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생활연구 - 정치생활정경 제3권
〈아르시의 국회의원(Le Député d'Arcis)〉은 1854년, 발자크 사후에 발표된 미완성 소설이다. 발자크는 이 소설을 1839년에 〈지방에서의 선거(L'Election en province)〉라는 제목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1842년에야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아르시로 여행을 가며, 〈지방의 국회의원(Un député de provinc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1843년 초까지 현재 남은 대부분의 원고를 집필했다. 그러나 발자크는 이 소설을 끝내 완결시키지 못했고, 발자크의 충직한 보조 작가 샤를 라부(Charles Rabou) 덕분에 발자크의 사후인 1854년에야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제1부 〈선거(L’Élection)〉는 1839년에 집필을 시작해 1843년에 발자크에 의해 가필 수정된 후, 1847년에 《왕당파 연합(L'Union monarchique)》 지에 〈선거〉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샤를 라부는 발자크의 유언과 발자크의 아내 한스카 부인의 지시에 따라 이 소설의 결말을 완성시켜 1852년에, 제1부 〈선거〉, 제2부 〈살르노브 백작(Le Comte de Sallenauve)〉, 제3부 〈보비자쥬 가문(La Famille Beauvisage)〉 등, 전체 3부로 구성해 《르 콩스티튜시오넬(Le Constitutionnel)》 지에 발표했다. 이때는 샤를 라부가 집필한 부분에 대해서 따로 명시되지 않았으며 3부 전체가 통합되어 단행본으로 출판되지도 않았다. 제1부 〈선거〉는 1854년에 《포터(Potter)》에서 “샤를 라부 탈고”(Terminé par Charles Rabou)라고 명시해 출간되었고, 제2부 〈살르노브 백작〉과 제3부 〈보비자쥬 가문〉은 그 이듬해인 1855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1864년에야 《미쉘 레비(Michel Lévy)》에서 〈발자크 전집(Œuvres complètes d’Honoré de Balzac)〉을 발간하면서 “샤를 라부 탈고”라고 명시해 3부 전체가 통합되어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단 이틀 동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대략 6개의 장면으로 소설의 구조를 구분해볼 수 있다. ‘살롱 집회 장면’을 시작으로, ‘반(反)시몽 세력의 산책 장면’이 이어지고, ‘보비자쥬 가문 이야기’가 전개된 뒤, ‘마리옹 부인의 저녁 살롱 장면’이 펼쳐지다 첫째 날이 마감된다. 이후 둘째 날에는 미지의 인물인 ‘막심 드 트라이유가 등장’하고, ‘막심 드 트라이유와 파리 살롱의 모습’이 플래쉬백 기법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은 사실상, 승장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여 제 1제정을 여는 계기가 되는 ‘마렝고 전투’(1804년) 장면으로 시작되는 〈음모〉의 속편으로, 지게(Giguet), 미슈(Michu), 생시뉴(Cinq-Cygne), 시뫼즈(Simeuse), 샤르주뵈프(Chargebœuf), 공드르빌(Gondreville) 등, 〈음모〉의 등장인물들이 대거 재등장해 그들의 후손들 이야기로 이어진다. 대혁명이 나폴레옹 제국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근대사의 혼란 속에서, 대혁명 1세대인 귀족계급(로랑스 드 생시뉴)과 시민계급(말랭 드 공드르빌)의 사회적 갈등과 음모를 그려낸 소설 〈음모〉 이후 35년의 세월이 흐른 〈아르시의 국회의원〉에서 그 1세대는 80줄에 접어든 은퇴자들로 등장하고, 앙시엥 레짐에서 해방되어 부(富)와 실력을 축적한 부르주아 2세대가 중간 역할을 맡고, 이제 그 자식들인 3세대가 근대 시민사회의 주역을 담당하면서, 그들 사이에 권력 경쟁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역학 관계의 변동 양상을 보여준다. 이 두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샹파뉴 주(州)의 오브(Aube) 도(道), 아르시(Arcis) 군(郡), 그곳의 소도인 아르시쉬르오브(Arcis-sur-Aube)이다. 발자크는 〈음모〉에서는 나폴레옹이 패전할 경우 언제든 왕정을 복고시키려는 내무장관 푸쉐(Fouché)와 외무장관 탈레랑(Talleyrand)의 궁정 음모를 통해서 격동하는 프랑스 근대사의 한 핵심을 짚어내고 있고, 그 속편인 〈아르시의 국회의원〉에서는 자코뱅 우파 혁명가인 당통의 고향이기도 한 샹파뉴(Champagne)의 이 외진 소도를 배경으로, 이미 선거제도가 프랑스의 최소 코뮌 단위까지 정착된 정치적 양상을 그려낸다.
