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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택지 Apr 16. 2021

종이 맛 쫙 뺀 리얼 드립

종이 필터 대신 재사용 필터

인류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 그 기간만큼 다양한 커피 마시는 법이 있듯이 내가 살아온 기간만큼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접해왔다.


꼬마였을 때 손님이 오면 엄마는 맥심 인스턴트커피를 내놓았다. 엄마가 평소에 쓰지 않던 귀한 커피잔 세트를 손님 앞에 내놓았고, 나는 커피 마시는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있다 운이 좋으면 따뜻한 물에 탄 프림을 맛볼 수 있었다. 머리 나빠지는 음료인 커피를 입에 댈 생각도 못하다 고3이 되면서 캔커피를 먹기 시작했고 대학 다니며 자판기 커피로 매일 일정량의 당을 채웠다.


지금은 사라진 커피전문점의 주 메뉴인 프렌치프레스에 담아내어 주는 헤이즐넛 커피는 보리차 같은 맹숭함과 향 때문에 즐기지 않았다. 배낭여행할 때 진짜 비엔나커피를 마셔보겠다며 비엔나에 있는 커피점을 들쑤시고 다녔는데 지금은 맛도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국내에 첫 입성한 일리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이런 탕약은 못 먹겠다 싶었지만, 파리에서 지내면서 에스프레소는 식후 땡으로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은 에스프레소를 자주 마시지 않는다. 얼큰한 김치찌개를 점심으로 먹고 난 후에는 아메리카노가 제격이다. 에스프레소를 찾지 않게 되면서 커피 문화는 각 나라의 기후와 음식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유가 진하게 들어간 달달한 베트남 커피는 스콜성 소나기와 습한 날씨에 어울리고 커피가루가 텁텁하게 남아 있는 터키 커피는 향신료 잔뜩 들어간 꼬치 요리와 어울린다.


언제부터 집에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게 되었는지, 아마 핸드드립 카페가 생기기 시작한 무렵인 것 같다. 그때부터 산지별 원두 맛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도시 교양인의 소양인 듯 여겨지게 되었고, 커피 추출 도구를 파는 곳이 생겨났다. 커피메이커로 내린 커피는 쓰고 탄내 나고 프렌치프레스는 주로 차를 내리는 데 쓰고 모카포트는… 내가 내린 모카포트 커피는 맛이 없어서, 기술이 없는 건지, 집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다 저가의 핸드드립 도구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내내 집에서는 드립 커피를 마신다.


드립 커피를 택한 건 기계가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소형 주방 가전이 부엌 구석구석을 이미 점령해가고 있었다. 커피에 대해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드립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대강의 눈치와 통밥으로 내려 마시다보다 그럭저럭 내게는 만족스러운 맛을 내는 커피 내리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드립 커피 내리는 방식도 다양하더라만 푸어오버라던지 원드립, 나선드립, 점적드립… 인간은 커피랑도 잘 논다. 이름만으로 유추해본다면 나는 나선드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둥글게 돌려 물을 붓고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면 잠시 기다렸다가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다시 물을 붓는 것을 서너 번 반복한다. 필터에는 가능한 한 물이 닿지 않게 한다. 추출된 커피 농도가 옅어지고 물방울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 커피 내리기를 멈추고 추출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부어 적당한 농도를 맞춰 마신다. 이게 내가 커피 내리는 법.


종이 필터를 줄곧 써오다 재사용 필터를 쓰게 된 건 최근 일이다. 커피 필터는 그냥 종이인 줄 알았지 천으로 된 건 생각도 못했는데, 천으로 커피를 걸러 마시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실 당연한 일. 그 클래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게 융드립이고. 제로웨이스트의 바람이 삼베와 소창 필터를 만들어내게 했다. 천 필터를 쓰겠다 한 건 커피 마실 때마다 종이 한 장씩 버리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종이 냄새 때문이었다. 천 필터는 필터 고유의 냄새가 커피에 배어나지 않는다. 그것으로 1차 만족.



