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파리생활정경 제19권
〈프티 부르주아(Les Petits Bourgeois)〉는 1855년에 브뤼셀(Bruxelles)의 《키슬링(Kiessling)》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후 1856년에 《포터(Potter)》에서 『인간희극』의 「파리생활 정경」으로 분류되었다.
〈프티 부르주아〉는 〈농민들(Les Paysans)〉, 〈아르시의 의원(Le Député d'Arcis)〉과 함께 『인간희극』의 대표적인 미완성 소설의 하나로 꼽힌다. 따라서 발자크 생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단 한 번도 발표되거나 출판된 적이 없다. 작가 생전의 판본이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사후 간행물은 존재하는데, 발자크의 아내 에브 드 발자크(Eve de Balzac; 한스카 부인)와 발자크의 보조 작가였던 샤를 라부(Charles Rabou)가 결말을 덧붙여 1854년 7월 26일에서 8월 31일까지 신문 《르 페이(Le Pays)》에 발자크의 이름으로 연재를 한 것이다. 발자크는 이 소설의 교정지를 재독하면서 작품의 완성에 대한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프티 부르주아〉, 그것은 일련의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서사적 작품이며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많은 시간을 요구했고, 지금도 수없이 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모데스트 미뇽〉은 마치 버섯처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쉽게 돋아났습니다!”
부르주아 왕정의 문제점 중에서 발자크가 특히 관심을 가진 새로운 소설적 주제는 부르주아지 내부의 분화 대립, 그리고 부르주아지와 민중(노동자, 농민)의 대립이었는데, 그 두 주제는 바로 〈프티 부르주아〉, 〈농민들〉, 〈아르시의 국회의원〉의 주제가 된다.
이 작품에서 발자크가 지칭하고 있는 ‘프티 부르주아’라는 계층은 ‘화이트 칼라’ 계급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당시의 시민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이자 지적인 계층을 지칭하고 있다. 발자크는 당시에 ‘급부상’ 중이던 이 계급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혹 격한 경멸을 표시하곤 했다.
‘사라지는 파리’라는 제목의 제1장에서는 ‘주택’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발자크는 건축을 이용해 수도권에서의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 위치의 변화 등 부르주아 계급이 장악한 도시의 미래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마치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계속되는 임무 안에서 변화하고 계속해서 예시되는 사회미래 안에서 변하는 것과 똑같이, 파리는 남아 있지만 변모한다. 어떤 사회, 정치적, 혹은 문학적 의미체제가 떠나가고, 다른 체계가 생겨난다.
그런데 13장부터는 이야기가 프티 부르주아에서 민중 쪽으로 선회하면서 파리의 모든 사회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파리는 진부하고 수수께끼 같은 “모험의 중심지”가 된다. 발자크는 상인이나 공무원 이야기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사회계급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연구로 진행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새로운 확대로 인해 방향을 결정하기 어려운 서사구조에 처하게 된다.
명철한 사업가인 노처녀 마리 잔 브리지트 튈리에(Marie-Jeanne-Brigitte Thuillier)는 가방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사업체를 매각해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 그녀는 그녀의 오빠를 위해 살림하고 사업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지만 그 어떤 불만도 가지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오빠이지만 그녀는 오히려 오빠를 위하는 마음이 점점 더 지극해질 뿐이다. 오빠는 매력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능력이 별로 없어서 그저 단순 사무직에 종사한다. 브리지트 튈리에는 오빠의 사생아인 셀레스트 콜르빌(Céleste Colleville)의 후견인이기도 하다. 셀레스트의 생모인 플라비 콜르빌(Flavie Colleville)은 여러 명의 정부를 둔, 탐욕스런 야망으로 가득한 여자이다.
여기서 발자크는 〈관리들(부제: 우월한 여인)〉에서 이미 다뤘던 주제인 공무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전개한다. 이 작품에서는 플라비 콜르빌이 바로 ‘우월한 여인’이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을 출세시키기 위해 권력을 가진 주요 인사들을 유혹해 갖은 계략을 꾸민다. 덕분에 튈리에처럼 단순 사무직이었던 콜르빌은 승진을 바라보게 된다. 플라비의 계략들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특히, 막강한 권력자 페이라드(Peyrade)의 조카이자 변호사인 테오도즈 드 라 페이라드(Théodose de La Peyrade)가 셀레스트 (콜르빌) 튈리에와의 결혼과 그녀의 지참금을 바라고 합세하게 된다. 또 다른 공무원 미나르(Minard) 역시 셀레스트와의 결혼과 지참금을 눈독 들이고 있던 참이다. 이를 위해 테오도즈 드 라 페이라드는 부동산 사업을 미끼로 마리 잔 브리지트 튈리에를 공략하려 한다. 하지만 이 부동산 사업의 수익은 셀레스트 콜르빌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소설의 내용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지며 미완으로 남겨진다.
