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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작가 Mar 15. 2024

번트 엄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하는 물감 중에 번트 엄버(BUNT UMBER)라는 색이 있다. 


엄버라는 색은 갈색 계통에 해당되는 물감으로 '번트 엄버(BUNT UMBER) '는 이탈리아 옴브리나(Umbria) 지방에서 나온 흙을 사용하여 만들다. 어떤 흙을 사용했으냐에 따라 엄버 앞에 다른 단어가 붙는데, 생 흙을 사용하면 로우 엄버(RAW UMBER), 구운 흙은 사용하면 번트 엄버(BUNT UMBER)가 만들어진다.  


번트 엄버(BUNT UMBER)는 이처럼 흙을 태워 만든 색이기에 '지구의 색'이라는 낭만적인 표현으로도 불린다. 흙에서 나온 색이기 때문에 인간의 첫 번째 물감이라고도 하며 실제로 신석기시대의 동굴벽화에는 흙으로 그린 다양한 톤의 엄버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번트엄버


캔버스에 젯소가 다 마르면 번트 엄버를 묽게 해서 백스케치 작업을 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작업을 하고 나서 본 작업에 들어가면 색이 좀 더 풍성하게 쌓이며 안정감 있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색을 만들 때 그 색이 전체의 흐름을 깨거나 뭔가 조금 아쉬울 때 번트 엄버를 조금씩 섞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도 번트엄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의 색' 같은 사람,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변에 스며들 수 있는 사람. 

주변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원체 까다로운 기질이 있고, 나만의 경계(바운더리)가 확실한지라

"친절하고 굉장히 밝아 보이는데, 뭔가 상대방이 긴장을 하게 만든다"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 나이기에

흙처럼 단단하지만 따뜻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여러 단계 속에서 다양한 재료를 시도해 보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하는 시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돌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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