1839년 4월말, 샹파뉴의 소도 중 하나인 아르시에 국회의원 선거가 임박한 어느 날, 마리옹(Marion) 부인은 아침 10시부터 살롱에서 분주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그녀의 조카인 시몽 지게(Simon Giguet)가 아르시의 국회의원 후보로 지명되도록 하기 위한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오라비이자 나폴레옹 군대의 퇴역장교인 지게(Giguet) 대령은 아들인 시몽의 국회의원 후보 지명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지만 마리옹 부인은 지난 24년 동안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살롱을 유지해온 보람이 있을 거라고 확언한다.
이윽고 정오가 되자 마리옹 부인의 살롱에 67명의 유권자들이 모여, 과연 시몽의 국회의원 출마권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핵심 의제를 두고 열띤 정치 토론을 벌인다. 아르시는 말랭 드 공드르빌(Malin de Gondreville)의 사위인 은행가 켈레르(Keller)가 지난 20년 동안 국회의원직을 수행해왔다. 켈레르는 자신의 아들 샤를(Charles)에게 국회의원직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기실 아르시의 국회의원직은 대혁명 이후 줄곧 공드르빌 가문이 독점해왔는데, 그 1세대인 말랭을 거쳐 그의 사위이며 파리의 대은행가인 켈레르가 현직 의원이며, 이제 80세가 된 그랑 부르주아(grand-bourgeois) 말랭은 3세대 외손자인 샤를 켈레르를 내세워 대를 물려 아르시 의원직을 세습시키려 한다.
〈음모〉에서 말랭 드 공드르빌의 충직한 조력자였던 공증인 그레뱅(Grévin)은 이제 76세가 되어 재등장하는데, 그는 샤를 켈레르를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귀족계급에게서 영지를 탈취해 나폴레옹 제정 하에서 신흥 백작으로 중신이자 상원의원이 되었던 말랭의 오른팔이었던 그레뱅은 아르시의 유일한 공증인으로 부르주아 실력자가 되었다. 요컨대, 귀족계급과 대결하여 승리하는 대혁명 1세대의 주역들인 말랭과 그레뱅은 상승하는 시민계급의 흥미로운 전형으로서, 아르시에서도 은퇴한 실력자로서 3세대 후손들을 통해 후광을 발산한다. 발자크는 이 그랑 부르주아 명사들과 당통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이것은 대혁명이 샹파뉴의 이 시골구석에까지 끼친 영향력을 설명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레뱅의 사위인 필레아 보비자쥬(Philéas Beauvisage)는 국회의원직이 세습되면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부르주아지의 자존심을 훼손하여 아르시가 ‘부패 선거구’로 낙인찍히게 될 것을 우려해 선거 개혁을 위해 시몽을 지지한다고 선언한다.
