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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용기에 담아주세요

시장에서 개인 용기 쓰기

by 선택지

한 달 전부터 선택지에 글을 쓰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환경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집에서 분리수거하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일을 시작하며 습관을 하나씩 바꾸고 있다. 다회용 빨대를 가지고 다닌다거나 운동 후에 샤워를 해 물을 아낀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들부터.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어 시장을 가야 했다. 나는 종종 시장에서 반찬을 산다. 자주 가는 시장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준비를 했다. 장바구니와 개인용기를 챙겼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찾아온 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붐볐다. 코로나 시기 전 보다 지금이 더 붐비는 듯했다. 시장에 사람이 많아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생선 가게들이 할인을 외치면 행인들은 걸음을 멈췄다.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면 나도 멈춰야 했다. 빨리 걷는 습관이 있고 그 습관은 붐비는 이 시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걸었다. 어떤 반찬을 사야 할지 두리번거리면서.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보였다. 수많은 반찬들이 수많은 비닐로 포장되어있는 광경 말이다. 일회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반찬을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준다. 스티로폼 받침 위에 반찬을 올려 비닐랩을 하고 비닐봉지에 담아 건네준다. 음식물이 묻거나 색이 있는 비닐은 재활용이 어렵다고 한다. 시장은 그런 비닐들 천지인데! 이런 광경을 보면 혼자 중얼거리게 된다. 저 반찬들을 굳이 비닐에 쌀 필요가 있나. 다른 좋은 방법은 없을까.



개인 용기


젓갈이나 마른반찬을 담을 작은 크기의 용기를 챙겼다. 젓갈처럼 부피가 작은 음식도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을 해준다. 큰 부피의 음식을 담을 통이 없어 작은 부피의 음식을 담는 통부터 시작해 보았다.


나는 한 번도 개인 용기를 시장에 가지고 간 적이 없다. 음식을 포장한 비닐을 받아와 집에 쌓아놨을 뿐. 시장에 갈 때 용기를 챙기는 것에는 부지런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챙기자고 마음먹고 챙기는 행위를 하기까지의 부지런함, 용기를 챙겨서 시장에 도착해 판매원에게 용기를 내미는 용기.



반찬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음식들이 보였다. 나는 젓갈을 골랐고 플라스틱 용기를 받고 싶지 않아 개인 용기를 내밀었다. 점원은 플라스틱 포장을 뜯어 나의 개인용기 안에 젓갈을 담아 주었다. 나의 완벽한 실수였다. 나는 플라스틱을 집으로 들고 오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찬가게 안에 반찬이 담겨 있는 저장고가 있고 그 저장고에서 반찬을 떠 내 개인용기에 넣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저장고가 있었다면 저장고의 반찬을 떠서 담아달라고 미리 말하지 못한 내 잘못이고. 플라스틱 포장만 뜯어서 반찬을 옮겨준다면 개인용기를 들고 갈 이유가 없다.



반찬가게를 방문한다면 포장하지 않은 반찬을 개인 용기에 담아달라고 미리 말하는 게 좋다. 미리 말하지 않으면 반찬가게 이모님이 플라스틱 반찬 용기를 열어 개인 용기 안에 옮겨줄 것이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스테인리스 용기에 젓갈을 담으니 젓갈이 더 맛있어 보인다는 것 하나 건졌다.



국에 넣을 콩나물을 사러 야채가게에 갔다. 가게 사장님께 콩나물을 달라고 하자 콩나물을 비닐 안에 담아 주려했다. 나는 준비해온 플라스틱 용기를 꺼냈다. 콩나물 천 원어치를 담으려고 했는데 용기가 작아 다 들어가지 않았다. 콩나물을 용기에 눌러 담고 남은 콩나물은 덜어냈다. 개인 용기가 작아 콩나물을 다 담지 못했지만 국에 넣을 양으로는 충분했다.


야채가게 사장님은 더 담아주려고 애쓰셨다. 내가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한 뒤에야 사장님은 자리로 돌아가셨다. 사장님께 비닐봉지를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지만 사장님은 더 담아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고기 없이 못 사는 나는 떡갈비 가게를 지나칠 수 없었다. 남은 개인 용기 사이즈가 작아 떡갈비가 담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사장님께 이 용기에 떡갈비를 담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자 당연히 담을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내 걱정과 달리 떡갈비가 용기 안에 들어갔다. 용기를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하냐고 물으셔서 장바구니를 가져와 괜찮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장바구니를 챙겼다. 개인 용기를 넣어서 들고가야 했고 과일 담을 비닐봉투를 대신할 수 있다. 안 쓰거나 버릴 예정인 가방을 장 바구니로 지정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흙이 묻어도 괜찮은 가방이면 되니까.


시장 중간에 위치한 대형 마트로 들어갔다. 과일 코너에 놓인 과일들은 대부분 비닐랩이 씌워져 있었다. 그 중 랩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키위를 찾았다. 키위는 박스 안에 낱개로 놓여있었다. 나는 점원에게 장바구니에 키위를 직접 넣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점원은 키위를 먼저 속비닐에 넣고 장 바구니에 넣어야 계산할 때 개수가 확인된다고 했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점원은 계산원에게 말해놓을 테니 장바구니에 담으라고 했다.



비닐봉지를 받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마트를 나왔다. 장바구니를 챙기면 한 바구니에 먹거리를 같이 담을 수 있어 좋다. 반찬과 과일을 각각 비닐봉투에 담았다면 적어도 네 개의 비닐봉투가 생겼을 텐데 말이다. 장 바구니 하나에 전부 넣으니 짐이 많지 않아 들고다니기도 편했다.


다음은 과일 가게. 집에서 나올 때 방울토마토를 사 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장바구니에 토마토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며 과일 가게로 향했다.



나는 과일을 자주 먹지 않아 과일 값을 잘 모른다. 예상보다 가격이 꽤 높았다. 방울토마토 4,000원어치를 샀는데 양이 얼마 되지 않았다. 토마토를 비닐봉지에 담아주려고 하시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알겠다고 하시며 토마토를 비닐봉지에 담아 무게를 재셨다. 무게를 잰 뒤에 장바구니에 토마토만 부어주셨다.



과일을 따로 따로 담을 곳이 없어 바구니에 그냥 넣어야 했다. 시장에 갈 때 개인 용기 외에 작은 가방을 하나 더 가져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챙겨 간 개인용기와 장바구니에 음식이 꽉 찼다. 용기와 바구니를 챙겨서 아낀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가 몇 개 일지 생각해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예상을 벗어난 일들도 있었지만 성공적인 경험이었다. 다음에는 살 것을 고려해서 적당한 용기를 골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환경을 위해 나라도 습관을 바꾸면 환경이 좀 나아지겠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 세상은 바뀐다는 생각으로 더 많이 움직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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