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플라스틱 소재 카메라 가방을 찾는다면
카메라를 샀다. 똑딱이, 핸드폰 아닌 진짜 카메라.
20세기 말 이야기. 아빠의 80년대 니콘 수동 카메라를 쓰면서 사진 찍기를 배우고 ‘나의 카메라'를 고대하다 처음 내 돈으로,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부모님의 약간의 조력을 얹어 EOS-1N을 샀다. 그리고 곧... 필카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1년도 채 못 쓴 내 첫 카메라는 창고에 틀어 박혔고, 나는 어느새 디카 쓰는 재미에 홀딱 빠져있었다. 십여 차례 풀고 싸는 이삿짐 한 구석을 차지하며 발견할 때마다 무게만큼의 마음의 부담을 줬던 카메라와 정을 떼는 데 근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나 보다.
현재 이야기. 지인이 아기 사진 찍다 이제 쓰지 않는 EOS 30D를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랑살랑 사진 클래스에 다니게 되었다. 장비 발보다 실력 발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초심자의 주제를 아는 겸손함으로 이게 나에게 딱이네, 하며 만족해하다 무슨 마음의 바람이 불었는지, 신형 카메라의 기능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아… 사진 찍기 새삼 어렵다를 느끼며 “새 카메라가 필요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캐논 EOS R과 소니 a7III 중 고민하다 소니 a7III 선택. 사진을 주로 찍는다면 캐논이지, 라는 지인들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여타 여타 한 이유로... 이 두 기종을 비교한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찾아보시라.
카메라를 샀으니, 카메라 가방을 사야지.
내 몸의 사이즈를 고려하여 그리고 현재 스트릿 포토그래퍼 설정각이니까, 휴대성이 첫 번째 기준이다. 당분간은 번들 렌즈만 쓸 거니까 렌즈 끼운 미러리스가 콤팩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면 족하다. 작정하고 나가기보다 오다가다 마음이 끌리고 햇빛이 적정할 때 찍는 게 습관이니까, 평소 들고 다니는 백팩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기기 보호는 기본이겠지?
이런 기준들에, 물건이란 자고로 심플해야 사용이 편리하다는 나의 개똥 취향을 더하니, 고를 수 있는 건, 주머니형, 보자기형, 케이스형으로 간추려진다. 그러고 보니 가방이 아니다. 소재는 면, 천연 또는 인조가죽,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그리고 네오프렌이 있다. 면은 방수가 안되고 가죽은 무거울 테니 일단 패스. 남은 건 합성섬유류. 물건을 사는 것이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추가하면? 고를 수 있는 게… 게다가 국내에서 살 수 있는 게…
거의... 픽디자인 뿐.
픽디자인은 일상적으로 또는 여행할 때 쓸 수 있는 기능성 가방과 카메라 액세서리를 만드는 브랜드다. 카메라를 포함하여 테크 제품을 어떻게 잘 혹은 다른 방식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할 것인지가 픽디자인의 주된 관심사로 보인다. 픽디자인을 생겨나게 한 첫 제품, 캡처(Capture)는 픽디자인이 하고 있는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짐을 짊어지고 어떻게 카메라와 이동할 것인가. 어떻게 이동 중에 언제라도 카메라를 손에 쥘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러한 사고의 과정이 재미있는 제품, 색다르게 편리한, 조금 다른 디테일의 물건을 만들게 하는 것 같다.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픽디자인의 또 다른 특징이다. 아웃도어 브랜드 중 유독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가 눈에 띈다. 브랜드 창업자 스스로가 자연을 탐험하고 오지를 돌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는데, 자연과 가까이하면 자연에 대한 존중감이 절로 생겨나나 보다. 픽디자인은 주요 가방 패브릭에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와 나일론 혼합 소재를 사용한다. 현재까지 총 3백만 개 플라스틱 물병을 재활용했다고. 올해까지 부품으로 사용하는 알루미늄의 50%를 재활용 소재로 사용하고 배송 포장은 전부 재활용 소재를 쓰겠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에서 배송까지 전 과정에 탄소상쇄(Carbon Offset)를 도입했다.
추가로 사회적 실천까지. 근로자 대우, 급여, 노동 환경에 대한 표준 코드를 만들고 외부 감사 제도를 두는 등 근로자 복지에 기여하고 있고,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성과 및 투명성과 책임의식을 검증하는 비콥인증(B Corporation Certification)을 받았다. 연매출 1%를 풀뿌리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1% for the Planet 멤버이기도 하단다. 기후 문제와 사회적 정의를 이슈로 하는 웹진을 운영 중이니 슬쩍 들어가 보시길.
픽디자인에 대한 감탄은 여기까지. 제품을 봐야 하지 않겠나. 내가 픽디자인에서 골라봤던 제품은 아래와 같다.
6L, 32 x 16 x 17cm, ₩72,000
트래블 백팩에 넣어 다닐 수 있는 카메라 큐브. 모서리에 손잡이가 있고, 별도로 스트랩을 달면 가방처럼 메고 다닐 수 있다. 세 가지 사이즈가 있고, 내가 본 놈은 6L 들이 제일 작은 놈. 중간 놈은 S 사이즈 2개, 큰 놈은 S 사이즈 3개로 모듈화 되어 있어 캐리어에 적재하기 좋을 듯. 내부 디바이더로 공간 구성할 수 있고 방수됨. 외부 재질은 재활용 나일론 캔버스 천.
₩64,000
주머니처럼 싸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 커버. 세 가지 사이즈가 있고 각자 카메라 크기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내 미러리스 카메라는 S 사이즈. 렌즈 부분, 카메라 하단 두 부분에 조임 장치가 있어 커버를 씌운 채 카메라 사용이 가능하다는 게 매력 포인트. 카메라 스트랩 고리를 외부로 뺄 수 있어 커버를 씌운 상태로 메고 다닐 수 있다. 재질은 네오프렌. 앗! 이 방수복 소재는 재활용 소재가 아니다.
3L, 30 x 12 x 19cm, ₩129,000
카메라 수납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쓸 수 있는 슬링백. 이 또한 세 가지 사이즈 있고 난 역시 S 사이즈 선택. 렌즈 포함 미러리스 카메라와 프라임 렌즈 한 개 넣을 수 있다. 블랙, 그레이 두 가지 색상, M 사이즈는 네이비 있음. 외부에 부착하여 우산이나 삼각대 달 수 있는 스트랩과 내부 디바이더 포함되어 있다. 100% 재활용 소재 사용.
뭘 샀냐고? 결국 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2주에 걸쳐 주말 동안 광복절 연휴를 바쳐 카메라 언박싱을 위한 집 청소를 했다. 새 카메라에 먼지가 앉으면 안 되잖아. 이럴 것까진 아니었지만 사무실 정리하며 가져온 박스를 치우자니 책장 공간 확보가 필요했고 그런 김에 마구 섞여있는 책들을 재배열하며... 등등. 주중에는 짬짬 카메라 가방을 찾았다. 그러다 앗차! 정품 등록! 아, 그런데 사은품을 준다고?
8월 12일부터 9월 말 까지 소니 풀프레임 제품을 구입하면 사은품을 준단다. 네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는데 그중 픽디자인 슬링백이. 이사하는 김작에게 캠핑 벤치를 줘야 하나, LED 조명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주저 없이? 슬링백 버튼을 꾹 눌렀다. 슬링백은 골라봤던 세 가지 모델 중 하위 선호였지만, 100% 재활용 소재 사용이라니 환경에는 최상위. 핫, 이런 뭐 우연이. 그냥 생겨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