예고은삼베 오래 쓰는 친환경 삼베 커피필터

포장 : 종이박스(무포장 선택 가능)

바로가기 3개 세트 10,000원

예고은삼베는 사다리꼴 필터 모양 종이박스에 담긴 세 개의 필터를 묶음으로 판매한다. 재사용 필터지만 평생 쓸 수 없는 노릇일 테니 별 망설임 없이 새 개들이 구입. 온라인으로 구입 시 ‘무포장’ 선택할 수 있어 포장 없이 구입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제로웨이스트샵에서 구입할 수 있어 택배 포장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크기는 한 가지다. 언제부터인지 손잡이가 사라져 버린 내 칼리타 드리퍼 102에 담으면 어중간하게 크다. 크기가 좀 더 크면 가장자리를 접어 드리퍼에 필터를 밀착할 수 있을 텐데. 삼베는 쓰면 쓸수록 커피물이 자연스럽게 들고 크기가 작아진다. 관리는? 귀차니즘을 아이덴티티의 일부로 삼고 있는 내가 쓸만하니 웬만하면 쓸만할 것. 커피를 내리고 커피 찌꺼기를 따로 모아 버린 후 필터는 물에 헹궈 말린다. 가끔 삶아준다. 포장박스에 관리 방법이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커피맛. 종이 필터는 커피 오일을 걸러내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천 필터는 커피 오일을 걸러내지 않아 좀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고 한다. 그러저러한 원두를 써서인지 모르지만 내 입맛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냄새도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이니 종이 냄새 안나는 건 좋다.


최근 합성섬유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천연섬유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천연섬유도 농산물인지라 경작이 미치는 환경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경작지 개발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 막대한 물 사용으로 인한 지구 사막화,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 이러한 문제를 고려할 때 삼베는 천연섬유 중 친환경성이 우수하다고 한다. 빨리 자라 넓은 경작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물 사용량이 면화의 절반, 그리고 살충제와 농약 없이 자연 그대로 재배할 수 있어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뭐 이쯤 되면 삼베로 정착?


상점호화 소창 커피필터

포장 : 잡지 내지

사이즈 : M(2~4인용), L(5~10인용) / 2겹

바로가기 3,900원

소창 제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곳이 다양해지다 보니 소창 필터 찾기는 쉽다. 많은 소창 필터 중 이 제품을 고른 기준이 있다. 소창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곳일 것, 비닐 포장을 하지 않을 것, 고리 역할을 하는 라벨이 있지만 순면으로 될 것. 상점호화 제품 리뷰에 포장에 감동한 이야기가 많았고 그중 “종이테이프에 잡지로 완충재 역할을 하게 넣어주셨더라고요.”라고 쓴 글을 보고 바로 픽했다.


소창 필터는 보통 두 가지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케멕스 드리퍼에 사용할 수 있는 콘 모양 필터와 칼리타 드리퍼에 넣을 수 있는 사다리꼴 모양. 크기 선택은 제작하는 곳마다 다른데, 이곳 상점호화에서는 두 가지 사이즈를 만들고 있다. 칼리타 드리퍼 102 용 M 사이즈 선택. 정련 전에는 종이 필터보다 1cm 남짓 컸는데 정련 후 종이 필터와 크기가 똑같다. 삼베 필터처럼 헐렁한 느낌이 아닌 드리퍼에 꼭 맞는 천 필터를 찾는다면 바로 이것!


삼베 필터는 한 겹으로 되어 있는데 소창 필터는 두 겹이다. 세 겹으로 만드는 곳도 있던데 커피 미분이 걸러지는 정도와 물 내리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커피가 내려지는 속도는 천 필터가 종이 필터보다 빠르고 삼베와 2겹 소창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커피 내리는 시간은 필터의 종류보다 물 붓는 양과 속도가 더 큰 관건. 드립은 역시 손맛이다. 면은 삼베와 달라 천 냄새가 날 것 같았는데 염려와 달리 나지 않는다.


