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도남, 상도녀 (1)

강원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의 만남 배경

by 청풍명월

어쩌다 둘이 살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묘한 일이다. 이전 브런치 글 <독립을 처방합니다>에서 나는 누구보다 혼자 사는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혼자 사는 게 나와 잘 맞는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5년 넘게 혼자 살다 보니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왔고, 그때 마침 나타난 사람이 이제 나와 함께 살게 된 ‘원도남’이다.

원도남인 이유는 그의 고향이 강원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경상도 동해안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동해와 맞닿은 지역에서 살고 있다. 그의 고향과 내가 사는 지역은 차로 3시간이 걸린다. 대중교통으로도 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내 성격상 장거리 만남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부담이었다. 내향적 성향이라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데, 장거리 이동은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매번 내가 사는 곳으로 기꺼이 와서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나에게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방적인 베풂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고, 나도 무언가를 그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감마저 들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생각이 많고 걱정도 무수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장거리의 부담을 이겨내고 그와 만남을 시작한 데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근 7년 사이에 가족을 두 번 잃었다. 아버지는 내가 본가를 탈출하고 몇 달 뒤 돌아가셨다. 죽음은 늘 갑작스러운 것일까. 어쩌면 나는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등장하는 김첨지처럼 가족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폐가 거의 다 망가졌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은 적이 있고, 아버지가 집에서 호흡 보조 장치를 사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와의 이별이 그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우리 네 남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 기간을 보냈다. 나는 혼자 살면서 어느 날 불쑥 밀려오는 슬픔과 원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걸 배웠다. 어느새 조카들이 셋이나 생겨서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아버지의 빈자리를 시끌벅적하게 채워 주었다. 가장 어린 조카가 돌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기가 많이 아파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고 큰 수술도 받았다. 하지만 끝내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카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2년 4개월의 짧은 생에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삶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어린 생명은 부모 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조카의 죽음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태어날 때 건강했던 아이가 갑자기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이렇게 빨리 가버린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이의 부모에게 가족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만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 떠난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가족들 사이에 금기시되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슬픔에만 빠져 있기를 바라는 가족은 없다. 언니가 마음을 잘 추스르고 일상을 굳건히 살아낼 수 있도록 몇 마디 말과 눈빛으로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생생한 것은 조카의 부고를 듣고 퇴근하던 길에 흩날리던 벚꽃들이다. 앞으로 벚꽃이 지는 걸 보면 이전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생에 가장 잔인한 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때 나는 직장을 막 옮긴 터라 정신없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마음이 황량한데 일을 무리해서 한 탓인지 크게 앓았다. 한참 앓고 나서 몸도 마음도 회복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 무렵 이전 직장에서 가까이 지냈던 동료가 소개팅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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