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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임상심리사
Sep 29. 2022
며칠간 그녀의 보고서에 매달렸다. 되도록 그녀의 모든 심정을 담고 싶었다. 그녀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왼쪽 팔에 갈고리 처럼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상처가 그녀를 전부 설명할 수 있을까. 희미하게 남아있는 목이 졸린 상처로도 부족하다. 그녀는 죽음을 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꺼내 놓은 Rorschach 카드를 보며 그녀가 입을 틀어 막았다. 역겨워요. 토할 거 같아.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다시 카드를 바라봤다.
물어 뜯긴 짐승 같은데.
그녀가 다시 마른 침을 삼키고 입과 코를 막았다. 카드에서 지독한 악취라도 나는 걸까. 그저 잉크 반점일 뿐인 카드에 완전히 압도당한 그녀가 짧은 호흡을 내뱉었다. 나는 당장에라도 카드를 치워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녀의 보고서를 쓰는 동안 실로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우울감이 나에게 옮아 붙은 거처럼, 이 부담스러운 보고서로 무력해진 나를 발견한다.
십년 전 동생이 죽고, 뒤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녀도 세상을 떠나고 싶어한다. 그녀는 죽고싶다고 하면서 죽음이 무섭다고 했다. 그 무서운 방법만이 최후의 수단이다. 나머지는 모두 막다른 길, 절망이니까.
그녀는 남아있는 가족에게 짐이되고 있는 자신을 끔찍하게 혐오했다. 본인 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이 다시 감당해야하는 감정 또한 그녀가 주는 짐이다. 어느 것 하나 짐스럽지 않은 것이 없나보다.
어쩌다 상처가 저렇게 까지 깊어졌을까. 손목만 깊게 그어버려도 될 일이었다. 손목에서부터 접히는 부분까지 세로로 깊게 상처를 냈다. 모든 과정이 연습이 되었다.
보고서의 첫 문단 부터 그녀의 죽음을 예언했다. 자극적인 단어가 눈에 거슬려 평소처럼 문단의 말미로 옮겨버리고 싶었지만 결국에 그대로 두었다. 내년 이맘 때에도 그녀가 나와 같은 세상에서 숨 쉬고 있을지 상상해 보다가 고개를 털어버렸다.
선생님. 그 환자 보고서 겨우 썼어요.
맞아요. 그러면 힘들죠.
그녀의 잔상이 그대로 보고서에 갇혀 버렸다. 다시 오로지 그녀 혼자 감당해야할 세계만이 남았을 때, 내 역할이 여기까지라고 자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