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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Feb 01. 2021

다 쓴 칫솔을 모아서 버렸다

오랄비(Oral-B) 블루 우체통 캠페인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생필품 중 하나가 칫솔이다. 어릴 때 배운 대로 하루에 세 번 이를 닦다가 칫솔모가 많이 벌어졌다 싶으면 새 칫솔로 바꾼다. 칫솔은 오래 쓰면 양치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잇몸이 손상되거나 세균이 번식할 수도 있어서, 최소 2~3개월에 한 번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다 쓴 칫솔을 버릴 때, 재활용품으로 오해하고 분리 배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 역시 비교적 최근까지 칫솔을 재활용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환경부에서 제작한 ‘재활용품인 척하는 쓰레기’라는 제목의 안내 포스터를 보면 칫솔은 다른 재질과 혼합되어 있어 재활용이 어려우니 종량제 봉투에 버려달라고 적혀 있다. 약 70% 이상이 플라스틱이긴 하지만 나일론 소재의 칫솔모, 고무로 된 손잡이 등 다양한 재질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일반폐기물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는 일반 쓰레기로 버리긴 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 환경부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고자 칫솔모로 세면대 구석구석을 몇 번 청소한 다음에 쓰레기통에 넣곤 했다. ‘칫솔모과 손잡이 부분이 잘 분리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면 제작 단가가 높아지겠지?’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대안으로 친환경 대나무 칫솔을 찾아보기도 했다. 3개월에 한 번 교체한다고 치면 1인 기준 1년에 최소 4개의 칫솔을 버리게 된다. 이외에도 치과나 숙박업소 등에서 수많은 일회용 칫솔이 사용되고 있으니, 엄청나게 많은 칫솔이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던 중 다 쓴 칫솔만 따로 모아 재활용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한국 P&G의 구강 전문 브랜드 오랄-비(Oral-B)에서 진행하는 ‘블루 우체통 캠페인'. 다 쓴 칫솔을 학교, 치과, 관공서 등에 설치된 파란색 우체통에 넣어 주면 이를 한데 모아 재활용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수거하는 칫솔은 오랄-비 칫솔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 terracycle


P&G는 183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설립된 생활용품 전문 기업이다. 다우니(Downy), 팬틴(Pantene), 헤드 앤 숄더(Head & Shoulders),  페브리즈(Febreze) 등 귀에 익은 브랜드들이 바로 P&G 제품이다. 흥미로운 건 면도기로 유명한 질레트(Gillette)와 브라운(Braun) 모두 P&G 제품이라는 사실. 브랜드 이름만 봐도 마트에 쭉 진열된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통과 포장재들이 떠오른다. 생활용품과 함께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P&G는 이에 책임을 느끼고 2018년 환경 지속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목표인 'Ambition 2030'을 발표하고 P&G가 사용하는 제품 포장재를 100%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오랄-비는 2017년부터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전문 기업인 테라사이클과 함께 ‘칫솔 재활용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는 학교와 치과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진행해 수거한 폐칫솔로 재활용 플라스틱 화분과 교정 장치와 틀니 등을 넣을 수 있는 리테이너 케이스를 만들었다. 2018년에는 가장 많은 칫솔을 모은 학교에 3D프린터를 상품으로 증정했고, 그 외 참여 학교에는 재활용 화분을 나눠 주었다. 이후 블루 우체통 캠페인 폐칫솔을 수거하는 장소를 기존의 학교와 치과에서 일반 기업으로까지 넓혔다. 


@ P&G Korea


2019년에는 6개월간 블루 우체통을 시범 운영해서 400kg의 폐칫솔을 수거해 재활용 줄넘기 2,000개를 제작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칫솔모와 고무 부위는 제외하고 플라스틱 부분만 줄넘기 손잡이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관련기사) 나머지 부분은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겠지만 플라스틱만이라도 모아서 재활용하는 게 어딘가 싶다. 캠페인 시범 운영에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과 용답초등학교, 서울 지역 어린이집‧초등학교‧중학교 53곳,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 공유오피스 위워크(WeWork) 14개 지점과 치과 37곳 등 100곳 이상이 동참했다고 한다. 폐칫솔로 만든 줄넘기는 행사에 참여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는 훈훈한 뒷얘기가 전해진다. 


@ terracycle


강동구는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블루 우체통 캠페인에 참여했다.(관련보도자료) 2020년 10월 28일 오랄-비, 테라사이클, 환경단체 ‘쿨시티강동네트워크’와 업무협약을 맺고 강동구청에 블루 우체통을 설치한 것이다. 필자는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다 쓴 칫솔을 모아서 강동구청에 방문했다. 강동구청은 지하철 8호선 강동구청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였다. 블루 우체통이 제1청사, 제2청사에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를 사전에 접하고는 먼저 1청사로 가보았다.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숨어 있어서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1층 출입구 왼쪽에 어린이집이 있고 더 안쪽으로 화장실이 있는데 바로 이 화장실 입구에 놓여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우체통 크기가 아담하긴 했지만 눈에 잘 띄었다. 칫솔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굳이 통이 클 필요도 없어 보였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체통이 플라스틱이 아닌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캠페인이라도 캠페인을 한답시고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하나 더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10개의 칫솔을 통에 쏙 집어넣는 것으로 캠페인 참여는 끝. 



더 이상 버릴 칫솔은 없지만 다른 블루 우체통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바로 옆의 2청사로 건너갔다. 1층으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니 오른쪽 교통행정과 입구 왼쪽에 놓인 우체통이 바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옆, 남자 화장실 입구라 우체통을 찾지 못해 참여를 못하는 불상사는 없겠다 싶었다. 문득 SNS에서 블루 우체통 참여를 인증하는 이벤트를 하거나,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 중 일부에게 화분이나 줄넘기를 보내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화분이나 줄넘기를 못 받아도 상관없긴 하다. 그냥 버리기 애매했던 칫솔을 한 군데 모아서 재활용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강동구청 외에도 보다 많은 공공 기관이나 기업이 참여해 블루 우체통이 더 많이 설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테라사이클에 신청하면 직접 블루 우체통을 설치해 주고 버려진 칫솔을 수거해 간다고 한다. 캠페인의 취지는 좋은데 블루 우체통이 설치된 장소가 아직 많지 않다 보니 참여하기가 쉽지는 않다. 오랄-비나 테라사이클에서 우체통이 있는 치과나 공공 기관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SNS에 공개해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철 역사마다 블루 우체통이 설치되면 참여율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출처 

P&G Korea : 환경 지속가능성

P&G Korea 페이스북

오랄-비 좋은 칫솔 고르기

테라사이클 블루우체통 캠페인

한국일보. 2019.09.30. 버려진 칫솔이 줄넘기로 변신

매일경제. 2019.12.03. "버려진 칫솔, 초등생 줄넘기로 재탄생" 

강동구 보도자료. 2020.10.29. 버려지는 칫솔이 줄넘기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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