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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Mar 31. 2021

수풀 향의 빨대들

환경을 위한 일회용 빨대

오늘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들 때문에 유난히 힘들었다. 아마 몇몇 사람들의 심술궂은 말들과 도로 위 차들의 심술궂은 경적들, 머릿속에 퍼지는 심술궂은 생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정말 쉬고 싶다. 해야 할 모든 일들과 그 밖의 모든 일들을 뒤로 미뤄두고. "그래 쉬자."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잘 쉬는 것 또한 하나의 일이니까.


습관적으로 발이 움직여 평소 자주 가는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진한 원두 향이 풍겼고, 카페 사장님은 친절했다. 카페에 사람들이 많아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마침내 음료가 나왔고, 카페 사장님은 내가 플라스틱 빨대를 안 쓰는 걸 알고 있기에 직접 음료를 저어서 가져다주셨다.


주머니 속에는 플라스틱 빨대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빨대들의 샘플이 있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빨대가 아니라 '풀로 만든 빨대'는 처음 접하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그립감이 좋았고 편리했다. 빨대 샘플 구성이 알차게 되어있어서 몇 개를 골라 사용기를 적어 보고자 한다.


갈대 빨대

첫 번째로 갈대 빨대를 소개한다. 갈대는 줄기가 단단하고 억세서 빨대로 제작하기 좋은 풀이다. 그 억센 갈대의 속이 텅텅 비어있는 것 마저 빨대가 되기 좋은 모양새이다. 갈대의 높이는 3m 정도이며 한약방에서는 갈대를 햇볕에 말려 해열과 해독을 시켜주는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가까운 공원이나 한강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였던 갈대가 이렇게 많은 쓰임이 있었다니!


갈대 빨대를 처음 물었을 때 구멍이 넓어서 당황스러웠다. 별생각 없이 음료를 빨았고, 넓은 구멍 탓에 입에서 음료가 새어 나와 흘릴 뻔했다. 보통의 플라스틱 빨대와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갈대 빨대를 처음 써보는 사람이라면 이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금세 적응이 되었고, 플라스틱 빨대 보다 훨씬 단단해 안정감이 있었다. 또 음료 속에 오랫동안 담가놔도 변형이 생기지 않았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나는 갈대 빨대의 구멍이 넓어 음료가 한 번에 많이 빨리는 것도 좋았다.   


갈대의 흔들리는 모습은 순간순간 바뀌는 마음을 비유한다.  갈대 같은 마음도 가끔 플라스틱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분명한  갈대 빨대가  마음을 또 다른 방식으로 흔들어 놓았다는 . 어떤 빨때를 써야 할지 고민하는 갈대 같은 그대들의 마음을 위해 갈대 빨대를 추천한다.


쌀 빨대

두 번째는 쌀 빨대다. 가만 보자, 쌀이면 내가 아는 그 쌀인가? 쌀로 빨대를 만들었다고?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밥상 위에 놓이는 그 쌀이라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쌀은 전 세계 인구의 반이 소비할 만큼 익숙한 식재료이기에, 쌀로 만든 빨대는 어떨지 꼭 사용해 보고 싶었다.


쌀 빨때는 끝이 약간 휘어져있고, 촉감은 매끄러웠다. 빨대를 음료에 넣어두었더니 점점 녹는다. 음료를 다 먹은 후에는 빨대 아랫부분이 휘어져 있고, 음료에 닿았던 부분이 흐물거렸다. 만약 뜨거운 음료 속에 쌀 빨대를 담근다면 5분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구멍 크기는 기존 플라스틱 빨대와 거의 동일했고, 무향이었으며 음료도 잘 빨렸다.


쌀 빨대는 음료와 함께 먹을 수 있다. 빨대를 오독오독 씹는 재미가 일품이다. 쌀 빨때로 음료를 먹으니 한 끼를 먹는 기분이다. 음료를 다 마신 뒤에 빨대를 먹어버리면 빨대가 없어져 버린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쌀은 우리의 주식이고 떡을 만들고 술을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빨때에도 쓰인다. 쌀 빨때를 먹는 재미에 아이들은 엄마에게 쌀 빨대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단다. 쌀 빨때가 그저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식욕마저 돋워 준 것일까?  


호밀 빨대

마지막으로 호밀로 제작한 빨대를 소개한다. 호밀은 위스키와 보드카, 간장과 된장 등의 원료로 쓰이고, 주로 빵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한다. 또한 호밀의 벼 줄기는 모자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이러한 호밀이 빨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과연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빨대가 될 수 있을까?


호밀 빨대의 장점은 두께가 굉장히 얇다는 점이다. 요구르트 빨대 정도의 두께. 어쩌면 더 얇을지도. 굉장히 가볍고 음료도 무리 없이 잘 빨린다.


문제는 냄새가 강하다. 벼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이며, 음료를 다 마실 때 까지도 씁쓸한 맛과 냄새가 없어지지 않는다. 장점으로 가벼움을 꼽았는데, 가벼운 만큼 내구성이 약하다. 손으로 누르면 '찌익' 하고 금세 갈라져 버려 딱히 실용적이지는 않다.


나의 편안은 누군가의 통증을 유발한다. 환경은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여전히 태평하다. 환경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보는 게 어떨까. 우선 플라스틱 빨대를 풀 빨대로 대체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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