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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Feb 15. 2021

탄소배출 9.4kg CO2e 이후 한 달 반

올버즈 Wool Runner Mizzles 울 러너 미즐


지난해 마지막 날,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생일인 10년 지기 동반자 정소장에게 간만에 생일 선물을 했다. 나이 앞 자릿수가 바뀌는 특별한 때였기 때문에 여느 때처럼 음력 생일, 양력 생일 탓하며 어물어물 넘어갈 수가 없었다.


선물로 내가 고른 것은 올버즈 스니커즈. “이거 디카프리오가 신는 신발이야.”라는 나의 말에 “오바마가 신는다는 그거?”라고 그는 대꾸했다. 관심사가 다르듯 같은 물건에 다른 인물을 연상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선택한 신발'이라는 별명답게 올버즈 운동화는 ‘나도 한 번쯤?’ 신어보고 싶은 브랜드가 된 건 사실이다.


처음 가보는 소문난 맛집에서 그 집의 기본 메뉴를 고르듯 나는 오늘의 올버즈를 있게 한 오리지널 아이템 양털 신발, Wool Runner 울 러너를 고르기로 한다. 그러다 결국 Wool Runner Mizzles 울 러너 미즐에 안착. 선물인데 이왕 기능성이 추가되고 좀 더 ‘비싼' 게 좋지 않나 싶어서. 색깔은 나의 취향 한껏 담아 밑창까지 올블랙으로.



이틀 만에 배송을 받아 들고 뒤늦게 부랴부랴 준비한 생일 이벤트 날을 딱 맞춰주었다는 것에 나름 감동하고, 상자 하나로 심플하게 포장한 것에 기분 좋아라 하는데, 상자를 열어본 정소장의 첫마디는 “까만 운동화는 별로야.” 내가 봐도 심하게 까맸다. “석탄 같네.” 가죽이나 천과 다르게 양털을 뭉쳐놓은 모양새에 빛 하나 반사하지 않고 그냥 새까맣...


올버즈 울 러너의 특징이자 타브랜드 신발과 두드러진 차이가 이 양털 갑피다. 가죽처럼 매끈하지 않고 방직된 천이나 니트 형태도 아니고 그러니까 흔히 보던 운동화 천이 아니고, 모직으로 된 코트나 모자, 그 질감이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해 보이는데 곱게 모셔두어야 할 느낌. 비 오는 날 흙바닥 밟고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 allbirds


재생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여 신발을 만드는 올버즈가 선택한 첫 번째 소재는 울이다. 전직 축구선수이자 올버즈 창업자 팀 브라운(Tim Brown)은 선수 시절 천연 소재 운동화에 대해 고민하다 자신의 고향인 뉴질랜드의 양을 보고 메리노 울로 만든 운동화를 고안하게 된다. 메리노 울은 초창기 아웃도어 의류에 사용되었지만 운동화에 사용된 건 올버즈가 첫 사례. 통기성, 흡습성이 뛰어나고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


울은 천연 소재이고, 울로 신발을 만들면 합성 소재로 신발을 만들 때보다 60%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확실히 '지속가능'하다. 그런데 양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올버즈는 동물 복지, 토양의 관리, 환경의 지속 가능성, 사회적 책임 등 윤리적인 양모 생산 기준을 충족한 ZQ메리노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양들에게 미안하다면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트리 Tree 라인을 선택해볼 수 있다.


@ allbirds


여하튼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올블랙 울 러너 미즐은 애용되고 있다. 검정 양말이나 검정 운동화는 바보 같은 놈들이나 신는 거라는 편견은 여전하지만 “블랙은 기본으로 하나 갖고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젊은것들의 추임새와 “신발 예쁘다"는 지인들의 반응에 반은 수긍한 듯.


울 러너 미즐에 대한 정소장의 평가는 “편하다". 무릎과 허리에 충격을 주지 않는 신발 고르기에 까다로운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신발은 밑창이 너무 무르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걸을 때 편안한 ‘딱’ 적당한 단단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밑창이 너무 무르면 발바닥이 안정적으로 바닥을 딛지 못하고 흔들흔들 중심을 잡느라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간다. 너무 딱딱하면 발이 편하지 않고 발을 내딛을 때 충격이 허리까지 이른다. 이러한 신발의 편안함은 밑창이 큰 역할을 한다. 운동화 밑창은 보통 석유계 EVA로 만드는데, 올버즈는 그 대체재로 사탕수수 EVA SweetFoam™을 만들었다.



