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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Feb 08. 2021

우산을 대하는 태도

큐클리프(CUECLYP) 페트병 리사이클 우산

하나,

나는 물건 충동구매를 잘하지 않는다. 쇼핑을 가서도 사기로 한 물건에게만 돌진하고,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면 몇 번씩 가서 또 보고, 또 보고 한다. 그러다 그 물건이 꿈에 나올 정도가 되어야 구매 결정. 그런데 갖고 싶은 건 꼭 갖는다. 그중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장화와 우의.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데 그 날을 더 좋아하고 싶어서 구입한 것들이고, 아주 아주 잘 쓰고 있다. 비 오는 날은 꼭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그리고 우산도 그냥 아무거나 쓰는 게 아니라 비 오는 날 기분이 좋을만한 우산을 구입했었다.



그중 제일 기억나는 우산은 14년 전에 들고 다녔던 초록색에 땡땡이 무늬가 있는 3단 자동우산. 그 우산 덕분에 비 오는 날이 더 좋았었는데, 일 년쯤 잘 썼던 그 우산을 왕십리역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다. 벤치에 앉아 지하철을 기다리며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지하철이 도착할 때 급하게 타는 바람에 우산을 두고 탔다.


우산을 찾기 위해 왕십리역에 전화하고, 몇 번 확인한 후에 그 우산을 떠나보냈다. 너무 아쉬웠지만,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담담하게 보내줄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붙잡았고, 그래서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경험.  


둘,

고장 나고 낡은 물건을 고쳐 쓰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양말에 구멍이 나면 기워 신고, 찢어진 물건은 마스킹 테이프로 붙여 쓴다. 사용감과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물건이 좋다. 낡고 고장 난 우산을 고덕동에 있는 우산무료수리센터에 맡긴 적이 있다. 아주 아주 만족스럽게 고쳐주셨다. 물건을 고쳐 쓰면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생긴다.



그런데 요즘은 우산에 대한 애착이 좀 없어졌었다. 비 오는 날 무겁고 번거로워서 비가 올랑 말랑 하면 우산을 안 들고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비가 오면 그냥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샀다. 한 번 사기에 아주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고, 어디에 두고 와도 꼭 필요한 누군가가 또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이 찌뿌둥 해지는 요즘. 좋아하는 우산이 있었을 때 비가 오면 설렜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좋아하는 우산을 하나 마련하려고 한다.  


그러던 차 얼마 전에 우산을 하나 선물 받았다. 큐클리프(CUECLYP) 우산인데, 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단으로 제작한 우산이라고 한다. 색은 TANGERINE TANGO. 좀 튀는 감이 있지만, 비 오는 날은 아무래도 안전을 위해 밝은 색 우산이 좋다.


일단 우산 생김새가 예뻐서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우선,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밝은 색이고, 커버가 큼직한 것은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이동 시 우산을 빠르게 넣고 말아 백팩 등에 손쉽게 달 수 있습니다.’라는 설명에 바로 납득. 그동안 사용했던 우산 커버는 주로 우산에 꼭 맞게 만들어져 있어서 돌돌 잘 말지 않으면 쑤셔 넣기가 힘들었는데, 넉넉한 크기가 맘에 든다. 우산 말고 또 다른 걸 뭘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안에 적힌 설명도 맘에 드는 것 중 하나였다.

큐클리프 우산은 페트병 리사이클 원단으로 만든 친환경 제품입니다. 우산의 수명이 다했을 때 폐기하지 말고 큐클리프에 기증하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www.cueclyp.com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냥 버리지 마세요. 두 번째 쓸모로 돌아옵니다."

이런 설명이 따로 동봉된 설명서에 적혀있지 않고 이렇게 제품에 적혀있으니 잊지 않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조금 아쉬운 것은 손잡이였는데, 손잡이가 흔히 봤던 손잡이보다 작다.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하철 제일 끝자리에 앉아서 옆에 있는 바에 우산을 잘 걸어놓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작은 것 같다. 하지만 우려했던 손잡이 문제는 지하철을 탔을 때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우산을 우산 커버에 넣어서 백팩에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불편했던 점은 팔에 근육이 없는 편이라 무거운 걸 잘 못 드는데 우산 무게가 다소 나가서 오른손, 왼손 계속 번갈아가며 들어야 했던 것.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동의한다. 사람을 사귈 때 고심하고 설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추억을 쌓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 앞자리수가 바뀌다보니 물건을 사게 될 때 더 신중해질 것 같다.


그래서 셋,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물건인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지가 새로운 판단의 기준으로 추가되었다. 이제 새롭게 사귀게 될 우산에게 최선을 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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