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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업 Sep 03. 2018

제이팝 신보 소개(9월 첫째주)

킥 더 캔 크루, 후쿠야마 마사하루,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오렌지렌지

여러분, 자기글은 자기가 쓰는 겁니다, 예?


(Single) 킥 더 캔 크루(KICK THE CAN CREW)

'住所'

지난주에 소개한 크레바가 멤버로 속해있는 그룹이면서, 동시에 라임스터(Rhymester)와 함께 힙합을 메이저 신에 정착시킨 팀이 바로 킥 더 캔 크루. 작년 무려 14년만에 화려한 부활식을 거행한 3인조 힙합그룹이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15년만의 싱글인데, 힙합을 넘어 펑크와 알앤비를 포용한 블랙뮤직으로 향하는 애티튜드를 엿볼 수 있는 노래다.


베이스의 슬랩, 펑키한 기타리프, 뭉근하게 퍼져나가는 신시사이저와 절정을 견인하는 현악사운드까지. 1960~70년대 소울뮤직을 기본 공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래핑과 보컬을 통해 안정적이면서 인상적인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 요즘 워낙 시티팝 붐을 필두로 한 레트로와 블랙뮤직 차용이 잦은 편이라 시도 자체가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으나, 단순한 복각이 아닌 자신들의 틀을 활용해 흥미롭게 재창조해냈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기존 팬과 그들을 몰랐던 대중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만한, 좋은 음악은 시대를 타지 않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베테랑의 고도의 한 수.


(Single)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 雅治) '甲子園'

보통 코시엔(甲子園)으로 통칭되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의 100회째의 개최를 기념해, 중계사인 NHK측에서 "일본인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고교야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염원을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도 이것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라는 모토 아래 처음으로 제정되는 테마곡이다. 개인적으로 코시엔이 100회째를 맞았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여태까지 테마송이 없었다는 사실에도 새삼 놀랐다. 누구에게 곡을 의뢰할까 고민하던 차에, '고향', 노력' '가족' 등을 키워드로 놓고 보니 결국은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낙점되었다는 후문.


곡은 기존의 그가 보여주던 것과는 다른, 굉장히 스케일 큰 편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마디로 록 오케스트라라 할까. 인트로부터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의 이중주가 코시엔 특유의 뜨거운 마음을 160Km 직구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어 플룻과 드럼이 손발을 맞춘 마칭밴드 사운드는 대회 전면에 깔려 있는 각오를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관악기를 필두로 디스토션이 가미되어 진행되는 스윙리듬의 간주, 후반부의 장엄한 마무리 등 대회를 상징하는 여러 마음과 분위기들이 각자의 음악적 테마를 지닌채 하나의 형태로 어우러지는 그 과정의 카타르시스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는 곡. 본인으로서도 부담감이 상당했을 텐데, 그 압박을 재료로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새삼 그가 훌륭한 뮤지션임을 깨닫는다. 이와 더불어, 재킷으로 사용된 어릴 적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귀여운 모습에도 주목.


(Single) 하루카토미유키(ハルカトミユキ)

'朝けはエンドロールのように'

상처와 아픔을 더욱 드러냄으로서 오히려 위안을 받게끔 해주는, 강렬한 스타일안에 깨질듯 섬세한 감성을 녹여내는 2인조 밴드의 새 싱글.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11/14에 발매될 싱글의 선공개곡인데, 그들만이 보여주는 어둡고 침잠한, 그러면서도 그 끝에 가느다란 빛이 새나오는 세계관이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곡이다. 신스와 키보드를 중심으로 콜 앤 리즈폰스 형식으로 전개되는 1절에 이어, 모든 것을 방출하는 듯한 두꺼운 디스토션의 맹공이 사람의 한 구석에 있던 자물쇠를 일시 해제시키는 듯한 경험을 선사할 것. 올해를 살다보면 이 노래에 위로받는 날들, 꽤 많을 것 같은 예감이다.


(EP) 이리(iri) < Only One >

지난주에 소개했던, 마침 이번주에 EP가 나온 프라이데이 나잇 플랜스가 장르적으로 극단에 치달아 있는 아티스트라면, 그는 어느 정도 대중과의 교두보를 염두에 두고 전개해나가는 스타일이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비트와 악기소리, 몽환적인 보컬 이펙팅 등 트렌디한 R&B를 축으로, 일본의 정서를 한스푼 가미한 결과물들은 그리 낯설지 않으면서도 일견 새롭다. 랩과 보컬에 모두 능한 역량이 기타 솔로잉과의 조화를 일궈낸 'Come away'이 특히 그러하며, 대신 가요의 작법에 좀 더 몸을 누인 'Only one'이나 '飛行'는 아티스트만의 색깔이 살짝 묻혀있는 감이 있어 다소 아쉬운 트랙들. 모험보다는 시도의 성격에 가까운, 정도를 잘 파악하면서도 그 스타일리시함을 잃지 않은 준작.


