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1부. 사라진 문명과 잃어버린 건축 (1~15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2023년, 캄보디아.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정글 사이로 한 줄기 아침 햇살이 비쳐들었다. 고대 도시의 잔해가 마치 신비로운 베일을 벗는 듯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사원의 돌벽은 초록빛 이끼와 덩굴에 뒤덮여 있었고, 마치 자연이 그 위를 조용히 삼켜버린 듯했다.
고고학자 리처드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손전등을 켜고 사원의 깊은 내부를 탐색하고 있었다. 돌바닥에는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벽에는 붉은색과 황금빛으로 장식된 희미한 부조들이 남아 있었다.
“이곳이 정말 인간이 만든 거라고 믿어지십니까?”
팀원 중 한 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리처드 박사는 손으로 조각된 벽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앙코르와트는 단순한 사원이 아닙니다.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죠.”
모두의 시선이 박사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13세기, 이곳에는 백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당시 유럽의 런던보다도 훨씬 큰 규모였죠. 하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정글에 묻혀버렸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왜 이런 거대한 문명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걸까요?”
리처드 박사는 손전등을 끄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설된 거대한 사원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종교적 성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이자, 정교한 수로 시스템과 발전된 도시 계획이 이루어진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15세기 무렵, 강력했던 크메르 제국은 점차 쇠퇴했다. 그리고, 마치 신기루처럼 거대한 도시는 정글에 묻혀버렸다.
무엇이 이 찬란한 문명을 무너뜨린 것일까?
“우선 첫 번째 가설은 자연의 반격입니다.”
리처드 박사는 사원의 돌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수로와 저수지 같은 구조물이 조각되어 있었다.
“앙코르 왕국은 거대한 수로 시스템을 이용해 농업을 확장했어요. 이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수자원 관리 덕분이었죠.”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크메르 제국이 전성기를 맞이하던 14세기부터 극심한 기후 변화가 발생했다.
수십 년간 계속된 가뭄이 강과 호수를 말려버렸다.
비가 오지 않으면서 수로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이어진 홍수가 기반 시설을 파괴하면서 도시의 균형이 무너졌다.
리처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의 호수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14세기 후반에 엄청난 기후 변화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죠. 오랜 가뭄이 오고, 이후 홍수가 반복되면서 기반이 무너졌습니다.”
팀원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한때 번영했던 대도시가 물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일까?
“하지만 단순히 자연재해 때문만은 아닙니다.”
리처드 박사는 손전등을 다시 켜고, 사원 벽면에 새겨진 부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전쟁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싸우는 병사들, 칼과 창을 들고 격렬히 싸우는 군인들.
“앙코르의 마지막 시기에, 이곳은 외부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적이 바로 아유타야 왕국이었죠.”
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유타야요? 태국이요?”
“맞아요. 당시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크메르 제국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1431년, 결국 앙코르의 수도는 아유타야군에게 점령당합니다.”
그 순간, 한 팀원이 흥미로운 사실을 덧붙였다.
“근데 이상하네요. 보통 이렇게 큰 도시는 함락되더라도 일부 사람들은 남아서 재건하려고 하지 않나요?”
리처드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하지만 당시 크메르인들은 전쟁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어요. 왕위 계승 문제, 귀족 간의 다툼, 종교적 변화까지…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버렸어요.”
결국, 내부의 균열과 외부의 공격이 맞물리며 앙코르 왕국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지금도 남아 있잖아요?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는데, 왜 사람들이 떠난 걸까요?”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원의 중심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사원이 원래 어떤 종교를 위한 곳인지 아십니까?”
팀원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누군가가 답했다.
“힌두교…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14세기 후반부터 불교가 크메르 왕국의 주요 종교가 됩니다.”
그는 사원의 벽면을 손으로 쓸었다. 그곳에는 원래 힌두 신들이 새겨져 있었으나, 불교적인 요소들이 덧붙여진 흔적이 보였다.
“이 종교적 변화는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권력의 중심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점차 수도의 기능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고, 남아 있던 사람들도 결국 떠나면서 앙코르와트는 정글 속에서 잊혀갔다.
“그래서, 이렇게 거대한 유적이 몇백 년 동안 숲에 파묻혀 있었던 거군요.”
한 팀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리처드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곳은 오랫동안 불교 순례자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남아 있었죠.”
그러다 1860년,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Henri Mouhot)에 의해 서구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일기에 남긴 글은 이렇게 끝난다.
“앙코르와트는 마치 신들이 만든 도시 같다.”
앙코르와트의 몰락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이 도시는 환경 변화, 전쟁, 내부 분열, 그리고 문화적 변화가 겹치면서 무너졌다.
그리고 이 질문이 남는다.
어쩌면, 그 대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속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