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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Jan 21. 2024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삶은 어떤 모양일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처음으로 인식한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시험 기간 중이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고 익숙한 오랜 고통이었다. 악다구니를 쓰고 옷을 찢으며 학교 운동장 흙바닥을 아무렇게나 마구 굴러다녀서 피투성이가 되는 상상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해소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실행에 옮겼다간 미친 사람으로 학교에 소문날 게 뻔해서 꾹 참아 눌렀다.


그럼에도 팽창하는 자해 욕구를 발산하고 공감을 받고 싶었다. 그때 친한 친구에게 내 생각을 털어놨다. "나 지금 너무 스트레스 받아. 어느 정도냐면 막 악을 쓰고 옷을 찢으면서 운동장에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구르고 싶어. 그렇게 하면 좀 해소가 될 거 같아." 당연히 나도 그렇다는 공감의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깜짝 놀라며 정말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니... 다들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 친구가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수능 공부를 할 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지금까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대답을 듣고 맥이 풀렸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자살 시도를 했다. 그 이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아파트 옥상이 늘 열려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뛰어내리는 과정을 상상했다. 어느 날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주방에 가서 식칼을 손에 쥐었다. 손목을 긋고 보란 듯이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어 올랐지만, 차가운 칼날이 살갗에 닿자 이딴 삶을 사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럼에도 죽고 싶지 않아서 눈물이 쏟아졌다. 지독한 무력감에 휩싸인 채 3일 내내 울었다. 그 이후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내게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말했을 때 친구가 충격을 받는 게 오히려 충격적이었다.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말은 어떤 선고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견디면서 무겁게 무겁게 살아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라고,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삶이 있었다. 여기 내 앞에.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나와 친하게 지내는 대여섯 명의 친구들이 모두 말했다.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이들과 나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때 비로소 지금껏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치료받는다면, 내가 왜 이런지 알아내고 원인을 제거하면, 그럼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있는 거 아닐까? 여태 본 적 없는 희망이 보였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삶은 어떤 모양일까. 여태껏 살아본 적 없는 삶을 살아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생각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죽고 싶을까. 나는 왜 이렇게 수치심에 견딜 수 없을까. 나는 왜 타인이 견디기 어렵고 동시에 너무 간절할까. 나는 왜 자꾸 괴로운 기억을 곱씹고 또 곱씹을까. 나는 왜 이렇게 강박적으로 행동할까. 나는 왜 손톱 옆 여린 살을 뜯는 자해 행위를 앞니에 금이 가고 손가락마다 피가 나고 휘어지도록 멈출 수가 없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휴학을 결정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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