주문 후 제작하는 제품이라 배송이 오래 걸릴 것이라 지레짐작, 기다리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주말 끼고 3일 만에 받았다. 주문할 때 종이 포장조차 필요 없으면 메모를 남길 수 있다. 과탄산소다 한 봉지를 함께 보내주니까 받자마자 바로 정련해서 쓸 수 있어 좋다.  


epoh products 에포프로덕트 에포콘필터S

포장 : 종이박스 + 종이 완충재

소재 : 316 스테인리스 스틸  / 사이즈 : 지름 103mm 높이 95mm

바로가기 35,000원

메탈 필터는 타공 된 모습이 커피가루 줄줄 샐 것 같아 보여 거들떠 안보다, 메시(mesh)가 두 겹으로 촘촘하게 만들어진, 게다가 플라스틱 테두리가 없는 필터를 발견해 써보게 되었다. 천 필터 관리가 어렵다면 메탈 필터가 대안. 다만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메탈 필터는 스테인리스나 금도금으로 되어 있던데 평생 쓸 작정을 한다면야.


하나의 재질로 된 간결한 디자인이 일단 한눈에 쏙 들어온다. 과대포장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포장박스도 깔끔하고 비닐 뽁뽁이 대신 종이 완충재를 사용했다. 에포프러덕트의 epoh는 hope를 거꾸로 쓴 거라고. 커피랑 별 상관없다.


필터만 달랑 사놓고 금방 후회를 하게 된다. 단정하게 예쁜 이 필터에 꼭 맞는 드립서버가 내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강 칼리타 드리퍼에 넣어 쓸 수 있지만 모습은 좀 우습고 컵에 바로 받치기에 필터가 너무 길다. 다시 대강 융드리퍼 서버에 맞춰 쓰기로 한다.


에포콘필터에 커피를 내리다 평소 습관과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밑둥이 납작한 내 칼리타에 익숙해져 있었다. 고깔 모양 드리퍼는 처음 경험한 것. 같은 양의 커피라도 고깔 필터에서는 물을 부을 수 있는 커피분 표면이 작았다. 보통 거품이 올라오다 물이 넘치면 물 붓기를 멈추곤 했는데 거품이 끝없이 올라와 나는 물을 계속 붓고 있었다.


이렇게 내린 커피맛은 깊고 진한 맛. 카페인이 많을 것 같은 맛이다. 천 필터는 종이 필터로 내렸을 때와 비슷한 맛을 냈지만 메탈 필터 커피 맛은 다르다. 좋은 맛인지 아직 판단을 내리진 않았다. 쓴 맛이 나는 걸 안 좋아하는데 향은 많이 나서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쓰고 나서 씻는 것, 편하다. 메시에 커피 가루가 껴 가루 빼내느라 고생할 줄 알았는데 물로 그냥 싹 씻긴다. 오일이 남아 있을 테니 세제로 씻으라 하는데 나는 대강 물로 헹궈내고 가끔 세제로 닦는다. 손에 닿는 느낌은 메시라기보다 PVC 재질 표면을 만지는 느낌. 미세한 철망사 조직이라 타공 철판처럼 단단하지 않으니 모양 망가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융드리퍼에 대해서도 추가로 이야기할까 했지만 관둔다. 관리의 어려움은 소문이 많이 났으니 그렇다 치고 일반 커피용품 파는 곳에서 배송하다 보니 뽁뽁이 쓰레기가 어마어마하여 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맛은 단연 최고. 재사용 필터에 눈도 안 돌리고 종이 필터를 계속 쓰고 있는 정소장이 융드리퍼에는 관심을 가지더라는 것. 물론 융드립은 내가 한다. 융필터 관리도 내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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