시장인 필레아의 사회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 마리옹 부인의 정치 살롱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는 시몽 지게와 아쉴 피구(Achille Pigoult)가 벌이는 논쟁이다. 대혁명 3세대인 이 두 젊은이들의 논쟁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실은 그들의 정치적 이념에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차원의 동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선, 나폴레옹 군대의 퇴역장교인 지게 대령의 아들이며 트루아 세무서장의 미망인으로 고모인 마리옹 부인의 지원을 받는 변호사 시몽의 경우, 그의 출마 동기는 정치적 야심과 더불어 특히 세실에 대한 청혼이라는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오딜롱 바로(Odilon Barrot)와 아돌프 티에르(Adolphe Thiers)가 이끄는 중도 좌파적인 ‘운동당(Parti du mouvement)’의 후보로 출마하려는 그의 담론은 ‘진보’에 관한 장광설에도 불구하고 확신적이고 설득적이지 못하며, ‘민주주의자’임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아쉴에게 논박 당한다. ‘진보’를 역설하는 시몽이 아돌프 티에르와 오딜로 바로가 주도하는 중도 좌파 ‘운동당’의 후보로 출마하려는 이유는, 제국 군대의 장교 출신인 그의 아버지 지게 대령, 트루아 세무서장의 미망인이며 고모인 마리옹 부인, 그리고 변호사인 그의 신분이 말해주듯이, 본래 부르주아 출신인 그의 사회계급과도 부합하지만, 1839년의 정치 역학으로 볼 때,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 “티에르처럼 유창하며, 웅변적이고, 야유하는” 아쉴 피구의 경우, 아르시의 그랑 부르주아들(말랭, 그레뱅, 필레아)의 공증인으로서 그들의 조종을 받으면서 시몽의 청혼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그의 담론 역시 예리한 적확성에도 불구하고 왜곡된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적 입장이 흥미를 끄는 것은, 대혁명 3세대의 프티 부르조아(petit-bourgeois)로서, 이제 프랑스의 사회 권력은 생시뉴나 시뫼즈 가문 같은 대귀족이나, 말랭이나 그레뱅 같은 그랑 부르조아가 아닌, 점차 시민계급에 의해 주도되며 확산되는 정치적 근대성의 양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마, 아르시의 명사들이 모여든 마리옹 부인의 살롱에서 논쟁을 주도하면서 당대의 정치 현실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현실주의자 아쉴 같은 인물은 차후 근대적 시민 권력의 확산 과정에서 ‘공화파’의 실력자로 부상할 것이다. 요컨대, 부르주아 인물인 시몽과 쁘띠 부르주아 인물인 아쉴을 통해 1840년 전후 프랑스의 정치적, 사회적 근대성의 양상들이 개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랭 드 공드르빌의 이러한 권력 세습 의도는 샤를 켈레르가 알제리 원정에서 사망함으로써 좌절된다. 이제야 비로소 아르시의 국회의원직이 공드르빌 가문의 수중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게에게는 샤를 이외에도 여러 반대파가 존재했다. 군수 굴라르(Goulard), 검사 마레스트(Marest), 판사 마르트네르(Martener)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실 보비자쥬(Cécile Beauvisage)와의 결혼을 열망했는데, 세실이 그들의 청혼을 거부하면서 이들 모두가 시몽의 반대파로 돌아섰다. 아름다운 세실은 아르시의 시장이자 이 소도의 그랑 부르주아에 속하는 필레아 보비자쥬의 딸로, 지참금이 무려 10만 프랑에 달했다. 시몽 역시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목적 중의 하나가 세실과의 결혼이었다.
요컨대 아르시는 ‘시몽파’와 ‘반시몽사’로 대립하게 된다. 시몽파에는 그의 아버지와 고모를 비롯해 중류층이거나 프티 부르주아들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상황에 따라서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반시몽파에는 보비자쥬 가문(필레아, 그의 아내, 세실, 그레뱅)과 더불어 그 가문의 공증인 아쉴 피구, 그리고 전문직 중간층인 마레스트, 굴라르, 마르트네르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부르주아는 점차 그랑 부르주아와 중간층으로 나뉘며 2차적 갈등이 구체화된다. 요컨대 중앙 권력의 거물로서 아르시 국회의원직을 세습해 온 말랭 드 공드르빌 가문에 대해서, 시몽을 대표로 이 지방 소도시의 시민계급 거의 전부가 대항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반대파들에도 불구하고 아르시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시몽에 집중되는 듯하자 시몽은 이미 국회의원 후보로 확정된 듯 우쭐거리게 된다.
하지만 시몽으로서는 불행하게도, 아르시의 국회의원직은 파리의 권력자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파리에서 내려온 막심 드 트라이유(Maxime de Trailles)까지 상당히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해줄 세실과의 결혼을 목표로 아르시의 선거판에 끼어든다. 막심은 처음엔 ‘미지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굴라르를 대면해, 자신의 이름을 대는 대신에 도지사의 기밀 편지를 전달한다. 편지에는 이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과 선거에 대해 논의하라는 도시자의 지시가 적혀 있다. 막심은 만일 아르시의 선거가 자신을 아르시로 파견한 사람들의 바람대로 이뤄진다면 굴라르가 도지사와 한 배를 타게 될 거라고 귀띔 하고는, 또 다른 두 통의 편지를 건넨다. 굴라르는 미지인의 편지에 자신의 승진이 달려 있음을 직감한다.
