히 알고 있는 화자로서는 두둑한 축의금을 준비해야 했기에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국 결혼식에 참석한다.


초라한 와인 가게 건물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어우러진 화기애애한 결혼식 파티에서 화자는 맹인 보호시설에서 나온 3인조 밴드의 연주를 듣게 된다. 화자는 처음 듣는 밴드의 음악에게 호기심을 느껴 주의를 기울이다가 그들 중 클라리넷 주자에게 강한 호기심을 느낀다. 그저 평범한 맹인의 얼굴을 한 다른 연주자들과는 달리 그 클라리넷 주자는 뭔가 슬픔과 고뇌가 드리운, 그러면서도 당당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를 본다면 마치 쇠창살에 몸을 부딪치는 우리 속 사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연주를 마친 그들에게 다가간 화자에게 클라리넷 연주자는 자신을 베네치아의 귀족 마르코 파시노 케인(Marco Facino Cane)이라고 소개한다. 여든두 살의 그 노인은 밀라노(Milan)의 공작에게서 영토를 빼앗은 유명한 용병대장 파시노 케인의 후손이었다. 호기심이 활활 타오른 화자는 그토록 찬란히 빛났던 가문의 마지막 후예가 옛 명성과 부를 모두 잃은 채 이토록 쓸쓸하고 가난한 노년을 보내는 연유가 무엇인지 못 견디게 궁금해졌고, 이를 간파한 노인은 화자에게 거리로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다.


거리로 나선 노인은 화자에게 뜬금없이 자신을 데리고 베네치아(Venise)로 가달라고 제안한다. 화자는 황당해 하지만, 노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위엄이 서려 있다. 노인은 화자가 자신을 데리고 베네치아로 가면 한순간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확언하더니, 자신의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준수한 외모의 부유한 귀족 자제였던 스물한 살의 케인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난 상원의원의 열여덟 살 부인 비앙카(Bianca)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을 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케인은 결투 끝에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도망을 친다. 그는 비앙카와 함께 도망치기를 바랐지만 비앙카가 이를 거부해 혼자서 밀라노(Milan)로 떠나게 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졌지만, 그와 관련된 사건이 전국에 알려진 것은 아니었기에 도망자의 신분이 되어서도 부유한 생활을 하며 일종의 황금 편집광적 기질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끝에 그는 결국 지니고 떠났던 모든 재산을 날리고 다시 비앙카에게 돌아와 그녀의 집에 숨어 반 년 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관리가 비앙카에게 구혼했는데, 그 구혼자는 첩자를 보내 비앙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 결국엔 케인을 발견하고야 만다. 어쩔 수 없이 구혼자와 싸우게 된 케인은 그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지하 감옥에 감금되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탈옥을 도모하던 그는 누군가 감옥 벽에 아랍어로 써놓은 방향을 따라 굴을 파다가 보물로 가득 찬 비밀 창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간부와 그의 관리인에 따르면, 그 보물은 군대 원정에서 강탈한 전리품을 챙겨놓은 것으로, 나라에는 비밀로 되어 있는 재산이라는 것이다. 케인은 그의 뒤를 쫓아온 간수를 설득해 간수와 함께 베네치아의 비밀스런 보물을 훔쳐 탈옥한다. 그는 프랑스로 향하는 배를 탄 뒤에 간수를 제거해버리고 비앙카를 찾아간다. 그는 비앙카와 함께 에스파냐에 숨어 살다가 에스파냐 이름으로 위장해 파리로 와서 정착한다.


한동안 사치스럽고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던 케인은 눈이 머는 병을 얻게 되고 비앙카도 죽고 만다. 그 후 다시 운명적인 사랑이라 여겨지는 여인을 만났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케인이 그녀가 소개한 유명한 안과 의사의 진료를 받기 위해 런던에 머무는 동안에 그의 재산을 모두 빼돌리고 그를 정신병동에 감금시킨 후 맹인 보호시설로 보내버린다. 베네치아에서 지은 죄 때문에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케인은 무일푼의 무기력한 맹인 거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케인은 화자에게 베네치아에 보물이 있는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베네치아로 함께 가 보물이 있던 창고를 찾으면 다시 귀족의 지위를 찾은 자신의 후계자가 되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화자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 있기만 한다. 파시노 케인은 절망에 가득 찬 모습으로 클라리넷을 들어 베네치아의 뱃노래를 연주한다. 화자는 케인의 회한과 그리움이 뒤섞인 연주를 듣고 감동해 베네치아로 함께 가기로 약속한다. 상기된 얼굴로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던 노인은 화자에게 자신이 구걸이라도 해서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대로 곧장 떠나기로 약속하고 맹인 보호시설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로부터 두 달 후, 파시노 케인은 겨울이 오기 전에 죽고 만다.



분석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소설의 도입부가 자전적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화자가 살고 있는 레디게이에르(Lesdiguières) 거리는 발자크 자신이 젊은 시절에 살았던 거리이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발자크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화자의 특성을 통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내가 최근에 알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특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좋은 점일 수도, 때로는 나쁜 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웅이나 발명가, 과학자, 또는 악당이나 깡패 할 것 없이 누구나 선과 악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환경에 따라 알코올에 중독되기도 하고 자신의 열정이나 힘을 소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략) “때로는 아름다운 이야기나 엄청난 운명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풍부한 상상력이라 해도 진실에는 결코 미칠 수 없고 아무도 이 도시가 안고 있는 진실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 참고 문헌 :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고전소설 V〉,

곽상환, 신선미, 전혜정, 최낙중, 최민순 공역, 숨비소리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참고 문헌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하거나, 불어판 사이트의 경우엔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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