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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핍의 임상심리사 Sep 16. 2022

취약함: 무르고 약하다

창백한 얼굴의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생기 없는 두 눈에 바짝 마른 체형이 그녀를 더욱 취약해 보이게 했다. 취약함. 인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취약하다'는 표현은 그 어떤 단어보다 그들을 잘 설명하는 단어다. 


조현병 환자 안 무서워?


친구가 물었다. 사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학생 때는 조현병의 증상에 흥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환각과 망상은 정신병리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에게 자극적인 단어니까. 


이제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아요. 


수업 시간 마다 교수님들은 이 한 마디를 빼놓지 않으셨다. 정신분열이 주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인해 진단명을 조현병으로 바꾸기로 했다.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뇌의 신경구조가 적절히 조율되지 못했다는 의미를 차용해 만든 진단명이다. 교과서에는 여전히 정신분열증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었고, 교수님도, 우리도 종종 그 단어를 편의상 사용하면서도 과제나 시험지에는 거의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나와 동기들이 조현병을 공부하던 시기는 조현병이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수련생 때라고 다르지 않았다. 바쁜 일정 속에서 불안감을 느낄 새도 없이 환자를 만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조현병 환자를 만나는 것을 기대했다. 조현병 환자 검사 일정이 잡혔을 때, 슈퍼바이저와 선배에게 내가 검사를 하고 싶다며 허락을 구했다. 대학병원일지라도 조현병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또 환자마다 증상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주 만나 그들을 충분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쯤 조현병 환자에 대한 뉴스가 종종 화제가 되었었던 거 같다. 조현병 환자가 죄없는 시민이나 정신과 전문의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창을 열어보면 혐오의 글들이 드글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무섭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내가 만난 그들은 나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않았다. 친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들은 사회적 약잔데. 정말 연약해. 연약하다는 말로도 부족해 취약하다고. 직접 만나보면 바로 느낄 수 있을텐데. 특히나 만성 조현병 환자는 거의 지적 장애 수준으로 기능이 손상되는 경우가 많아 보호자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어린아이같이 순종적으로 지시를 따르고, 불안하고 초조해 하거나, 감정가가 없는 무력감, 그들은 얇은 유리막 같은 인상을 주어 자칫 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게 만든다. 


사회 범죄를 저지르는 조현병 환자는 어떤 이유이든 치료적인 관리가 잘 되지 못한 환자일 것이다. 보호자가 없거나, 환자가 비협조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이거나, 어떤 이유로든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이다. 전문가들 마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에 대해,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시간 남짓 작은 방에 붙잡아두며 코치코치 캐묻고 귀찮은 과제를 지시한 나에게 그녀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 했다. 날개뼈가 삐죽하게 드러난 마른 뒷모습은 엉거주춤한 자세 때문에 더욱 취약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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