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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핍의 임상심리사 Aug 31. 2022

불안감은 무력감이었을까 죄책감이었을까

아직 날이 더운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가 두터운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래. 병동은 에어컨 때문에 쌀쌀하니까.


자해를 했어요.

어떤?

팔에요.


아아.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팔을 걷어달라고 요청했다. 거진 유행이다. 병동에 입원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팔에 자해 흔적이 없는 아이를 찾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자살 의도가 없는 자해는 아이들에게 하나의 '간지'처럼 여겨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팔을 걷었을  나는 흠칫 놀랐다. 특수 분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상처가 빼곡하게  팔을 메우고 있었다. 깊은 상처였다. 그제야 아이의 양쪽 귀에 촘촘하게 박혀있는 피어싱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병동 환아들은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전화로 면담을 해야하는데, 보호자인 아버지는 도통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겨우 연결된 전화에서 나는 챠트 기록 이상의 의미있는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병원 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정신과 병원을 전전했다. 초등학교라니.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잠을 자다가도 숨이 막혀서 벌떡 일어나 콜록 콜록 거렸다. 너무 불안해서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못했고,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조퇴와 결석을 반복했다.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도 거의 매일을 텅빈 공간에서 혼자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상처를 내는 이유는 뭐니.

조금 풀려요.

피어싱은 왜 그렇게 많이 했어.

자해를 참을 수 있으니까.


언젠간 죽고 싶어요. 아이는 흐릿한 눈으로 여러번 말했다. 벌써 응급실에도 여러차례 실려갔었다. 인간은 정말이지 무엇이든 반복되면 익숙해지는 걸까.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보고서에 아이가 죽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 뿐이었다.


죽는 거 말고. 지금 네가 가장 바라는 것 한 가지가 이루어진다면 뭐를 하고 싶니.

담배 좀 피고 싶어요.


능청스럽게 웃는 아이를 보며 불안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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