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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인 줄 모르는 코미디언들

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18권

by 글섬

작품 배경


〈코미디언인 줄 모르는 코미디언들(Les Comédiens sans le savoir)〉은 1846년에 프랑스 문화 잡지 《파리 통신(Le Courrier français)》에 발표된 단편소설로, 같은 해에 《퓌른》에서 『인간희극』의 「파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1848년에 《루 에 카스타네(Roux et Castanet)》 출판사에서 〈파리의 시골뜨기(Le Provincial à Paris)〉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인간희극』의 모든 사회적 유형들과 인간 군상이 파리라는 중심지에 총집합해, 발자크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프랑스 예술가들의 삶과 법조계의 부패를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 레옹 드 로라(Léon de Lora)는 무일푼으로 파리에 상경해, 파리에서 천재적인 풍경화가로 인정받게 되면서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게 된다. 피레네조리앙탈 주(Pyrénées-Orientales) 출신의 루시옹(Roussillon)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로라는 파리로 상경할 땐 무일푼이었지만, 지금은 베를린 가(Rue de Berlin)에 거대한 저택을 소유하고, 레지옹 도네르(Légion-d’Honneur) 수훈자이자 학사원 회원으로, 겨우 서른아홉 살에 2만 프랑의 막대한 연급을 받으며 이따금씩 궁정의 연회에도 초대받는 주요 인사이다. 로라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나이든 고모가 근근이 먹고 사는 피레네조리앙탈 주 계곡까지 그의 명성이 알려질 정도로 로라는 이제 성공한 예술가이다. 로라의 모계 쪽으로는 자그마한 공업도시에 살고 있는 실베르트르 팔라폭스-카스탈-가조날(Sylvestre Palafox-Castel- Gazonal)이라는 이름의 사촌이 하나 있었는데, 지방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로라의 명성을 듣고 로라를 이용해 그의 난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가조날은 자신이 로라와 친인척 지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유명한 화가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는 로라에게 도움을 청하러 파리로 출발한다. 가조날은 지역 행정가들의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행동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들은 가조날의 공장에 피해를 입히는 댐 건설에 착수했고, 이 때문에 가조날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는데, 가조날의 변호사들조차 승소하기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가조날은 파리의 어마어마한 물가에도 놀라지만, 이 번화한 도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고 미천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고 경악한다. 그는 허름한 여인숙에 처박혀 고향 하늘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로라가 과연 자신을 친척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줄지 의구심을 품는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던 고향의 도지사를 살해하는 상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보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어느 날 신문에서 로라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로라가 살롱 전시회 일정에 맞춰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기사이다. 가조날은 이 저명한 사촌과 당장 친분을 맺어야 한다는 충동에 힙 입어 곧장 로라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는 마침내 로라를 대면한다. 늦은 시간에 친구 빅시우(Bixiou)와 함께 호화로운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로라를 상대로 가조날은 고향 얘기로 시작해, 파리 변방의 허접한 생활에 대한 비난과, 쓸데도 없는 변호사들이 받아먹는 과도한 소송비용과, 자신을 이토록 고통스런 처지로 내몬 도지사와 행정 관리들에 대한 독설을 쏟아놓는다. 로라는 “파리에선 모든 일이 가능하지요. 선행도, 악행도, 정당한 일도, 부당한 일도 모든 일이 말이에요. 애초에 불가능한 일도 없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도 취소하거나 번복하지 못할 일도 없답니다.”라는 말로 가조날을 독려한다.


로라와 빅시우는 먼저 파리에서 권력의 핵심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가조날을 데리고 파리 오페라(Paris Opera)로 가서, 그 권력의 핵심에 연결 고리가 되어줄 무용수들과 가수들을 지목한다. 그들은 일종의 고급 창부인 셈인데, 그들의 재능과 위치에 따라, 신문에서 호평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막대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주목받는 무용수인 카라빈(Carabine)은 막대한 재산의 소유자로, 파리 권력층에 접근이 용이해 가조날의 소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인이었다.


또한 로라와 빅시우는 신문사 편집장인 가이야르(Gaillard)를 방문해, 그의 주선으로 경찰인 프로망토(Fromenteau)를 만난다. 프로망토는 가조날에게 파리에는 다섯 가지 유형의 경찰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사법경찰, 비밀경찰, 정치경찰, 외교경찰, 왕실경찰이 그것이다. 이중 왕실경찰은 혁명 이후 사라져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망토는 현재 상업적 치안 유지 차원에서 채무자를 수색해 검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다음 로라와 빅시우는 가조날을 데리고 모자 가게로 가서 당시 유행하는 모자를 새로 맞춘 다음, 누리송(Nourisson) 부인을 방문한다. 그녀는 부유한 유명 인사들에게 양복을 판매하는 여인으로, 원한다면 그들에 관한 정보도 함께 팔았다. 빅시우는 그녀에게서 가조날이 필요한 정보를 산다.


그런 다음 그들은 수위인 라브누이예(Ravenouillet)를 방문한다. 라브누이예가 수위로 근무하는 건물의 세입자들은 무려 71명이다. 라브누이예의 수입은 이들의 월세의 30%였기에 상당액이었다. 수위로서 딱히 하는 일도 없이 그저 편지나 챙겨주는데도 매달 꼬박꼬박 선금으로 지급된다. 가조날은 파리의 생활 방식에 경악한다.


