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사랑하는 사람과 눈 맞추기

by 홍탁

밤새 칭얼대던 둘째의 목이 하루 만에 폭삭 쉬어 버렸다.


어린 아가의 쉰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짠해 왔다. 그러면서 어제 퇴근하고 너무 피곤해 잘 놀아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가끔 아가를 보면서 ‘까꿍’하는 게 전부인 놀이였지만 말이다. 게다가 일곱 살 첫째는 유치원 가방에 소중히 달고 다니던 해골펜던트를 친구에게 주고 왔다. 알고 보니 친구가 단 한 번 달라고 청했을 뿐인데 아빠가 어렵게 구해서 달아 준 해골펜던트를 아주 쉽게 줘버린 거였다. 아내에게 듣자 하니 아들이 품에 지니고 자는 딱지니 카드니 할 것 없이 친구들에게 자주 나눠준다고 한다. 너무 순진해서 그런 건지 또 한 차례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을 소집했다. 먼저 첫째를 불러 앉히고 친구들에게 소중한 물건들을 있는 대로 다 주는 이유를 물었다. 아들의 대답은 예상 밖으로 차분했다. “나눠 주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아니라고 딱 잘라 말해 줄 수 없었다. 좀 더 대화를 해보니 서먹서먹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아끼는 물건을 건넸단다. 아, 그거였구나. 그래서 차근차근 얘기해 주었다. 물건을 준다고 친해지는 것은 아니고 한 번 더 마음을 표현하고 한 번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게 훨씬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러고는 둘째를 찾았다. 보행기에 탄 아가의 눈을 바라보고 아주 큰 몸짓으로 성을 다해 ‘까꿍’을 연발해 주었다. 아가는 아빠의 행동이 어색했는지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까르르 웃음보가 터졌다. ‘아빠도 행복해? 나도 행복해!’하는 것 같아 굳어있던 마음이 살살 녹아내렸다. 서서 내려다보면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아이들의 한없이 순수한 마음을 읽으려면 아이들 눈높이로 나를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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