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국제법과 우주 영토: 건축가는 어떤 법 위에

달에 건축으로 생존하기 프로젝트

by 이동혁 건축가
1부. 죽음과 맞닿은 땅 위에 설계된 생존의 조건 - 달 환경 해부와 건축의 출발점


제10화. 국제법과 우주 영토: 건축가는 어떤 법 위에 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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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벽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땅이 누구의 것인지,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다.”
— 정우, 일지 1148-A


“정우, 오늘자 통신 보고서 왔어.
아르테미스 협정국들 간 기지 영토 중첩 문제 다시 회의에 올라왔대.”

윤서의 말에 정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막 레골리스 기반 주거 모듈의 기초판을 매설하고 있었고, 그 지점이 ‘국제 공유 구역인지, 특정 국의 관할 구역인지’는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린 지금 누구 땅 위에 짓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기지의 생존권, 자원권, 통제권에 직접 연결되는 문제였다.


우주는 누구의 땅도 아니다? – 『1967년 우주조약』의 한계


정우는 기지 내부 회의실 스크린에 조약 원문 일부를 띄웠다.

『Outer Space Treaty (1967)』

제2조: “우주는 어떤 국가도 영토로 주장할 수 없다.”

제9조: “모든 활동은 평화적 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제11조: “우주 자원의 사용은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정우는 중얼거렸다.
“그 말은 즉, 누구 것도 아니고, 모두의 것이라는 얘기지.”

“하지만 그건 반대로, 책임지는 자도, 규정하는 자도 없다는 말이기도 해.”


새로운 흐름: 『아르테미스 협정』과 “자원 구획” 논쟁


2020년부터 발효된 『Artemis Accords』는 미국 주도의 우주 개발 협력 틀로, 달의 안전지대(Safety Zone) 개념을 도입했다.

윤서는 관련 조항을 설명했다.

“안전지대란, 특정 국가가 자국 탐사 활동을 위해 설정한
물리적 보호구역이야.
이름은 ‘소유’가 아니지만, 사실상 영향력 행사 수단이지.”


문제는, 정우의 기지가 바로 이 안전지대와 중첩된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가 올려다본 지형은, 이탈리아 탐사대가 설정한 Zone-B-14 바로 경계선에 위치해 있었다.

“우린 경계를 모르고 지은 게 아니야.
하지만 이곳은 지형상, 가장 안정적인 태양광 확보 지점이었어.”


건축가의 윤리: 누구의 허락을 받고 짓는가?


정우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기지는 누구의 명령도 없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구조물 하나로 인해 외교적 충돌, 협약 위반, 심지어 국가 간 자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윤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우, 우린 건축가야. 외교관도, 정치가도 아니야.”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윤서.
여기선 우리가 모두 다야.
건축가는 여기서 ‘영토’와 ‘권리’의 경계선을 그리는 자’야.
이 땅에 선을 긋는 건, 그저 드론도, 조약도 아닌 ‘우리’니까.”


설계의 전환: “가시적 경계” 없는 공간 계획


정우는 달 표면을 지도처럼 내려다보며, 건축 도면 위에 조심스럽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은 선은 어떠한 색도, 숫자도, 이름도 갖지 않았다.

그는 ‘경계’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 선은 국가의 것이 아니다.
탐사의 우선권도 아니다.
이건 단지 ‘움직임의 밀도’가 다른 구역을 구분하는 설계선이다.”


새로운 공간 분류 전략: 경계 없는 도시를 위한 3구역 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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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기지를 중심으로 3단계 공간 구획 개념을 제안했다.

중심모듈(Core Habitat Zone) 실질적 거주구, 실험실, 제어센터 완전 밀폐 구조 + 고보안 출입 통제 모듈 간 ‘건축적 연결’은 있으나, ‘법적 소유권’은 선언하지 않음

완충모듈(Transition Belt Zone) 각국 기지 간 연결 회랑, 기술 교환 허브 공용 발전소, 기압식 튜브 통로 포함 설계적으로는 ‘열려 있으나’, 운영은 API 기반 협약 필요

공유모듈(Shared Function Zone) 레골리스 재활용소, 중립 에어록, 공동 수처리 설비 완전 개방형 설계 + 비상시 피난소 역할 모든 설계 기준은 ‘서로 접근 가능함’과 ‘운영 분쟁 없음’에 집중


경계가 없는 설계 언어: “건축으로 외교를 하다”


정우는 모듈의 바닥 색상조차 통일하지 않았다.
벽면 마감재는 어느 국가의 전통이나 기술에 기울지 않은 중립 색상군으로 맞췄고, 기압 통로는 양방향 접속이 가능하도록 대칭 설계했다.

“윤서, 회랑부 벽면은 사각이 아니라 원형으로 해줘. 곡선 구조는 ‘경계 없음’을 시각적으로 강조해.”


“계단 대신 램프식 연결, 시야를 막지 않는 반투명 차폐판, 국기 대신 모듈 번호로 표기. 이건 건축으로 정치적 상징을 지우는 작업이야.”


확장된 기능: 디지털 경계와 소프트웨어 프로토콜


정우는 구조물 설계에 하드웨어적 경계 제거와 더불어, 소프트웨어 경계를 도입했다.

위치 기반 출입 프로토콜 (Geo-fence 인증)

모듈별 데이터 공유 API (Ownership-neutral)

AI 중립 통제 시스템 (NOVA-CORTEX) → 제3기관 감시 설정


이로써 그는 말 그대로 물리적 경계가 없고, 디지털 신뢰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만든 공간에는 깃발이 없다. 대신, 사람들이 함께 숨 쉬는 공기와 함께 나누는 전력, 물, 정보를 기준으로 설계된다.”


“이곳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법과 질서 위에 건축이 서 있기 때문이다.”


정우는 이 모든 설계를 문서화했고, 기지의 한쪽 벽에 그 원본 도면을 전시했다. 그 아래에는 조용히 적혀 있었다.

"이 구조물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단, 서로를 인정하는 이들 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