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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Mar 05. 2021

차마 버리지 못했던 정수기 필터가 갈 곳을 찾았다

브리타 어택 캠페인 참여기


오전에 사무실에 나오면 브리타 정수기에 수돗물을 채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브리타 정수기를 쓰기 시작한 건 2020년 말, 지인 몇몇과 사무실을 공유하다 1인 사무실로 옮기면서부터다. 이전 사무실에서는 2리터 생수를 배달시켜 마셨다. 생수가 다 떨어지기 전에 주문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웠고, 최대한 찌그려도 분리수거 통을 금방 가득차게 하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공용 사무실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냈다.



사무실을 혼자 쓰게 되면서 페트병에서 해방되고자 정수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취하는 친구가 적극 추천한 제품이 브리타(BRITA) 정수기였다. 제품을 검색해보니 크기가 꽤 다양했다. 고심 끝에 구입한 제품은 마렐라(Marella) 쿨 사이즈 화이트 색상. 2.4리터(정수용량은 1.4리터)라 혼자 쓰기에 무난해 보였고 무엇보다 싱크대 옆 자투리 공간에 딱 맞는 크기(26.5*27.5*11cm)였다. 예상대로 수돗물을 부어 놓고 사용하기 편했다. 온수는 전기 포트가 있고 개인적으로 찬 물을 좋아하지 않아 냉수는 필요 없었다.



마셔보니 물맛도 좋았다. 생수는 브랜드에 따라 미묘하게 맛과 향이 다른데 브리타로 정수한 물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전기를 연결할 필요가 없으니 전기세도 들지 않는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정수된 물이 없으면 잠시 기다려야 한다는 것.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 건 아니라 물을 부어 놓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주변 정리를 하면 된다. 페트병 쓰레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생수보다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떠나서라도 생수의 주문과 보관, 분리 배출의 귀찮음과 번거로움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크게 상승했다.


브리타(BRITA)는 1966년 독일의 하인즈 핸커머(Heinz Hankammer)가 창립한 회사로 전 세계 간이정수기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브리타 정수기는 페트병에 든 생수보다 친환경적이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 브리타 정수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막스트라+(MAXTRA+)필터는 이온교환수지와 활성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온교환수지는 납, 구리와 같은 중금속 등의 불순물을 흡착하여 감소시키고, 활성탄은 염소나 염소 화합물 같이 물맛과 향을 해치는 성분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이 유니버설 필터를 기본으로 한국 수질에 맞게 성분이 조정된 한국형 필터를 별도로 판매한다.



정수기 사용과 필터 교체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마렐라 제품의 경우 4주 단위로 필터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 인디케이터가 뚜껑에 있다. 사용량 기준이 아니라 단순히 1주에 1칸이 줄어드는 방식이다. 설명서를 찾아보니 정확한 기준은 ‘하루 5.35리터 사용 시 28일 교체’이다. 필터 1개당 평균 150리터를 정수할 수 있다는 설명에 필자는 약 3개월에 한 번 교체하고 있다.



브리카 정수기에 마음속으로 별점 5점을 매기고 있던 중, 별 하나를 지워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필터였다. 처음 필터를 교체한 후 카트리지를 요리조리 둘러봐도 어떻게 버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플라스틱이지만 안에 필터 성분이 있으니 재활용으로 버릴 수는 없었다. 눈 딱 감고 일반 쓰레기로 버리기에는 하얀색의 튼실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듯했다. 분해를 해볼까도 했으나 내용물을 빼낼 수 있는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답이 안 나와 싱크대 한 구석에 사용한 필터를 그냥 방치해 두었다.



