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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임상심리사
Aug 27. 2022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어떤 만화 영화에 나왔던 억울한 소년의 눈이었던가. 어렴풋하게 오버랩되지만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는 그 이미지가 나를 답답하게 했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짧은 머리카락, 짙고 검은 눈썹은 본래부터 그 억울한 표정을 위해 가지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는 군인이었다. 실제로 나보다 스무살 남짓 어리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큰 청년인 그가 나는 왜 그렇게 어린 소년처럼만 보였을까. 마치 내가 제 군대 선임과 한통속이라도 되는 양, 반항심 가득한 눈을 하고선 노려보았다. 이 소년 같은 남자는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화가 난걸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한 시간 가량 시간이 흘렀을 때 그가 나에게 화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대화 패턴이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세상에 화나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야박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살았고, 툭하면 손찌검을 했다. 곧 계모가 생겼지만, 사소한 것을 트집잡아 아버지에게 알리는 바람에 매일 같이 맞으며 지냈다. 반항하면 더 심하게 맞게 되어 분한 마음을 욱여 넣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마도 억울했을 것이다. 늘 억울한 감정을 참고 사느라, 사소한 일에도 욱하는 마음이 쏟어지듯 밀려나왔을 것이다. 그날도 그는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잘못이 없는 나는 감정적으로 뱉어지는 말들에 자꾸만 생채기가 났다. 짧은 대답 하나도 가벼이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 사리판단 없이 제 감정에만 빠져있는 그 태도가 소년을 연상시킨다.
그런 소년 같은 대화 방식은 군대에서 엄청난 취약점으로 작용했을 터다. 그곳에서는 그 누구도 다 큰 남자의 소년 같은 행동을 품어주지 않는다. 그들은 야박하고 불공정한 태도로 소년에게 압박을 주었을까. 그리고 소년은 또 다시 억울했을까.
이미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왔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군대도 벗어났다. 야박한 세상은 지나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붙잡아 제 옆에 묶어둔다. 세상이 소년에게 야박한 것일까, 소년이 야박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일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