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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Mar 15. 2021

수세미라는 이름의 수세미, 루파

천연 수세미 1편

나는 집에서 설거지할 때 천연수세미라 알려져 있는 루파(luffa)를 쓴다. 루파를 알게 되었을 때 ‘수세미’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는 데에 처음 놀랐고, 딱딱한 섬유 조직이 물에 닿으면 부드러워진다는 데에 두 번째 놀랐다. 


수세미는 오이, 쥬키니랑 비슷하게 생긴 덩굴 식물의 열매다. 수세미 열매를 삶아 겉껍질을 벗기면 그물 형태의 섬유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햇볕에 건조하면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루파 수세미가 된다. 설거지용으로 주로 사용하지만 청소용, 샤워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 나무위키

한살림에서 처음 루파를 알게 되었고 구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열매 형태 그대로 통째로 파는 것만 보았는데, 요즘에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것, 자른 것에 끈을 달아주는 것, 가공한 것 등 루파를 쉽게 쓸 수 있도록 변형한 제품이 많이 있다. 파는 곳도 많아지고. 


수세미를 납작하게 눌러 가공하여 샤워타월, 목욕장갑을 만들기도 하고 막대를 달아 병 세척솔을 만들기도 한다. 천연염색 제품도 있다! 


좌 : @ 오늘의 집 : 소소공간 / 우 : @ 디엠지팜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나는 가공하지 않은 열매를 통째로 사서 필요할 때마다 잘라 쓴다. 자연 형태 그대로 쓰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고 필요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잘라 쓰는 재미가 있다. 가격을 비교해보지 않았지만 이게 더 경제적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루파를 자르는 방법으로 물에 불려 가위로 자르는 것을 보통 추천하더라만, 나는 루파를 도마 위에 놓고 빵칼로 바케트 자르듯 쓱썩쓱썩 자른다. 그러면 빵 부스러기 떨어지듯 부슬부슬 수세미 쪼가리가 떨어지고 열매 안쪽에서 까만 씨가 톨톨 튀어나온다. 



이렇게 자른 루파 조각을 미지근한 물에 적시면 보들보들한 수세미가 된다. 처음에 질감이 다소 뻑뻑하다고 느껴지면 온도가 높은 물에 담그면 된다. 두세 차례 사용하고 나면 손에 착 달라붙는 적당한 쿠션감이 생긴다. 물에 젖어 보들보들해진 루파는 마르면 다시 딱딱해진다. 쓸 때마다 물에 적시고 조물조물, 그러면 다시 보드라워진다. 


자를 때 크기는 15cm 정도가 적당하다. 물에 적셔 압착했을 때 손에 딱 잡기 좋은 크기. 쓸수록 부드러워지고 나중에는 흐물흐물해지고 급기야 크기가 쪼그라들기 때문에 처음에 넉넉한 크기로 자르는 게 좋다. 이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겸손해지는 루파는 한 달 반 정도 열심히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제 보내줘야 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루파를 자르는 방법은 두 가지. 가로로 자르거나 세로로 자르거나. 가로로 자르면 가운데 심이 있고 세 개의 구멍이 있는 단면이 드러나 보인다. 밀도 있는 덩어리 형태의 수세미로 쓸 수 있다. 세로로 자르면 한 면은 루파의 겉면 나머지 한 면은 루파 심이 있는 안쪽면, 양면의 질감이 서로 다른 납작한 수세미로 쓸 수 있다.


세로로 자르면 얇고 흐물거린다 느껴져 주로 가로로 자르는 편이지만, 세로로 잘랐을 때 안쪽 딱딱하고 거친 심부분이 그릇을 벅벅 긁어주는 나름의 손맛이 있다. 



루파는 섬유질 그물이 성기기 때문에 신축성이 좋고 거품이 잘 난다. 물에 적신 루파로 설거지 비누를 두세 번 긁어주고 조물조물하면 도톰한 거품이 생긴다. 약간의 흠이 있다면 너무 부드럽게 닦인다는 것. 도기나 나무 식기를 스크래치 없이 닦기에는 좋은데 눌어붙은 음식물 잔재를 긁어낼 때는 속이 좀 터진다. 그릇을 물에 잘 불려 닦을 것.



음… 그리고 나는 평소 잘 느끼지 못하지만, 루파의 성긴 그물에 음식물 부스러기가 끼는 걸 단점으로 든다면, 사용 후 수세미를 물에 담가 두면 음식물 찌꺼기가 빠진다는 걸 알려드린다. 그리고 웬만하면 밥풀 남기지 않고 빡빡 긁어먹고, 설거지할 때 먼저 물로 그릇을 헹궈낸 후 본격 설거지에 들어간다면 위와 같은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는 걸 또한 알려드린다. 


주의할 점은 사용 후 잘 건조할 것. 이건 플라스틱 수세미를 포함한 모든 수세미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수세미는 잘 말리지 않으면 세균이 번식하고 곧 냄새가 나서 오래 쓰기 힘들다. 천연수세미는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쓰고 난 수세미는 뭉쳐두지 말고 고리에 잘 걸어 건조합시다. 천연수세미가 자체 항균력이 있다고 하지만 극한 상황에 처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 


루파를 다양하게 응용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비누 받침은 추천하지 않는다. 루파 조각을 비누 받침으로 쓰라고 종종 사은품으로 주던데, 난 글쎄요... 다. 비누에 묻은 물기가 루파에 계속 닿아있기 때문에 비누에도 루파에게도 좋지 않다. 쓰다 보면 루파가 금방 납작해져서 물 빠짐의 기능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시도해본 것 중 괜찮은 건, 집게에 루파 덩어리를 달아 병 세척솔로 쓰는 것. 원래 일반 스펀지가 달려있던 병 세척솔인데 다 쓴 스펀지는 버리고 남겨둔 집게에 루파를 집어서 쓰고 있다. 가로로 자른 루파에 씨 구멍이 있어 집게에 끼우기도 편하다. 



루파는 설거지 비누와 함께 제로웨이스트 제품 중 단연 만족감 최고다.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사용하고 버리는 수세미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이 크다. 설거지 또는 청소할 때 닳아가는 플라스틱 수세미를 볼 때마다 ‘내가 미세 플라스틱을 하수로 흘려보내고 있구나.’하며 마음 쓰라린 경험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루파면 되지! 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영 루파와 친해지기 어렵다면 다음 편을 기다려주시라. 우리가 알고 있는 수세미와 비슷한 천연수세미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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