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날들. 질척이는 늪에 발목이 붙들려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캄캄한 기분. 살아간다는 건 자주 아프다. 그럴 때는 멀리 그리고 높이 떠나간 이름들 틈에 섞이고 싶다. 나도 훨훨 날아가고 싶다.
그럼에도 나를 붙드는 것은, 일으키는 것은 결국 삶이다. 버스 창밖으로 흐르는 초록의 물결이 푸르고, 길을 걷다 맞는 햇빛이 따스하고,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기분 좋고, 사람이 사랑스럽고, 아무렇게나 핀 꽃들이 예쁘고.
아침에 찬 공기를 느끼며 일어나면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은 물 한 컵을 마셔야지. 뜨끈한 물이 목구멍을 지나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으며 난 여전히 살아있다고 속으로 외쳐야지. 가슴이 부풀 때까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푹 내쉬어야지. 그러곤 엄마가 끓여둔 김치찌개를 든든하게 데워 먹고 공부를 하러 나설 것이다. 나의 두 발로 땅을 박차며 걸어가야겠다. 뒤꿈치에 힘을 가득 싣고.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환히 웃을 거다. 모두 잊은 듯이. 그렇게 내일도, 다시 내일도 살아야지.
유서를 찢으며.
여기에 머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