막심 드 트라이유는 제국 시대에 백작 지위를 받은 신흥 귀족으로서, 페라귀스가 두목인 ‘13인회’의 멤버이며, 드 마르세(de Marsay)의 친구이다. 이제는 48살의 중년으로서 “삶에 지치고, 환멸을 맛보고, 미망에서 깨어난” 막심은 아르시의 마리옹 부인의 살롱에 등장하기 두 달 전에 파리의 에스파르(Espard) 후작 부인 저택의 살롱에서 이제는 장관이 된 친구 외젠 드 라스티냑(Eugène de Rastignac)을 만났다. 라스티냑은 빚투성이에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막심을 돕기 위해 그를 ‘내각보수파’의 후보로 아르시로 급파했다. 이 파리 살롱 장면에서는 젊은 날 파리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총아들인 드 마르세와 라스티냑, 막심 드 트라이유 등이 세월과 더불어 변모한 편린들을 엿볼 수 있는데, 드 마르세는 “7월 혁명이 낳은 유일한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되면서 수상을 역임하고 이미 사망했으며, 라스티냑은 대은행가인 뉘싱겐(Nucingen) 자작과 고리오 영감의 딸인 델핀(Delphine) 사이에 태어난 오귀스타 드 뉘싱겐(Augusta de Nucingen)과 막 결혼해 드 마르세 내각의 차관을 거쳐 장관이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막심 드 트라이유의 등장으로 인해 파리지엔을 꿈꾸는 세실은 시몽을 단번에 촌뜨기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변방의 엑스트라였던 귀족 계급 생시뉴 가문과 시뫼즈 가문이 재등장하고, 사회적 갈등이 부르주아지 내부에서 이제 귀족과 시민 사이의 계급적 갈등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막심이 건넨 편지는 레스토라드 부부(L’Estorades), 마리 가스통(Marie Gaston), 옥타브 드 샹(Octave de Camps) 부인, 샤를 드 살르노브 아카 도르랑주(Charles de Sallenauve aka Dorlange)가 쓴 편지였다. 이들 모두 〈두 젊은 부인의 회상록(Mémoires de Deux Jeunes Mariées)〉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제2부에는 〈음모(Une ténébreuse affaire)〉에서 이미 다뤄졌던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반복되고, 〈사촌 베트(La Cousine Bette)〉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대거 재등장한다. 특히 소작농의 아들인 필레아 보비자쥬에 대해 집중 조망된다. 그러나 〈아르시의 국회의원〉은 미완 상태이기 때문에, 막심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베아트릭스(Béatrix)〉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베아트릭스〉에 따르면, 막심과 세실은 1841년에 결혼한다. 그리고, 〈여사촌 베트(La Cousine Bette)〉에서 보면, 결국 세실의 아버지 필레아 보비자쥬가 아르시의 국회의원이 되어 있으며, 1845년에 그의 사위이며 ‘내각보수파’인 막심에게 그의 의원직을 물려준다.
〈아르시의 국회의원〉은 1901년까지 계속해서 개정되었고, 이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의 비평이 쏟아졌다. 특히 발자크의 아내인 에브 드 발자크(Ève de Balzac)의 자격에 대해 전문가들의 비난이 집중되었다. 그녀는 “이 위대한 영혼과 왕성한 의욕의 소유자(발자크)에 의해 창조된 항구적이고 방대한 가족 구성원들의 관습이나 풍속, 그들의 관계와 행적들에 관한 세부 묘사는 모두 나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샤를 라부는 에브 드 발자크의 지시에 따라 이 “항구적이고 방대한 가족”의 생을 상당히 오랫동안 추적해야 했고, 그리하여 제3부 〈보비자쥬 가문〉까지 이어졌다.
제3부는 보비자쥬 가문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음모〉에서 미슈와 적대적 관계였던 생시뉴 가문의 소작농으로 출발한 보비자쥬 가문은 수많은 가족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필레아 보비자쥬를 통해 나폴레옹 전쟁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다. 상원의원 말랭 드 공드르빌은 필레아 보비자쥬를 대신해 징병에 나갈 사람을 사서 그를 징병에서 빼낸다. 그 덕분에 필레아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면직 사업을 통해 짧은 기간에 막대한 부를 형성한다.