사탕수수는 빠르게 자라고 성장 과정에서부터 제조 과정까지 배출하는 탄소 배출 총량보다 흡수하는 양이 많은 탄소 네거티브 재료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당으로 EVA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탕수수 부산물은 에너지원과 비료로 사용된다. 올버즈가 사탕수수로 EVA를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SweetFoam™ 오픈소스를 공개했다는 것. 많은 사람이 SweetFoam™을 사용하면 환경에도 좋고 제조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


올버즈 운동화의 편안함은 인솔, 그러니까 깔창도 한 몫한다. 인솔은 석유 제품보다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적은 캐스터빈 오일이 들어가고 울을 덮어 흡습성, 방취 기능을 살렸다고. 거기에 신발끈은 페트병 재활용 폴리에스터 사용. 꼼꼼하게 지속 가능성을 챙겼다.



인솔까지 울로 덮인 이 울 신발에 대한 나의 궁금함은 겨울에 발이 따뜻한가, 따뜻하다고 하면 통기는 잘 되나로 이어진다. 내가 받은 답은 “그런 것 같다?"는 애매모호한 답변. 수족냉증에 식은땀 잘 나는 나와 다른 고로, 발 시린 일이 땀 차는 일이 많지 않다고. 다만 발바닥이 닿는 깔창 바닥이 울로 되어 있어 신을 때 다른 신발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울 러너는 러닝화인가? 모양은 러닝화와 스니커즈 중간이다. 무게도 아**, 나** 러닝화보다 무겁고 다른 스니커즈보다 가볍다. 작년 말 올버즈는 러닝화 라인 Wool Dasher Mizzles 울 대셔 미즐을 새로 출시했다. 울 러너도 러닝화라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울 러너는 스니커즈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기능을 보완한 대셔 라인 러닝화를 출시하고 러너 라인은 스니커즈로 취급하기로 했나 보다.



비 오는 날 신어본 적이 없어 올 러너 미즐의 방수 기능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내가 직접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수돗물 촤악 틀어 놓고 신발 들이대 봤다. 대부분 물길이 튕겨나가고 물이 오래 세게 닿는 부분은 물이 묻는데 속까지 흡수되지 않고 닦아내니 금세 마른다.


올버즈 구입 고려한다면 사이즈가 10cm 단위로 나와있어 고르기 애매할 수 있는데 보통 신는 사이즈가 있다면 그 사이즈로 아니라면 좀 더 큰 사이즈를 고르는 게 옳다. 외피가 부드러운 편이라 너무 딱 맞게 신으면 발가락 모양이 신발 위로 도드라진다. 정소장은 보통 265~270 사이즈를 신는데 270 사이즈가 딱 맞는다. 올버즈에서는 신어본 신발도 30일 내에 교환 또는 반품을 해주니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불편하다면 교환을 하면 된다.   



올버즈 운동화 깔창을 제거하고 들여다보면 숫자가 보인다. 숫자는 이 제품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표시한다. 울 러너 미즐의 탄소배출량은 9.4kg CO2e. 올버즈 제품군은 평균 7.6kg CO2e를 배출하고, 이것은 자동차로 약 30km 주행한 경우, 세탁 건조기를 5회 돌린 경우, 11개 초콜릿바를 만든 경우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울 러너 미즐의 탄소배출량을 올버즈에서 제시한 기준으로 얼추 계산해보니 자동차로 약 37km 주행한 거리와 같다. 서울을 가로로 가로질러 이동한 거리. 국내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7년 기준 143.9g/km이므로 이 기준에 따르면 울 러너 미즐 탄소배출량은 자동차로 65km 이동한 거리, 서울을 가로지르고 다시 돌아오는 것에 조금 못 미치는 거리다.


@ allbirds


사실 이런 숫자놀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올버즈가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체감할 수 있게 실생활에서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탄소량과 비교해준다는 것. 물론 국가별 기준에 맞게 비교해줬으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 기업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인지하고 그것을 관리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가공식품을 고를 때 영양성분표를 보고, 화장품을 고를 때 성분 확인하듯, 구입하는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제품 라벨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내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탄소 배출을 늘리는 데 혹은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놓고 가격, 품질을 포함하여 탄소배출량을 같이 고려하여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면! 소비자가 환경을 위한 소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리라 생각하며, 올버즈 운동화 하나 샀으니 차로 이동하는 건 3일 정도 줄이면 되겠다. 나는 장롱면허니 정소장에게 일단 권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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