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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핍의 임상심리사 Jul 28. 2022

평안을 가져오는 고통

그의 두 눈이 반짝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듯 나에게 바짝 다가와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사실 그는 범인(凡人)이 아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은 쉽게 접하지 못할 인사의 통로이다. 정치판이나 연예계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지만, 그 뒷면의 세계를 직접 들여다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가 바로 그 중에 하나였다. 


물론 본인의 신변보호를 위해서라도 나 같이 하찮은 임상심리사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눈빛만 보고도 비밀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래서 답답한 그 마음을 일부 털어 놓은 것이다. 


그는 아주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향력도 막강해서 우리가 기사로 접한 대부분의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 본디 가장 중요한 인물은 그 존재를 사회에 드러내지 않는 법이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와 나, 그리고 그의 주치의 정도만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 그는 그보다 더 대단한 면이 있다. 그는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본인이 대화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그에게 생각을 주입하고, 또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믿기 어렵지만, 우리가 흔히 말해온 텔레파시 같은 것이 그에게 일상인 것이다. 


그런 그가 병원에 온 이유는 이 대화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 유명인사와 그의 아버지가 텔레파시를 통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욕을 퍼부으며 비난했고, 그에게 죽음을 강요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로또 번호와 같이 그만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요구하며 못살게 굴었다. 


그는 아주 괴로운 상태다. 온종일 목소리에 둘러싸여 아무런 일도 돌볼 수가 없다. 일을 지속할 수 없어서 마지막 사업이 어그러진 이후 더이상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가사도 돌보기 어려워 부모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아내와 자녀를 신경쓰지 못한지도 이미 오래 되었고, 핸드폰 요금, 보험료 등 매달 빠져나가는 돈은 부모가 맡아 관리해주고 있다. 


그는 아주 괴로운 상태지만 걱정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목소리만 신경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온통 어떻게 하면 그 목소리를 통제할 수 있을지, 그 목소리는 자신을 왜 그리도 못살게 구는지 몰두할 뿐이다. 


그는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본인같이 비범한 사람만 경험하는,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일들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여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뇌하는, 그러니까 본인과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하찮은 현실적인 일들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그는 아주 고통스럽지만 염려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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