(Album) 게스노키와미오토메(ゲスの極み乙女)

< 好きなら問わない >

'그 사건' 이후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지만 정작 게스로는 인상적인 결과물을 남기지 못한 카와타니 에논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네 번째 작품. 2집이었던 < 両成敗 >(2016)의 어마어마했던 완성도를 떠올리면 완전히 성에 차지는 않지만, 3집에서 완전히 무너졌던 폼을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은 정규작이다.


간주에 클래식인 베토벤의 '운명'을 도입하는 등 여러모로 'キラーボール'을 떠올리게 만드는 첫 트랙 'オンナは変わる'를 시작으로, 관악기와 신스, 현악의 도입으로 이전엔 없던 세계관을 창출하는 'はしゃぎすぎだ街の中で僕は一人遠回りした'까지 첫인상으로는 꽤 높은 점수를 획득. 오르간 소리가 전면에 깔리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戦ってしまうよ', 화려한 건반연주와 트럼펫이 맞물려 어느때보다 파워풀한 외관을 선보이는 '颯爽と走るトネガワ君' 등 카와타니 에논의 창작력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회복해 그 퀄리티를 문제없이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발군의 연주력을 지니고 있는 멤버들과의 합은 뭐 이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 3집에 실망했던 이들이라면, 아마 잃었던 신뢰가 다시 회복될지도.


(Album) 오렌지 렌지(ORANGE RANGE)

< Eleven Piece >

언제적 오렌지 렌지야? 할 분들이 계실줄로 안다. 뭐 개인적으로도 4집 이후로 이들에게 음악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진 않다. 다만, 전성기를 지난 밴드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뜻을 흔들림 없이 관철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거의 20년에 가까워 오는 지금 다시금 반등을 맞고 있다는 사실엔 리스펙트를 보내기에 전혀 아깝지 않다.


3년만에 선보이는 11번째 작품은 꾸준히 도입해왔던 일렉트로니카를 중심으로 보다 대중적인 측면을 강조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다. 'Ryukyu wind'는 페스티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법한 업템포 트랙이며, 'イケナイ太陽'가 떠오르는 록 트랙 'センチメンタル'에서는 여전한 활달함을 만끽할 수 있다. 이처럼 록과 전자음악의 테이스트가 교차하는 흐름 안에서, 그동안 원숙해진 이들의 음악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솔직히 최근의 그들은 본인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대중에게 잘 전달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 Panic Fancy >(2008) 이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정규작임과 동시에 '오렌지 렌지 다움'이 무엇인지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작품으로 명명하고 싶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좋은 트랙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오랜 팬으로서 반갑고 기쁠 따름.


(Album) 마바누아(Mabanua) < Blurred >

오오하시 토리오, 어썸 시티 클럽, 사카이 유, 후지와라 사쿠라, 요네즈 켄시,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유즈... 모두 이 앨범의 주인공인 마바누아의 프로듀싱을 거친 가수들이다. 이처럼 그는 솔로 가수이기 전에 이미 드럼 연주자로서, 그리고 프로듀서로서 영롱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정말 쉬지 않고 세션과 음악작업을 이어가는 와중에 선보인 세번째 정규작은, 힙합도 라운지도 일렉트로니카도 어반알앤비도 아니면서 그 공통의 분모로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내는 역량의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니시하라 켄이치로와의 공작에서 선보였던 재즈힙합의 무드가 전반에 깔려 있지만, 그럼에도 곡마다의 차별점을 확실히 가져가며 여러 빛깔의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 리버브를 짙게 가져가는 말랑말랑한 음색은 편안함 속의 그루브를 추구하는 음악의 의도와 맞닿아 있으며, 처음엔 연기와 같았던 이미지들이 감상을 거듭할 수록 점점 짙은 선으로 변해가며 듣는 이의 마음속에 결코 얕지 않은 그림을 그려낸다. 오래 곁에 두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루의 안식을 찾고 싶을 때, 그 끝에 함께 하기에 어울리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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