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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근후작가 Dec 20. 2022

정형외과에서 마음건강 처방이라니요?

이렇게 무서운 스트레스, 세 번째 이야기 


이제야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이 글들은 지난 일 년 간의 힘들었던 날들의 기록이다.


원인 모를 불면증이 시작되고 약 없이 잠들 수 없는 날이 이어지면서 여기저기 통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등 통증이었다.


마치 등 어딘가에서 피부를 인정사정없이 당기는 것처럼 결림과 동시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했다.


우선은 통증을 줄여야 했기에 정형외과도 가보고 신경외과도 가 봤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처방받은 것은 진통제뿐이었다.

등이 아프니, 앉아 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잠이라도 푹 자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수면제에 대한 선입견(먹기 시작하면 절대 끊지 못한다)에

잠이 오는지 안 오는지 살펴보다 12시가 넘어 약을 먹고 자는 날들이라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피곤하면 지쳐서 잠들 수 있겠지 생각한 나는 하염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km를 걸었고

또 어떤 날은 15km를 걸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고 등 통증은 여전했다. 


답답했던 나는 병원 쇼핑 다니듯 여러 병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못 찾겠다면 찾을 때까지 다니리라 생각하며

집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사 결과를 천천히 보신 후

나의 증상에 대해 어떤 얘기도 없이 조용히 들으시더니 다른 병원과는 좀 다른 질문을 하셨다.


"혹시 잠을 못 자나요? 그래서 우울감이 있진 않나요?"


그래서 그렇다 말씀드리니...

진료 책상 서랍 속에서 어떤 약통을 꺼내시며


"저도 이 약을 10년 전부터 먹고 있어요.

 신경안정제인데, 마음이 힘들고, 불안함이 몰려올 때는 이 약을 먹어요. 

 그럼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하루를 좀 견딜만합니다"


"지금 환자분이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하니, 그게 우울증으로 연결되었을 거예요.

 우리 몸이 굉장히 신기한 게, 마음이 많이 힘든데 내가 알아차려주지 않으면

 몸에서 통증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아프니 제발 나 좀 챙겨줘, 봐줘, 내 몸에서 악다구니를 치는 거죠.

 그러니 더 이상 병원은 찾지 말고 환자분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나는 순간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정형외과에서 지금 마음의 건강 얘기를 들은 거지?

이미 불면증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도 다니고 있었지만

특별한 상담 없이 수면제만 처방해주었을 뿐 상담도 진행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정형외과 선생님의 마음 건강 처방이라니...


"수면제를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조금은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아요.

 오히려 몸 피곤하게 한다고 10km씩 걸어 다니는 게 몸에는 더 안 좋을 수 있어요"


"스스로를 들들 볶지 말고, 편안하게 만들어주세요.

 몸과 마음이 너무나도 지쳐버렸는데...

 내 기준을 저 높은 곳으로 올려놓고

 회복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거... 그게 몸을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어떻게 매일매일 긴장상태로 열심히만 살 수 있겠어요.

 가끔은 막 풀어지기도 하고, 빈둥빈둥 놀기도 하면서 본인을 좀 풀어놔보세요.

 그런 시간들이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할지도 몰라요"


이날 나는 어떠한 처방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형외과 선생님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는 이거였다.


"살면서 많은 일들이 생겨요.

 잠을 못 자는 날이 생길 수도 있고 이유 없이 아플 수도 있어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플 수 있어요.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건데, 

 증상을 너무 크게 받아들이면 그게 오히려 병의 원인이 됩니다"


 "아플 때 다시 건강해지겠다고 너무 애쓰지는 말아요.

 너무 애쓰는 것도 결국은 날 힘들게 하는 것 일수도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나의 불면증과 원인 모를 통증들을 고치겠다고

온갖 병원 쇼핑을 다니며 쉴 새 없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증상에 갇혀버린 채로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선 채로

내 몸의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새로 아픈 곳은 없는지

마치 탐정처럼 긴장상태로 보내고 있었다.


이후, 나는 나를 좀 내려놓았다.


잠을 못 자면, 그래 일단 몸을 좀 쉬게 해줘야 하니

당장은 수면제의 도움을 받으면서 몸을 편안하게 해 주자 생각했고

등 통증이 있을 때면, 아~ 지금 내 마음이 힘든가 보구나

지금은 좀 쉬게 해 주자. 특별한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며칠이 지났을까.

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통증에 신경을 덜 쓰니

통증이 덜 느껴지기 시작했고

수면제의 도움으로 잠을 푹 자기 시작하니

곤두섰던 신경도 좀 가라앉기 시작했고

2주 정도 지나니 거짓말처럼 수면제 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못 견딜 정도의 등통 증도 어느새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살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증상에 매몰되어 내가 오히려 병을 키운 셈이었던 것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여기저기 아프긴 하지만

좀 몸이 안 좋은 날에는 불안해하기보다는 내 몸을 좀 쉬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증상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결국, 나의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날 나는 정형외과에서 마음 선생님을 만났다.


정형외과 치료를 받은 건 아니라 명의(?)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이렇게 잘 돌볼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 나에게는 정형외과 의서 선생님이 명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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