그 다음으로 그들은 고리대금업자인 보비네(Vauvinet)를 방문한다. 보비네는 처음엔 빅시우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빅시우가 보비네에게 ‘저명한 은행가들인 티예와 뉘싱겐이 매입하려는 철도 계약에 참여하려는 거라고, 오늘 밤에 티예와 뉘싱겐이 카라빈 집에서 철도 계약과 관련해 정치인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귀띔 하자, 보비네의 태도가 돌변해 갑자기 돈도 신용도 가능해진다. 비록 빅시우는 그 철도 계약이 이미 물 건너 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로라와 빅시우는 가조날을 데리고 생-조르주(Saint-Georges) 가에 위치한, 어느 영향력 있는 공작부인의 살롱에 참석한다. 살롱에 가기 전에 가조날은 살롱의 품격에 맞춰 의복을 갖추고 머리도 손질한다.


그들이 다음으로 방문한 사람은 점쟁이 노파 퐁텐느(mère Fontaine)이다. 그녀는 가조날의 소송에 대해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알아맞혀서 가조날을 경악하게 만든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모두가 모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마련이므로 노파가 가조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게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제 그들은 비로소 국민의회를 향해 출발한다. 빅시우는, 국민의회는 전적으로 사리사욕과 허영심으로 운용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라스티냑(Rastignac) 백작이 그들을 맞이한다. 라스티냑은 가조날에게 파리에서 일을 도모하려면 우선, 다음 지방 선거에서 라스티냑 당파 소속 후보를 선출해주기로 약속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가조날은 이를 약속한다. 라스티냑은 세 사람을 데리고 의회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가조날은 좌파와 우파가 은밀하게 협상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가조날은 이러한 부패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그는, 그 역시 이미 라스티냑 당파의 후보를 선출하기로 약속함으로써 그들의 비리에 공모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 빅시우와 로라는 가조날을 데리고 제니 카딘(Jenny Cadine)을 만나러 간다. 그녀는 마솔(Massol)의 후원을 받는 배우였다. 가조날이 참사원의 소송에서 승소하려면 마솔이 필요했다. 따라서 카딘은 가조날의 소송에 유용한 인물이었다. 가조날은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다.


로라와 빅시우는 가조날을 데리고 그날 밤 정계, 재계, 언론계 주요 인사들이 모여 연회를 즐기는 카라빈의 살롱에 참석한다. 시골뜨기 가조날은 카라빈 살롱의 휘황찬란한 실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카라빈이 다가와 가조날에게 무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시냐고 묻자 빅시우가 가조날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급 레이스를 선물하라고 귀띔 한다. 가조날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카라빈에게 연회에 초대해주신 답례로 자신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급 레이스를 드리겠다고 더듬더듬 말하는 순간에 카딘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그러더니, 가조날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날리며 자신에게는 뭘 주시겠냐고 묻는다. 카딘의 매력에 넋이 나간 가조날은 카딘을 위해서는 전 재산을 드리겠다고 말하며, 속으로는 “모든 것을 준다는 건 결국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마솔을 비롯해, 클로드 비뇽(Claude Vignon), 뒤 티예, 막심 드 트라이유, 뉘싱겐, 뒤 브뤼엘(du Bruel), 말라가(Malaga), 가이야르(Gaillard) 부부, 보비네 등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마솔은 가조날의 소송 얘기를 경청해주긴 하지만, 그저 형식적인 답변 외엔 아무런 확약도 해주지 않는다. 마솔의 냉정하고 무심한 답변에 절망한 가조날은 카딘을 통해 일을 성사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이는 몹시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영리한 카딘은 순진한 시골뜨기 가조날을 홀려서 새 가구를 얻어내려는 ‘음흉한 바람’으로 가조날을 그녀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사흘이 지나도록 가조날이 보이지 않자, 로라와 빅시우가 가조날의 거처를 방문한다. 가조날은 몹시도 지치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직 소송도 마무리되지 않았건만, 변호사 비용조차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카딘이 가조날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가조날에게 갚을 능력도 없는 환어음을 여러 장 남기고 떠났다. 가조날은 지방 출신자들은 “도저히 파리를 감당할 수 없다”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힘없이 말한다. 그러자 빅시우는 이게 바로 수도 파리의 위엄이라고 지적하며, 넋 나간 표정으로 환어음을 응시하고 있는 가조날에게 “그래도 우리가 자네를 박대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걸세. 나름 우리는 자네를 데리고 다니며 잘 먹이고, 잘 가르치고... 또, 재미도 보게 해줬으니 말일세.”라고 덧붙여 말했다.




분석


이 작품의 도처에는 유진 드 라스티냑(Eugène de Rastignac), 요셉 브리도(Joseph Bridau), 시인 멜키오르 드 카날리(Melchior de Canalis), 화가 뒤부르디유(Dubourdieu), 카라빈(Carabine), 모리배들인 세리제(Cérizet)와 페르디낭 뒤 티예(Ferdinand du Tillet), 곡마사 말라가(Malaga), 뉘싱겐(Nucingen) 남작, 막심 드 트라이유(Maxime de Trailles), 이발사 마리우스(Marius) 등, 『인간희극』의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포진되어 있다. 마치 발자크 자신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며 자처해서 인물 열람표를 작성하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첫 출발(Un début dans la vie)〉의 등장인물들 중 하나였던 쉬네르(Schinner)의 문하생 미스티그리(Mistigris)도 이제 36세가 되어 이 작품에 다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인물 군상과 소극을 집대성해 아주 잘 구성된 연출로 그려내고 있다. 가조날은 마치 『인간희극』의 증인처럼, 파리와 파리의 모든 구역들이 혼합된 파리생활에 존재하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의 모습이다. “파리는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살롱과, 감미로운 분위기와, 부드러운 감촉의 직물, 그리고 정중하고 고상한 구역들로 대표되는 파리가 하나 있고, 지옥 같은 난장판 분위기와, 음침한 뒷골목(페라귀스)과, 비참한 다락방으로 대표되는 파리가 또 하나 있다.”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불어판 사이트의 내용을 제가 번역해서 발췌 및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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