보비자쥬 가문 이야기는 당시 프랑스 북동부 지방의 풍경과 현실과 산업을 서술하는 ‘샹파뉴 개관’으로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포도주 생산과 더불어 면직물 산업이 발달했던 “샹파뉴는 외관상 가난한 지방으로 보이며, 실제로 가난한 지방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샹파뉴를 구성하는 세 개의 도(道)들은 너무나 잘 알려진 그 풍요로운 포도원들과 더불어, 이제는 번창하는 기업체들로 가득하다.” 이 ‘샹파뉴 개관’에서 발자크는 아르시와 트루아(Troyes)를 중심으로 발달한 면직 산업에 대해 흡사 경제학 논문과도 비견할 만큼 리얼하고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발자크는 당시 프랑스의 중개업자들이 상품의 유통 과정에서 축재와 독점을 통해 투기와 폭리를 취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이렇게 역설한다. “축재하는 것은 사회적 범죄이다. 이러한 지방의 우둔한 경제가 산업체의 생명력을 중단시키며, 국가의 건강을 해친다.” 이 ‘샹파뉴 경제론’에서 개진되는 발자크의 논점은, 축재가 아닌 자본의 흐름과 투자를 통해서, 샹파뉴처럼 낙후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매점과 투기가 아닌 ‘자본의 유동성’을 통한 ‘산업 에너지’의 고양과 사회의 발전을 수용함으로써, 근대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일면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매점과 독점의 투기’의 경우에 관해 이른바 “면직물의 장군”인 필레아 보비자쥬를 그 예로 들고 있다.
샹파뉴의 독점적인 면직물 사업을 통해 성공한 상류 부르주아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필레아 보비자쥬는 본래 샹파뉴 대귀족인 시뫼즈 가문(생시뉴 가문과 사돈 관계)이 소유한 공드르빌 영지에 속하는 벨라슈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서민 출신이다. 하지만 면화 중개상인 피구(Pigoult) 상사의 점원으로 시작해서 그 사장이 되어 부를 축적하고는, 이제는 아르시의 시장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말하자면, 그는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의 혼돈과 변화 속에서 부상하는, 즉 부의 축적이라는 경제적 실력을 통해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는 근대적 부르주아지의 발생 과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델인 것이다. 필레아 보비자쥬의 경제적 성공은 전형적인 매점과 투기 덕분으로서, 그것은 특히 1814년 나폴레옹 전쟁과 대륙 봉쇄령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따른 결과이다. 즉, 그가 중개하는 상품은 1차 원자재로서의 ‘면화(Coton)’, 그리고 그 원료를 사용하여 보네(Bonnet) 모자를 비롯한 내의, 셔츠, 양말 등의 면직물을 가공하여 고가로 중개하는 사업인데, 당시의 면화 가격은 나폴레옹 전쟁의 승패에 따라 등락했고, 필레아의 면화사업 성공 스토리도 이런 정치적 불안정에 따른 매점과 투기의 기회들을 잘 활용한 덕분이다.
사실, 그가 ‘피구’ 상사를 인수하는 것도 면화의 가격 변동에서 기인하는 바, 그 사장은 면화를 고가에 구입했다가 파산 상태에 이르지만, 필레아는 황제의 칙령으로 리스본에서 대량 수입된 덕분에 면화 가격이 하락된 기회를 이용하여 그 원료를 싼 값에 구입한다. 따라서 기존의 손실액을 보전하고 만회하면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중개상으로서 오히려 큰 이득을 챙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 요컨대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과 보호무역 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면화 가격이 결정되기에, 그의 제국이 몰락하면 인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도처에서 면화를 수입하여 가공, 수출하는 영국 상인들의 유럽 시장 진출 때문에, 프랑스의 면화 산업은 몰락하게 된다. 필레아의 면직 사업은, 대불동맹군의 추격에 프랑스 내지로까지 쫓긴 나폴레옹이 1814년 2월과 3월 두 달 동안 주로 샹파뉴를 무대로 벌인 최후의 야전에서, 오히려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다. 따라서 필레아의 성공 스토리는 나폴레옹의 이 야전사(野戰史)를 통해서 더욱 명쾌하게 이해된다. 요컨대 나폴레옹의 불행은 필레아의 행운으로 전환되는 바, 그의 능란한 매점과 투기의 요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대륙 봉쇄령 등 나폴레옹 전쟁의 승패 예상에 따라 면화 구매량과 가격을 조절하고, 그리고 전쟁으로 판로가 막히고 가격이 하락한 면제품의 사재기를 통하여 군인과 민간인에게 고가로 되파는 방식이다. 