발자크는 분명 보다 위대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등장인물은 무수히 많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계략들도 복잡하기 그지없으며, 이미 〈관리들(부제: 우월한 여인)〉에서 다뤄졌던 내용과 유사한, 수많은 인물상과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다시금 펼쳐진다. 발자크의 초고본은 여기서 갑자기 중지된다. 육필 원고인 초고본에 여러 번 다시 지우고 수정한 흔적이 역력한 채로 발자크는 자발적으로 소설의 완결을 포기한다. 발자크 사후에야 출판된 나머지 내용은 그의 보조 작가였던 샤를 라부가 그의 아내 에벨리나 한스카(Ewelina Hańska)와 함께 이 미완의 소설 분량을 두 배로 늘려 결말을 끌어낸 내용이다. 출판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 소설은 부르주아와 관련해, 관료주의를 통해서 사회적 정체성을 기대하고 있는 중간계층의 위치로 다가가는 와중에 있는 파리의 소부르주아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발자크가 이 소설의 결말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로 다양한 가설들이 계속해서 제시되고 있지만, 실제의 역사와 글쓰기의 가상 사이에서 제어할 수 없는 충돌에 의해,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허구의 문학성 간의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의해 혼란에 빠졌다는 가설이 가장 힘을 얻고 있다.
부르주아의 결혼이라는 주제를 담은 이 소설은 1839년에 착안되었다. 발자크는 이 작품에 〈관리들〉의 등장인물들을 재등장시킨다. 그러나 〈관리들〉의 시대적 배경은 1824년이고, 〈프티 부르주아〉는 1839~1840년이기에, 15년이라는 두 시대의 격차로 인해 〈프티 부르주아〉는 사회적인 변화 발전에 대한 연구에서 정치적인 변화 발전에 대한 연구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부르주아가 체제로 편입되고, 가시화되고, 통합됨에 따라 점점 더 일반화된 사회 전체 계급으로 확대되면서, 일반적으로 『인간희극』의 특징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주요 인물들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요컨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둔화되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839년으로, 왕정복고 시대 관료제 개혁이 주제였던 〈관리들〉에서 단역들이었던(주인공인 개혁자 라부르뎅과 대립각을 세웠던 데 뤼포나 부와이예 정도가 아니라 그저 엑스트라 같았던) 하급 관리들이 주역들로 등장한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의 주제를 “옛날의 부르주아지와 오늘날의 부르주아지를 비교”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면서 소설의 주요 무대인 하급관리 티예의 집에 모인 티예의 그룹을 가리켜 루이 필립 체제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사회 계층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제는 〈농민들〉과 더불어 『인간희극』에서 가장 야심적이다. 발자크의 표현대로 이와 같은 새로운 “사회계층” 위에서, 그리고 그 계층을 통해서, 발자크의 소설은 체제의 철학과 그 권력의 메커니즘을 겨냥한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 안에 나타나는 부르주아에 대한 묘사는 발자크의 풍자 혹은 생리학에서처럼 불특정의 소부르주아들을 묘사하고 있을 뿐, 계층을 대표하는 소부르주아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작가 스스로 소설의 의도라고 밝혔던 “1830년의 부르주아 계급”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점에서 〈프티 부르주아〉는 부르주아를 표상하려는 발자크 자신의 기획에 있어 가장 덜 견고한 “가상” 소설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아마도 발자크의 〈프티 부르주아〉가 동질의 사회계층의 급상승을 너무 앞질렀던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대혁명 이후 시작되어 7월 혁명으로 노골화되는 프랑스 사회의 부르주아화에 대한 반대는 사실 당시 작가들의 일반적인 정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스스로의 작가적 위상이 (그들의 혈통에 의한 위상이 어떻든 간에) 부르주아지 혹은 프티 부르주아지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발자크처럼 철저하게 자각한 작가는 드물다. 많은 작가들은 부르주아 문제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작가적 존재는 속절없이 그 부르주아 경제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거나 감지했어도 애써 그 점을 외면했다. 그들 대부분은 부르주아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위상뿐 아니라 문학의 위상을 철두철미하게 부르주아 현상과는 분리시켰다. 작가의 프티 부르주아적 위상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문학의 권리주장이 양립할 수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발자크는 문학이 부르주아 자본주의 경제논리를 벗어나서 부르주아의 지배를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예외적인 자리를 더 이상 확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문학적 주제로 끌어들인 당시의 거의 유일한 작가였다.
▶ 참고 논문 :
1. 〈생성비평과 사회비평: 발자크의『프티부르주아』에 대한 사회 생성비평적 접근〉, 김인경(서울여대), 2002. 한국불어불문학회
2. 〈발자크와 부르주아〉, 이철의, 한국프랑스학논집 제53집(2006)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입니다.
▶ 볼드 처리된 문장은 논문 작성자가 원작을 번역한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