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3. 나의 두 선생님

by 퇴근후작가

《내일도 불안할 예정입니다만》

- 불안한 나를 고치지 않기로 한, 아주 개인적인 결정의 기록


Part 3. 화실에서, 나를 그리다 — 온전히 내가 된다


3-3. 나의 두 선생님

- 그림을 배우며, 사람을 배운다


내게는 지금 두 분의 그림 선생님이 있다.

한 분은 화실의 원장님, 그리고 또 한 분은 유화와 소묘를 지도해 주시는 젊은 강사 선생님이다.


원장님과의 인연은 무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열일곱,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해.

노량진의 작은 입시 미술학원에서 처음 연필을 잡고 소묘를 배우던 그 시절, 선생님은 대학을 막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자 막 미술학원 강사 일을 시작하신 초보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이제 유명한 서양화가가 되어 화실을 운영하고 계시고, 나는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상에, 30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선생님은 여전히 내게는 ‘그때 그 선생님’이다.


그리고 또 한 분.

화실의 강사 선생님은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다.

최근 대학원을 졸업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그야말로 감각 넘치는 MZ세대다.

회원들에게는 실력 있는 지도자로, 나에게는 작업의 실질적인 멘토로, 유화에 대한 세세한 조언과 영감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Nordmenn er livredd livet - vargas12_com.jpg


두 분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졌지만, 요즘 나에게는 인생과 작업 모두에 깊이 스며든 소중한 존재들이다.


원장님은 경상도 출신답게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관심 없어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츤데레’ 스타일.

화실에서 마주치지 않아도, 내 그림의 진행 과정을 챙겨주시고 큰 방향을 제시해주신다.

또한 그림 외적인 고민에도 묵묵히 조언을 건네주시는 분이다.

40대인 나를 여전히 고등학생처럼 여기시는지, 한결같이 “넌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시는 그 마음에 늘 마음이 뭉클해진다.

MBTI가 ISFJ인 나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아 쉽게 흔들리는 편인데, 그런 나를 언제나 따뜻하게 다잡아 주시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다.


반면 강사 선생님은 살짝의 쌈마이 정신(?)을 장착한, 거침없고 열정적인 스타일이다.

내가 질문하면 “그건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하며 즉각적인 피드백을 주고, 그림이 막힐 땐 함께 고민해 준다.

무엇보다 요즘 작가들의 작업 방식, 새로운 재료나 기법에 대해 누구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반응해주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요즘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 두 분 덕분에, 유화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 작업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림이 점점 ‘내 것’이 되어간다는 뿌듯함, 그것이야말로 요즘 내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에너지와 지혜를 가진 두 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크고도 감사한 복이다.


어쩌면 그래서 마음이 더 조급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좋은 분들이 옆에서 응원해 주시는데, 나도 조금은 빨리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할 것 같은 마음.


하지만 요즘엔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내가 이 복을 받은 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림을 통해, 혹은 말 한마디로 따뜻한 힘을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인복 하나는 정말 타고난 것 같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붓을 든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도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2. 화실에서는 나는 '젊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