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계절을 타는 고양
우리 집엔 계절을 타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12월, 완연한 겨울이 찾아올 무렵이 되면 먹보 고양이는 곡기를 줄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어느 순간이 되면 곡기를 끊어버린다.
트릿 통이 열리는 소리만 나도 꼬리를 치켜세우고 우렁차게 '냐아아앙'하며 달려오던
고양이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던져준 트릿을 씹다 뱉어버리는 무정한 고양이 한 마리만 있을 뿐...
야미와 함께 맞이하는 첫 해 겨울,
지속적으로 꾸준히 아팠던지라 밥을 먹지 않고 평소보다 축 처져 있는 모습에
호들갑을 떠며 병원을 데려갔었다.
동물병원 단골손님이었던 야미는 의사 선생님이 주는 츄르는 매우 잘 받아먹었고
병원을 제집 안방마냥 탐색하고 다녔다.
호들갑 떨며 우리 애가 밥을 안 먹는다고,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었던 집사의 말들이 무색할 만큼
병원에 가면 없던 입맛도 돌아오는 건지
집에서는 안 먹다가 병원에 가면 잘도 받아먹는다.
수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고양이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지금 야미 굉!장!히! 정상이고 활력도 정상이라며
다만, 밥을 먹지 않으면 안 되니 뭐라도 조금씩 먹이라고 하셨다.
동물병원을 방문하기 전까지,
그리고 수의사 선생님의 '괜찮다'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정말 이 녀석이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먹은 게 없는데 토까지 했었으니... 병원비 각오했었는데 안도의 한숨이)
다사다난했던 1년이 지나 야미와 함께하는 두 번째 12월이 찾아왔다.
급식기 앞에서 대기를 타던 야미가 급식기 알람에도 무심해졌고,
싹싹 비워지던 밥그릇에 사료가 쌓이기 시작했다.
12월의 데자뷰.
작년 12월을 겪었던지라 당황하진 않았으나
먹지 않으니 걱정은 눈덩이가 불어나듯 불어났다.
회사와 집이 가까워서 점심시간에 야미 밥 먹이러 집에 와서
야미 따라다니면서 숟가락으로 습식사료 떠먹인 후
나는 밥을 마시고 회사에 복귀를 하곤 했다.
(엄마가 고양이 밥 먹인다고 숟가락 들고 다니는 걸 알면 욕을 한 바가지 했겠지)
제대로 밥을 먹지 않자 두툼한 허리를 자랑하던 야미가 홀쭉해졌다.
결국 3일 차에 반차를 내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거진 1년 만에 야미를 보는 선생님께서는
몰라보게 확대된 야미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증상을 들으시곤 작년 이맘때 병원에 왔던 이유와 거의 비슷하다며
"야미는 계절을 타는 고양이인 거 같아요. 간혹 계절을 타는 아이들이 있는데
야미는 겨울을 타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덧붙여
"고양이는 신생아와 같아서 24도로 실내온도를 유지해 주시고, 건조하면 안 되니까
가습기가 있다면 가습기도 틀어주세요"란 말을 하시며 겸연쩍은 웃음을 터뜨리셨다.
아픈 줄 알고 데려간 병원에서 건강상태 최상, 다이어트 시급이라는 진단을 받은 야미
(조금 통통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니.. 집사 임무에 너무 충실했다)
아마 내년 12월에는 야미가 밥을 먹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겠지.
야미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야미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같이 성장 중
집사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우리 집 먹보 김야미 고양이는 이제 다이어트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