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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Feb 10. 2021

베지터블 레더가 뭔데

식물성 가죽 혹은 비건가죽

초딩 시절 김작자는 싸이월드 파도타기 중에 인간이 모피를 위해 동물을 살해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혼돈의 2000년대 인터넷 세상에는 연령 제한 따윈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나는 모피 따윈 사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뭐, 초딩이 모피를 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 생각 없이도 그 다짐은 잘 지켜졌다. 그 와중에 모피에 가죽도 포함이란 걸 알게 됐고 가죽도 다짐에 포함시켰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러다 용돈을 모아 내 물건을 내가 골라 사는 나이가 되니까 이 가죽이란 게 값비싼 물건에만 쓰이는 게 아니더라. 뭐 죄다 가죽이다. 가방을 사려니까 손잡이가 가죽이란다. 카메라 스트랩을 사려니까 이음새가 가죽이란다. 지갑을 사려니까 브랜드 택이, 그 손톱만 한 택이 무려 가죽이란다.


난 물건을 살 때 내가 정해놓은 디테일에 부합하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라면 일주일간의 웹서핑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드디어 이상형을 만나면 제일 먼저 스크롤바부터 쭉 내린다. 

  

'소재 겉감:면 / 안감: 폴리에스터 / 주머니: Vagetable leather'


에라이 삐-------------- 

얼마나 열 받는지 가죽 안 쓰는 사람들은 공감할까...? 처음엔 Vagetable leather를 보고 식물성 가죽인 줄 알았다. Vagetable leather는 가죽 가공 중 무두질을 식물성 원료로 한 가죽이다. 그런 게 발명된 줄 알았지. 가끔 뉴스를 보면 ~으로 만든 신소재가 나왔다!라는 기사가 종종 있으니까.


그러다 진짜 가죽 대체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드디어~ 하고 신나서 찾아보면 어떤 대학 무슨 교수가, 무슨 대회 어떤 청년이 만들었다는데... 그게 있는데요, 없었습니다. 연구 성공을 축하하는 기사에는 실제 판매되고 있는지는 알아내기 힘든 경우가 허다했다. 찾는다 해도 전부 해외 직구를 해야 하고 가격도 엄청 비싸다.


그러나 한국에까지 비건 바람이 부니까, 진짜 나온다. 식물성 가죽으로 된 진짜 물건들이. 내가 죽어라 구글링 하던 과거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진정 세상 좋아졌다. 오늘은 네 가지 식물성 가죽과 함께 그것으로 진짜를 만드는 국내 브랜드를 소개하겠다. 


물건은 카드지갑으로 통일했다. 이유는 임피디와 나 모두 카드지갑이 헐어서....



1. DESSERTO 데세르토 선인장 가죽

@DESSERTO

멕시코 지역 토착종인 노팔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데세르토. 선인장으로 가죽을 만드는 이유는 대략 이러하다.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는 농장에 노팔 선인장을 심는다. 무려 8년에 한 번. 노팔 선인장은 다년생인 데다가 성장한 잎만 주기적으로 수확하기 때문. 극한 조건에서도 버틴다는 선인장답게 관개시설도 필요 없다. 농약도 필요 없을 만큼 튼튼한 놈인지 유기농으로 자란다. 동글동글한 모습이 귀여운만큼 가시도 쪼그마하다. 덕분에 수확하는 농부들도 안전하다고- 거둬들인 잎들은 가을 고추 말리듯 햇볕에 널어 건조한다. 정녕 태양열에너지가 따로 없다. 여기서 이제 과학이 들어가면 잎 3개로 1m의 데세르토 가죽이 나온다. 남은 선인장 부산물들은 모두 식품산업에 사용된다. 오늘 소개하는 어떤 소재보다 가죽과 유사하다. 그리고 데세르토의 선인장 가죽은 최대 50%까지 생분해된다.


창립자가 선인장이 최애임에 틀림없다. 공식 홈페이지에 선인장의 장점이 끝없이 나온다. 데세르토에게 선인장 영업을 당하고 싶다면 한번 들려보자. 