그의 이런 투기적 사업 수완을, 발자크는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천재성은 양쪽 모두 똑같았다... 나폴레옹이 머리통들을 대량으로 떨어트릴 궁리를 하는 만큼이나, 필레아는 덮어씌울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필레아 보비자쥬는 ‘30만 프랑’의 수익을 껴안고 금의환향한다. 아르시의 유력한 부르조아들을 끌어당기는, “부유하지만 무식한 명사이며 시장”인 그의 딸 세실의 ‘10만 프랑’의 혼수는 바로 그 수익금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듯, 일개 소작농의 아들로 시작해, 아르시쉬르오브의 공증인 그레뱅의 딸과 결혼하고, 나폴레옹의 승패를 이용해 상인으로서 막대한 부를 이뤄 시장의 직위에까지 오른 필레아는 사실 아르시의 국회의원 입후보자로 변호사 지게도, 켈레르 백작의 아들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입후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비자쥬 집안의 실세는 필레아가 아니라 그의 아내 세브린(Séverine)이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내려온 막심 드 트라이유를 보는 순간, 한 눈에 세실의 남편감으로 낙점해 지역 사교계와의 단절을 감행한다. 세브린은 세실을 통해 파리 입성과 호화로운 삶을 열망한다. 이러한 그녀의 열망은 세실이 막심 드 트라이유와 결혼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었기에 세브린은 정부인 샤르주뵈프 자작에게서도 세실의 지참금을 넉넉하게 확보해둔다(사실 세실은 그녀와 샤르주뵈프 자작의 사생아 딸이었다). 그러나 세실과 막심의 결혼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는 완결되지 못했고, 〈베아트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혁명 이후, 크게 보면 ‘왕정과 공화정의 대립’과 더불어 ‘공화국의 탄생과 정착 과정’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19세기 프랑스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7월 혁명 이후 정치적 중심을 잃고 무려 10번이 넘게 내각의 붕괴를 경험하는, 유난히 허약하고 불안정한 정체를 유지했던 7월 왕정, 특히 그 중반기에 해당하는 1839년 초반 ‘몰레(Molé)’ 내각의 해산과 3월 2일의 조기선거라는 정치, 사회, 역사적 현실 그 자체가 이 소설의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시몽이 마리옹 부인의 정치 살롱에 모인 유권자들 앞에서 ‘진보’ 개념에 관한 일장 연설을 하면서, 당시 티에르가 이끌던 중도 좌파적 ‘운동당’의 후보로 출마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이 소설과 연작 관계인 대혁명 1세대의 이야기로서 〈음모〉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대거 재등장한다. 또한 대부분 샹파뉴의 소작농 출신으로서 대혁명 이후의 격동하는 근대사회에서 시민계층으로 상승하는 2세대 인물들(지게 대령, 필레아 보비자쥬, 켈레르 등)의 변모된 모습을 거쳐, 이제 그 자식 세대(시몽, 세실, 아쉴, 앙토냉 굴라르, 폴 드 생시뉴 등)의 선거와 결혼 등에 얽힌 갈등들을 이야기하면서, 이 소설은 ‘대혁명 3세대의 스토리텔링’이 되고 있다. 발자크는 줄곧 이 작품의 집필상의 어려움을 고백했는데, 이는 이렇게 대혁명 이후 3세대에 걸쳐 90여명에 이르는 모든 사회계층과 다양한 면모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의 방대한 규모와 구성과 배치 등의 문제들 때문일 것이다.
〈아르시의 국회의원〉은 이렇게, 몰레 내각이 시도한 1839년 3월의 조기선거라는 정치적인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근대적 정치소설이라는 점에서, 비록 미완으로 남았지만 희귀하고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발자크 말년의 작품이다. 무엇보다, 현실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표현하는 소설 장르의 특성상, 그것은 1840년 전후 즉 2월 혁명 전야의 프랑스의 정치적 리얼리티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탐색해볼 수 있는, 문학적 창조이자 자료로서 더욱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격동하는 프랑스 근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의 맥을 짚어내면서, 거시적이고 예리한 역사 인식을 보여준다.
▶ 발췌 논문 : 〈발자크, 『아르시의 국회의원(Le Député d'Arcis)』과 근대적 정치소설〉,
임헌(인하대), 프랑스어문교육학회
▶ 작품 배경 / 줄거리 / 분석 모두 상기 발췌 논문의 내용을 제 임의대로 압축해 줄거리 형태로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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