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오전, 중간고사를 하나 마쳤다. 학교 주변 복합쇼핑몰에서 세일을 시작한다고 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마트에서 과일, 채소 20% 할인을 한다고 해서 가서 과일, 채소들을 사서 집에 왔다. 게다가 행사에서 스톡홀름에 가는 페리 티켓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쇼핑몰에서도, 집에 오는 것까지도 정말 평화로웠고 다른 날과 다름이 없었다.
중간고사를 보느라 잠이 조금 부족해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교환학생 톡방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루 동안, 핀란드 내 코로나 확진자가 60명에서 110명 정도로 늘었다. 이로 인해, 핀란드 정부에서 대학에 500명 이상의 사람이 참여할 예정인 행사들을 취소하기를 권유하고, 정부행사들은 이미 취소 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교환학생 행사들과 여행들이 취소되고, 핀란드인들의 국민 스포츠이자 자부심인 아이스하키 월드 챔피언십도 취소가 되었다. 금요일 수업도 코로나로 인해 출석 점수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메일이 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고 심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사우나를 예약해둔 상태라, 사우나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냉장고가 비어서, 장을 봤어야 했는데 어두운데 비까지 오니, 내일로 장보는 것을 미뤘다. 이렇게 내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홍콩친구와 연락을 해보니, 내가 오늘 다녀온 그 복합쇼핑몰의 모든 마트에 휴지가 품절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 쌀, 물을 사듯 이곳에서는 휴지를 찾았다. 이미 저녁 10시를 향해가고 있어서, 마트에 가기는 어려웠다.
3월 13일, 집에서 기차를 두 정거장 타서, 집 주변의 가장 큰 마트에 갔다. 오전 7시에 문을 열자마자 들어갔는데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주말 오후 정도로 꽤나 있었다. 우선 휴지부터 찾았는데, 다행히 가장 큰 마트를 와서인지 휴지가 많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이 키친타월이었고, 뒤편을 보니 현장은 처참해 보였다. 정말 휴지가 조금 남아있어서 새벽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생필품 대란의 현장. / 그래도 행사기간이라 좀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으로는, 혹시 모르니 시리얼을 사둘까 싶어서 시리얼 코너로 갔는데 평소와 다르게 시리얼도 조금씩 틈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대비해서 대용식인 시리얼을 샀나 보다.
빈 곳이 보이는 시리얼 코너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스파게티와 쌀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을 사듯, 이곳에서는 스파게티를 사는 것 같았다. 스파게티를 찾기가 힘들었고, 이곳에서 면이 아니면 밥을 먹어서. 쌀 역시도 빈 곳이 많고 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있던 쌀 한 봉지는 봉지가 터져있어 더 처참해 보였다.
이 마트가 전날인 목요일부터 세일 기간이라서 재고를 충분히 뒀을 텐데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유럽 선례를 보고 두려움에 떨며 음식들을 사간 듯하다. 하지만 그 외의 물건들은 다행히 평소처럼 있었다.
그렇게 장을 본 뒤, 금요일 수업을 듣고, 아시아마트로 가서 라면과 여러 식재료들을 샀다. 아시아마트에서 그렇게 긴 줄을 본건 처음이었다. 아마 아시아인들이 본국의 사례를 미리 접했을 테니 급히 아시아마트에 식재료들을 사러 온 듯했다.
집에 와보니 메일이 와있었다. 파견교에서 코로나를 주의하라며 외국에 방문했을 시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니 학교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학업계획은 아직 변경되지 않았지만 필요한 경우 원격학습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본교(한국 학교)에서는 귀국을 강력히 권고하는 메일이 와있었다.
귀국 권고 메일 점점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러 나라의 교환학생들이 많이들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3월 14일, 나와 교환학생을 함께 온 본교 친구가 한국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친구도,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학교가 폐쇄하고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혼란스러움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나는 우선, 이곳에 남기로 했다.
현재 한국까지 가는 여정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오히려 항공기와 공항이 위험한 지역이라고 느꼈다. 중간고사 기간까지 왔기에, 이번 교환학생 학기를 마치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또한, 2달간 핀란드에 있었지만 학업과 날씨로 인해 계획해두고 못해본 것들이 많아, 지금 한국에 가면 내가 너무도 후회할 것 같았다. 핀란드의 봄, 여름을 경험해보고 돌아가고 싶었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한 동양인 차별과 한국으로의 귀국 편이 없어지는 것 정도이다.
기사에서 동양인 폭행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 믿고 있고, 만약 상황이 그만큼 심각해지면 나는 주로 집에 있다가 마트를 잠깐 가는 정도일 텐데 마트와 집은 걸어서 2분 거리이다.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낮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한국으로의 귀국 편이 없어진다면, 이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나는 비자기간이 길고 학기가 끝나고도 숙소에 1달간 더 있을 수 있으니 길게 지켜본다면, 이 부분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WHO 방침에 따라 핀란드 정부는 "마스크는 확진자와 확진자와 접촉하는 사람만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로 인해 마스크=확진자 라는 인식이 생겨 마스크를 쓰는 데에 눈치가 보이고, 정부가 130억을 코로나에 투자했지만 예방책이 한국보다는 부족하다. 그래서 파견교에서 원격강의를 진행한다고 하면 그때는 교환학생 학기를 한국에서도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니, 그때 다시 한국행을 고민할 예정이다.
파견교에서 연락이 왔다. 당장 월요일부터 4월까지 온라인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지만 학기가 5월까지라서 나는 상황을 더 지켜볼 예정이다.
넋두리
'교환학생을 하면서 별일을 다 겪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상황이 원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2달간 여기서 행복하게 지낼 동안 많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위와 같은 불편함을 겪지 않았는가. 그저 조금 늦게 불편함이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