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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작가 Sep 19. 2023

퇴근 후, 그림을 그리는 마음

나는 요즘 꿈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퇴근길 난 항상 급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종걸음을 재촉한다. 화실까지는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을 못 맞춰 지하철을 한 번 놓쳐버리기라도 하면 화실 도착시간이 15분 이상 늦어버리기 때문이다.


퇴근길인데 좀 늦는 게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직장인이라 퇴근 후에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나에게는 15분이란 시간은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내려 가고,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한 번에 두 걸음씩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그리고 화실에 도착해서는 잠깐의 시간도 아까워 화장실도 한번 가지 않고 작업에 집중한다.   


나는 어떤 마음을 그림을 그리는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일반 사무직으로 20년 가까이 일을 해왔다. 하지만 몇 년 전 격동의 사십춘기(사십 대 + 사춘기)를 겪으면서 많이 아팠고, 이후 나는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는 거라 손 감각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의 감각을 금세 찾아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한동안은 유명한 그림을 따라 그리는 모작을 하다가 몇 달 전부터는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제를 정하고 좋았던 순간은 잠시 뿐, 아이디어부터 시안 계획, 조색, 구성, 배치, 밀도 올리기까지... 스스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해결해 나가며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떠나요" oil on canvas, 50cm * 50cm 

꿈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요즘 내 머릿속은 그림에 대한 생각이 한 80%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유화를 처음 시작했지만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마음이 굉장히 급해졌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과정을 즐기면서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눈만 높아져서 계속 쫓기듯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꿈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무슨 일이든 한 번에 한 발자국씩 밖에 갈 수 없고 그만의 단계가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나는 이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숙제를 해내듯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답답하다 생각하면서도 앞선 마음을 잡아두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같은 화실에 있는 작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유화를 그리면서 맞닥뜨리는 소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조언도 구하고 그들의 작업을 조심히 살펴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이미 작가인 그들은 붓칠 한 번도 그냥 하는 법 없고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작가를 꿈꾸는 나에게 많은 자극을 준다. 


남들은 퇴근 후, 그림을 그리는 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냐고들 물어보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회사 생활도 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림을 오래 그릴 수 있도록 경제적 제반을 마련해야 하기에 회사를 그만둘 수 없고 퇴근 후 시간에만 그림을 그리기에 시간을 좀 더 압축해 밀도 있게 사용할 수 있기에. 그래서 오늘도 퇴근 후 종종거리며 그림을 그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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