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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왜 버려졌을까?

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by 이동혁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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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건축 (1~15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제9화: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왜 버려졌을까?


1. 안개 속의 유령 도시


2023년, 페루 안데스 산맥.


히람 빙엄(Hiram Bingham)이 마추픽추를 발견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벽녘, 짙은 안개가 협곡을 타고 올라와 돌로 쌓아 올린 성벽과 계단을 부드럽게 감쌌다. 해가 떠오를 무렵, 빛이 구름 사이를 뚫고 마추픽추의 폐허 위로 쏟아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도시처럼.


고고학자 리카르도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석조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발길이 닿을 때마다 부서진 돌들이 떨어져 나갔고, 먼지가 가볍게 흩날렸다.


“이 도시가 아직도 이렇게 견고하게 서 있다니…”


한 연구원이 감탄하며 손으로 벽을 쓸었다. 리카르도 박사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높은 고도에서의 공기는 얇았고, 바람에 실린 흙 냄새가 강하게 퍼졌다.

그는 연구원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가 바로 잉카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잉카 제국의 위대한 황제 **파차쿠티(Pachacuti)**에 의해 건설된 도시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어진 이 도시가 왜 갑자기 버려졌을까? 이 도시에 남아 있는 흔적들은 여전히 여러 가설을 불러일으켰다.


“마추픽추는 대체 왜 사라졌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2. 숨겨진 요새, 혹은 성스러운 도시?


마추픽추는 무엇을 위한 도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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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의 목적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다.


왕실의 피난처 – 전쟁이 벌어졌을 때 황제와 귀족들이 피신하기 위해 만든 도시

종교적 성소 – 태양신 인티(Inti)에게 바쳐진 신성한 공간

전략적 요새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도시


고고학자들은 마추픽추가 잉카 제국의 중심지인 쿠스코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점을 강조했다.

리카르도 박사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여기는 평범한 도시가 아닙니다. 마추픽추는 감춰진 도시였어요.”


이곳은 대중에게 개방된 대도시가 아니었다. 높은 산맥에 둘러싸여 있었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실제로, 스페인 정복자들은 마추픽추의 존재를 몰랐다.


“만약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곳을 발견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겠죠.”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도시에 살았으며, 왜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것일까?


3. 잉카의 몰락과 사라진 사람들


가설 1: 유럽인의 전염병과 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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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이 16세기에 급속히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에서 건너온 치명적인 전염병 때문이었다.


**천연두(Smallpox)**가 잉카를 초토화했다.

잉카 황제와 귀족들이 차례로 병에 걸려 사망했다.

사회 구조가 붕괴되면서, 많은 도시들이 버려졌다.


리카르도 박사는 한 연구원의 손전등 불빛을 따라 오래된 주거지를 바라보았다.

“고고학자들이 여기서 갑작스럽게 사망한 흔적을 발견했어요. 마치 사람들이 도망치려다 그대로 쓰러진 것처럼요.”

한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곳 사람들도 전염병으로 모두 사망한 걸까요?”

“아니요.” 리카르도 박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시신들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마추픽추에서는 대규모 매장지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이 어딘가로 떠났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가설 2: 스페인의 침략과 도망친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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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은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에 의해 정복되었다.


쿠스코는 약탈당하고, 잉카 황제는 사로잡혔다.

잉카 귀족들과 시민들은 마추픽추로 피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스페인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결국 마추픽추도 버려졌다.


“우리가 발견한 흔적 중에는, 일부 주거지가 급하게 버려진 모습이 있어요.”

리카르도 박사는 석조 벽면을 쓰다듬었다. 벽돌 사이로 이끼가 끼어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급하게 문을 닫고 떠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침략을 피해 도망치다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요.”


가설 3: 물 부족과 내부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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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추픽추의 쇠퇴가 단순히 외부 요인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잉카는 산악 지형을 이용한 계단식 농업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오랜 가뭄과 기후 변화로 인해 농업 생산이 어려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마추픽추는 외부 지원 없이 자급자족해야 했고, 이 조건이 무너지면 도시는 유지될 수 없었다.


“여기 물 저장고를 보세요.”

리카르도 박사는 빗물 저장 시설을 가리켰다.

“만약 이 도시가 몇 년간 가뭄을 겪었다면… 여기 살던 사람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4. 신비한 유산, 그리고 우리의 질문


“하지만…”

한 연구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추픽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유적은 아직 남아 있고, 사람들이 여기를 지켰어요.”


리카르도 박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잉카의 후손들은 여전히 이곳을 ‘성스러운 도시’로 여깁니다.”


마추픽추는 단순한 폐허가 아니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으며, 잉카의 유산을 되새긴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잉카인들은 왜 이곳을 떠났는가?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이 도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마추픽추의 돌벽은 조용히 서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품고 있는 듯했다.


그 해답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잉카의 또 다른 유적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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