버리기가 어려워 버리지 못한 필터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할 때 접한 ‘브리타 어택 캠페인’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브리타 필터 수거와 재활용 프로그램을 브리타코리아에 요구하기 위해 온라인 서명을 받고 폐 카트리지를 수거하고 있다니! 필자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브리타 사용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캠페인을 지지하고 참여하는 이들에게 동지의식이 느껴졌다. 게다가 독일, 영국, 아일랜드 등에서 이미 운영 중인 재활용 시스템이 한국에는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브리타는 1992년부터 세계 최초로 전용 수거박스를 통해 필터를 수거해 독일 타우누스타인(Taunusstein)에 마련한 자체 시스템을 통해 재활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케이스로는 수로나 케이블 파이프를 만들고, 활성탄은 폐수 처리 등에, 이온교환수지는 신규 필터 카트리지 혼합물에 쓰인다. 미국에서는 Beth Terry라는 한 명의 개인이 시작한 캠페인이 성공하면서 필터 수거 프로그램이 생겼다. 2008년 4월 브리타 어택의 모델이라 할 수 있는 ‘Take Back The Filter’ 캠페인이 시작되어 각지에서 611개의 필터가 모였다. 그 결과 브리타에서는 2018년 11월 18일 필터 재활용 프로그램 운영 계획을 발표하고 2009년 1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십년후연구소

필자는 브리타 어택 캠페인 참여 방법을 저장해 두었다가,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11월 21일 부랴부랴 그동안 모아둔 브리타 필터 4개를 ‘십년후연구소’에 택배로 보냈다. 택배비는 본인 부담이었지만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앞장서서 캠페인을 진행해준 이들이 있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브리타 어택 캠페인은 ‘빠띠 캠페인즈’ 플랫폼을 통해 전 과정이 공개되었다. 2020년 8월 7일부터 시작된 서명 운동에는 2021년 1월 6일까지 152일 동안 14,547명이 참여했다. 폐 필터는 제로 웨이스트 상점 등에 설치된 수거 박스와 택배를 통해 약 1,500개가 모였다고 한다. 


@ 십년후연구소

캠페인을 주도한 십년후연구소와 알맹상점을 포함한 27개의 단체와 상점으로 구성된 ‘브함사(브리타 필터 재활용 캠페인에 함께 하는 사람들)’는 2020년 12월 9일 브리타코리아에 자사 제품 사용 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폐 카트리지를 책임지고 회수하여 국내에서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 결과 브리타코리아는 필터 재활용 시스템을 준비 중이며 2021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는 답변을 보냈고 이 내용은 지난 1월 6일 공개되었다.

@ 브리타코리아

브리타의 입장문을 확인해 보니 한국에서는 미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재활용 프로그램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현재 테라사이클과 함께 수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브리타 웹사이트에서 ‘My Brita™’회원으로 가입한 후 무료 택배 서비스를 신청하면 송장(연 1회 제공)을 이메일로 보내 준다. 필터 카트리지를 포함한 브리타 제품 전체를 한 번에 최대 5파운드(약 2.27kg)까지 보낼 수 있다. 참여한 회원에게는 포인트와 함께 상품, 쿠폰 등 다양한 리워드를 제공한다. 


아쉽게도 브리타코리아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브리타 어택 캠페인과 관련한 공지를 아직 찾을 수 없었다. 브리타코리아에서 언제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할지 모르니 일단은 사용한 필터를 모아 두고 기다려 봐야겠다.



참고 자료

브리타 코리아 https://www.brita.kr

브리타 영국 재활용 프로그램 https://www.brita.co.uk/recycling

브리타 미국 재활용 프로그램 https://www.brita.com/recycling-filters

브리타 어택 캠페인 https://campaigns.kr/campaigns/257

브리타 프로젝트 아카이브 https://www.notion.so/e9d9a24492514597992b1b067639c86c

십년후연구소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tenyearsafter10

Beth Terry 블로그

https://myplasticfreelife.com/category/direct-action/brita-water-filter-campaign

경향신문. 2020.09.29. "한국에선 왜 재활용 안 해요?" 정수기를 '어택'하고 '해킹'하는 사람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1071548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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