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아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게는 또렷이 들렸다...

by 홍탁

몸이 으슬으슬 추워왔다.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쌍화탕과 감기약을 사 가방에 넣고 들어왔다. 언제부터 어질렀는지 거실 바닥은 장난감과 퍼즐, 동화책들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두 아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 나와 안기는 통에 뒤로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균형을 잡는다. 몸살 기운도 있어 얼른 따뜻한 국과 밥을 먹으려고 대충 씻고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은 식탁에 올 생각을 안 한다. 어르고 달래서 의자에 앉히는데 십여 분이 흘렀다. 중간에 단것을 먹었는지 적극적으로 식사에 임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한 그릇 뚝딱하면 자기 전까지 말놀이를 해준다고 덥석 약속해 버렸다. 사실 말놀이는 최후의 보루인데, 두 아들을 태우고 나면 허리가 휘청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치고 조금 쉬려고 하는데 아내가 설거지를 도와달라고 한다. 피곤하기도 하고 얘들이랑 놀아줘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살짝 거절 의지를 보였다. 아내는 대뜸 “요즘 집안일도 잘 도와주지 않구.” 하면서 아이들 방으로 청소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방에 있던 일곱 살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엄마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듯 했는데 내 귀에는 무엇보다 크고 또렷하게 박혔다. “엄마, 아빤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순간 울컥했다.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아내는 내게 한 말을 후회하는 표정으로 아들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내게 전했다. “여보, 들었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 한마디를 들은 것뿐인데. 이미 난 그동안의 고단함이 모두 치유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한마디로 나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