NOT OURS 낫아워스 리얼 칵투스 카드 홀더

겉감 : 데세르토 선인장 가죽 / 안감 : 면 100%

포장 : 면 더스트백 + FSC 인증 재생종이 띠지 + 종이 완충재 + 종이박스 + 크라프트 테이프

색상: 칵투스 그린, 블랙 / 89,000원 바로가기

@낫아워스 리얼 칵투스 카드홀더 _ 칵투스 그린


비건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 브랜드 이름 그대로 '우리의 것이 아닌' 동물의 것, 그리고 미래 세대의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곳이다. 진짜 보다 더 좋은 가짜 가죽이라는 'This is Real Fake Leather' 슬로건을 바탕으로 인조가죽 신발, 가방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저 어느 쇼핑몰에서 '비건입니다.' 하며 인조가죽을 내보이면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진심이 보인다.

 

@낫아워스

스크롤이 단숨에 짧아지는 상품설명 페이지 대신 빼곡히 데세르토의 선인장 가죽에 대한 설명을 채워 넣었다.

상품 소개글보다 길다. 게다가 패키지 하나하나 신경 쓴 티가 팍팍 난다. FSC 인증을 받은 띠지는 소이 잉크로 인쇄를 하고, 100% 면 더스트백에 종이 완충재에 싸서 보내준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한다. 선물을 위해 구입했는데 받아보니 워런티 카드까지 FSC 인증 종이다. 1% FOR THE PLANET 후원 브랜드였구나. 890원 지구에게 돌려줬다. 후기를 알려주고 싶으나 선물 받은 사람이 지금 잠수 중이다. 후에 발견하면 후기를 강탈해오겠다.




2. Pinatex  피냐 텍스 파인애플 가죽

이번엔 파인애플이다. 파인애플을 사면 그냥 댕강 잘라버리는,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는 파인애플 머리, 그 잎이 가죽이 되는 건가? 했는데...

파인애플은 이렇게 자란다. 저 밑동의 잎들은 원래 버려지거나 태워졌다. 그런데 그 양이 매년 1,300만 톤. 힉 소리가 날만큼 거대한 양의 파인애플 잎이 반대로 생각하면 이 피냐텍스의 무한 공급원이다. 


필리핀 농장에서 버려지는 파인애플 밑동을 모아다가 섬유질을 뽑아낸다. 요 섬유질은 건기에는 햇볕에, 우기에는 건조기로 말린다. 이것들을 잘 씻어 옥수수 기반 바이오 플라스틱인 PLA와 잘 섞은 후 염색, 코팅 작업을 위해 스페인 또는 이탈리아로 운송한다. 이 과정에서 한철 수확에 의존하는 필리핀 농업 공동체에게 또 다른 수입원을 선사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에서 Who Made Your Fibre라는 메시지를 담아 필리핀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투명하게 알 수 있다.


We Rose Up 위로 잡화점 피냐텍스 카드. 명함지갑

피냐 텍스 100%

포장 : 종이박스 + 종이포장 + 마끈

색상 : 내추럴, 인디고블루, 차콜 / 36,000원 바로가기

@위로잡화점 피냐텍스 카드&명함 지갑 _ 인디고블루

위로 잡화점은 식물성 소재로 소품을 만드는 곳. 주로 피냐텍스와 코르크를 사용한다. 

피냐텍스 재질은 카드지갑만 쇼핑몰에 올라와있지만 인스타그램을 통해 파우치나 책커버 등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따로 안감 없이 피냐텍스만으로 되어있으며 옆면 스티치가 포인트다. 질감은 마치 펠트와 종이의 중간. 코팅을 해서 그런지 부드럽고 물에 젖거나 헤지지는 않는다. 의외로 놀란 건 딱딱하다. 물론 쓰다 보면 조금씩 부드러워지니 안심해도 된다. 초기 디자인은 뒷면에 교통카드가 중복되지 않도록 차단되는 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기기에 따라 오류가 있어 빠졌단다. 대중교통을 매일 사용하고 교통카드가 많다면 비추천이다. 이에 해당하는 임피디가 사용 중인데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대신 카드는 많이 들어간다. 10장은 거뜬!


3.FSC COC 인증 펄프 원단


@메일팩

FSC COC인증. FSC 인증은 들어봤는데 COC는 또 뭐지 싶어 이참에 알아봤다. FSC는 불법 경작, 벌목을 방지하고 열대림을 보존하기 위해, 숲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고 있는 경영자에게 혹은 목재와 목제제품에게 인증 라벨을 부여하는 것. 여기에 COC가 더해지면 삼림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모든 과정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고 인증된 것이라고 한다. 

