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아이들과 후다닥 저녁을 먹고 쉬는데 아내의 전화가 울렸다. 귀를 기울여보니 누가 찾아온다는 얘기. 어, 저녁에 누구지? 궁금해하다 첫째가 다니는 태권도장의 관장님이 오신단다. 무슨 일일까. 얼핏 드는 생각이 추석 전이라 안부인사를 오는 것일까. 설마... 진짜였다.
주섬주섬 옷깃을 여미고 문을 열었다. 약간 피곤해보이는 관장님, 나와 비슷한 연배인 사십대 초반. 그런데 내 시선은 관장님 옆에 서 있는 작은 꼬마에게로 갔다. 깨물어주고픈 아이. 우리 둘째보다 한두 살 많아보였다. 관장님이 한가위 선물이라고 뭘 건네면서 얼른 아이 고개를 숙여준다. 아이는 해맑게 인사한다. 우리는 어쩔 줄 몰랐다. 고맙고 미안하고.
"시골 내려가세요?" "아니요. 저흰 이 근처라서요." "며칠 내려갔다 옵니다. 저희는." "아, 그러세요. 관장님도 명절 잘 쇠시구요. 감사합니다." 급하게 인사치레를 하고 부자를 보냈다.
문득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태권도장도 경쟁이 치열하다. 도장을 그만두고 이전하고 그것이 반복되면 참 지칠만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맴돌다 마음이 짠해진다. 아들 둘을 키우는 내 마음이나 관장님 마음이나 매한가지 아닌가.
도장을 그만 다니고 싶다는 첫째에게 말했다. "너, 2품 꼭 따라. 한번 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왜, 갑자기 아빠?" 하더니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아빠. 그런데 품 심사받으러 국기원 갈 때 엄마 아빠 오지마. 부담돼."
애들이 다 잠든 밤, 잠시 깨서 물 한잔 먹다가 집집마다 추석인사를 다니는 두 부자 모습이 떠올랐다. 심장에 돌뭉치를 매단 것 마냥 가슴께가 묵직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