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고 있다.
수면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불안을 다루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한 지는 1년 반 정도 됐다.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매일 컨디션을 관리하며 규칙적으로 상담도 받고 있다.
나름대로는 잘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점점 더 예민해졌다.
처음엔 그게 이상했다.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져야 하는데,
왜 나는 더 흔들리고 더 깊이 아파질까.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림은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도록 만드는 시간이라는 걸.
낮에는 괜찮은 척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럭저럭 하루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 앞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내가 미뤄왔던 감정들이 자꾸 불쑥 나타난다.
덮어둔 마음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나는 그 앞에서 더 이상 괜찮은 척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 변화를 ‘예민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나는 예민해진 게 아니라,
더 이상 마취된 채로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림을 그릴수록 나는 더 깊이 들어가고
그 깊이에서 나는 지금껏 해결되지 않았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괜찮지 않았던 시절, 괜찮은 척하며 살았던
내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자괴감 같은 감정들이 뒤죽박죽되어
지금의 나를 괴롭힌다.
약을 먹고 운동도 하고 상담을 받아도
트리거가 생기면 눌려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그래서 요즘은 거의 매일 숨 막힘을 겪는다.
약을 먹고 나면 몸은 몽롱하다.
잠이 올 것처럼 무겁고 흐릿해진다.
그런데 숨이 막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다.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도 못한 채
그 상태로 얼어붙는다.
약은 이미 내 몸을 잠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숨이 막히는 공포는 내 정신을 끌고 지옥으로 데려간다.
그 순간엔 꿈인지 현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정신이 반쯤 잠겨 있는데 숨은 점점 더 좁아진다.
마치 물에 빠지듯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감각은 늘 나를 같은 곳으로 몰고 간다.
어마어마한 공포. 설명할 수 없는 절망.
그리고 또다시, ‘잠이 무서워지는’ 상태.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들긴 한다.
어떻게든 의식이 꺼지고
그 상태로 몸이 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그렇게 잠이 들고 난 다음날은 얼굴이 엉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다가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란다.
엉망인 얼굴을 보면 다시 밤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그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울고만 싶어진다.
이번엔 좀 나아질 줄 알았다.
선생님께 약도 다시 처방받았고 상담도 꽤 오래 받았다.
그런데도 이런 증상이 또 나타나면, 더 심해지면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제대로 못 살고 있다.
다시 잠이 무서워지고 있다.
나는 이 시간이 지나가면 좀 나아질까 생각한다.
계절처럼, 파도처럼. 어쩌면 또 지나가겠지.
이 고통은 너무 개인적이라 공감을 받을 수도 없다.
잠을 못 잔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잠이야 뭐 좀 설칠 수 있지"
그 말이 나쁜 건 아닌데
그 말로는 내 공포가 전달되지 않는다.
숨이 막히는 밤의 공포는 ‘잠을 좀 설친다’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
혼자 있지 않아도 혼자라는 절망감.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무력감.
이 시간들도 다 지나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