펄프라고 하면 종이와 휴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이게 고밀도 조직이라 엄청 튼튼하다. 물에도 안 젖는다. 뭐야, 너무 신기해. 대신 구겨진다. 그거야 가죽도 마찬가지니 패스.


mailpack 메일 팩 카드지갑 Area.1

겉감: FSC COC 인증 펄프 / 안감 : 나일론

포장 : 종이박스 + 종이봉투 + 집게

40,000원 바로가기

@메일팩 카드지갑 Area.1


사실 펄프 원단을 소개한 이유가 매일팩을 소개하는 이유와 같다. 매일 팩에서 이 펄프 원단을 이용해서 가방을 만들어 펄프 원단을 알게 됐으니까. 서울숲에 위치한 매일팩 오피스에서 택배포장 없이 구입 가능하다. 이 지갑 만들기 체험도 운영한다.(현재는 코 시국으로 인해 잠정적 중단되었다. 아쉬워라...) 

이 납작하고 꼭 편지봉투 같은 메일팩 지갑은 나 김작자가 잘 쓰고 있다. 지갑에 카드 하나, 신분증 하나 들고 다니는 사람인지라 단순하니 좋다. 지금 임피디 지갑에서 카드를 빼다가 넣어봤는데 7장까지 들어가긴 한다. 하지만 3장까지 추천한다. 핸드크림에 손을 절여서 다니지만 얼룩덜룩해지지 않았다. 조금 손때가 묻었을 뿐.



4. HAUNJI 하운지 한지 가죽

@papper


세계인이 한지를 발음하기 쉽도록 '하운지'가 된 한지 가죽. 하운지를 빨리 말하면 한지가 된다. 어울리는 이름이군.

우선 한지는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진다. 그 한지를 면과 레이온 같은 자연섬유와 접합해 만든 원단이 하운지다. 한지 가죽이라니 이것도 왠지 종이질감일 것 같지만 실제로 가죽과 조직구조가 유사하고 주름 질감을 넣어 만드는지라 그냥 딱 보면 '인조가죽인가 보다.' 하게 된다. 게다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주재료가 한지니까 당연한 소리 같겠지만, 네 것도 내 것이라 우기는 요즘에 '한지 우리 꺼!!!'라고 세상에 외칠 수 있겠다.

 

papper 페퍼 카드홀더

겉감 : 하운지 / 안감: 나일론

포장 : 종이박스 + 종이 완충재

색상 : 블랙, 샌드베이지, 라이트 그레이, 아이보리, 더스트 핑크 / 34,000원 바로가기

@페퍼 카드홀더_블랙

페퍼는 하운지 하나만 파는 브랜드다. 판매가 아니고 파고드는. 하운지에 대한 설명도 하운지를 개발한 곳보다 더 친절하게 나와있다. 닥나무는 벌목이 아닌 가지치기로 얻어지며, 하운지는 가죽에 비해 아주 가볍고 항균력까지 높다는 사실을 페퍼가 알린다. 

오늘 소개한 카드지갑 중 페퍼가 접근성이 제일 높다고 평가한다. 그건 가격이 결정했다. 처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격이 상쇄한다. 게다가 색상도 많다. 고민고민하다 '종이 질감이면 때 타는 거 아니야?' 하고 블랙을 선택했는데, 가죽과 다름없으니 여러분은 다양한 색상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지퍼 달린 카드 지갑에 일가견이 있는 김작자가 추천한다. 일단 쑤셔 넣기 좋다. 넣고 지퍼로 어떻게든 닫아버리면 안전하게 봉인된다. 받자마자 이것저것 넣어봤는데 버츠비 립밤이나 작은 핸드크림까지 가능하다. 2개를 사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니 비건, 혹은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는 동행자가 있다면 같이 시도해보기 좋다.


참고로 나 김작자는 비건도 동물 애호가도 아니다. (동물을 무서워한다.) 그저 모피와 가죽을 사지 않는 사람일 뿐. 그런데 플라스틱 프리를 곁들인....

여태 가죽을 피해 인조가죽으로 방향을 틀어 잘 살고 있었는데, 플라스틱까지 안 쓰려니까 인조가죽은 PU, 플라스틱이라 혼돈의 늪에 빠졌었다. 그런데 이걸 또 식물성 가죽 혹은 비건 가죽이 해결해줬다. 문제는 커다랗지만 하나하나 풀어나갈 만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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