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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히로시마 원폭과 평화 기념 건축

사라진 도시, 무너진 건축: 건축을 둘러싼 미스터리

by 이동혁 건축가
3부. 혁명과 전쟁, 건축이 무너진 날 (31~50화)

글, 그림 : 이동혁 건축가


제32화: 히로시마 원폭과 평화 기념 건축 – 폐허 위의 불꽃

1. 그날의 태양은 검었다


히로시마.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4분.

사에코 이토, 열네 살.
머리를 단정히 땋고, 하얀 교복 셔츠를 곱게 여민 채, 도시락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였으며,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들의 웃음이 들려왔다.

“오늘은 체육 시간이 있지?”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사에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줄넘기 시합. 꼭 이길 거야!”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단 1분 뒤, 그녀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8시 15분.
하늘이 갈라졌고, 태양이 하나 더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이 아닌 죽음의 태양이었다.

이후의 기억은 흐릿했다.
먼저 들려온 건 굉음도, 열기도 아니었다.
정적. 모든 소리가 꺼지고, 공기조차 멈춘 듯한 정적.

그리고—

쾅!

하얀 섬광. 뼈마저 녹일 듯한 열기.
사에코는 바닥에 내던져졌고, 귀가 찢어질 듯 울리던 순간, 세상은 잿빛으로 덮였다.


2. 폐허의 중심에서


그녀는 깨어났다.
재와 피, 울음과 비명이 가득한 도시의 한가운데서.

“어… 어머니…?”
부서진 거리,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의 형체가 보였다.
그들은 말없이 쓰러져 있었다. 일부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사에코는 발을 질질 끌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뭐지…?”

검게 타버린 도시 한복판.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중심에, 유일하게 남은 하나의 형체.

히로시마현 산업진흥회관.
돔 형태의 지붕은 휘었지만, 그 뼈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은 건물.
그곳은 죽음의 태양 한가운데서 살아남은 유일한 증인이었다.


3. 돌아오지 못한 이들과 함께


수십 년이 흐른 뒤, 사에코는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그녀의 옆에는 손을 꼭 잡은 손녀 유이가 있었다.

“할머니, 이게 그 원폭 돔이에요?”

“그래… 그날 이후, 처음으로 본 건 이 돔이었단다.
그때는 왜 이것만 남아 있었는지 몰랐어. 무섭고, 괴물처럼 느껴졌지.”

유이는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평화를 상징하는 곳이잖아요?”

사에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건… 우리 모두의 기억이야.
무너진 건물들, 사라진 친구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 다 여기 있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난 살아남았어. 그래서… 기억해야 해. 대신 말해줘야 해.”


4. 건축이 말하는 언어


그 해, 시민들은 반대와 지지를 오가며 토론했다.
“원폭 돔은 철거해야 한다.”
“아니다, 남겨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도시가 복구되는 와중에도, 이 반쯤 무너진 건물 하나는 정치, 역사, 감정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결국—

1996년, 유네스코는 이 건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되었고, 해마다 수많은 발걸음이 이곳을 찾는다.
작은 손에 종이학을 든 아이, 백발이 성성한 참전 용사,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젊은 커플.
모두가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온다.


5.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공원 한가운데, 하나의 불꽃이 타오른다.
히로시마 평화의 불꽃.

그 아래,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이 불꽃은 핵무기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결코 꺼지지 않는다.”


사에코는 유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언젠가, 이 불꽃이 꺼질 수 있을까?”

유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럴 수 있어요.”

그녀는 다시 원폭 돔을 바라보았다.
붉은 하늘 아래, 검게 타버린 뼈대는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것은 이제 폐허가 아닌 증언,
침묵이 아닌 희망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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