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선업 Oct 03. 2018

제이팝 신보 소개(10월 첫째주)

아지캉, 다오코, 크리프하이프, 캬리파뮤파뮤 등

(Single) 아시안 쿵푸 제너레이션 (Asian Kung-fu Generation) ‘ボーイズ&ガールズ'

요즘 곳치를 보면 그렇게 동네 삼촌 같다. 예전의 앨범들이 뭔가에 쫒기듯 발산하는 치열함의 보고였다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젠 여유와 관조를 품고 가야할 길을 슬쩍 인도해 주는 모습이 보여서 그런가 보다.


유유자적한 디스토션 위로 흐르는, 'We've got nothing'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억지스럽기는 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게 삶 속 의지로 정착해버려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빨리 발을 내딛기 보다는 한걸음을 무겁게 걷는 지금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최신 버전으로 리뉴얼된 아지캉. 그렇게 또 다른 방법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을, 그리고 일본 록 신의 위를 거닌다. 문득, 나도 그들 같고 싶어졌다.


(Single) 다오코(DAOKO) '終わらない世界で'

사실 가진 역량에 비해 너무 많은 푸쉬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소속사에서도 스타성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요네즈 켄시 프로듀싱의 '打上花火'의 대히트 이후 지속적인 거물급 아티스트와의 태그를 추진 중에 있는데, 이번에 낙점된 것은 무려 일본 음악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프로듀서 코바야시 타케시.


죽은 이도 살려낸다는 지휘자의 손짓 아래 현악과 자연스럽게 매칭되는 그녀의 음색이 신비스럽게 울려 퍼진다. 숨소리가 70% 이상이었던 '위스퍼 보이스'에서 벗어난 덕분에 한결 듣기 좋으며, 선율도 또렷해 '다오코의 가창'이 가장 이상적으로 부각되는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식 넘버링 싱글이 아닌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의 주제가로 발표된 곡이나, 지금까지 접한 그녀의 노래 중 '가수'로서의 존재감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은 노래.


(Single) 덴파구미.잉크(でんぱ組.inc)

‘プレシャスサマー!’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이기도 한 'おつかれサマー!'의 뒤를 잇는 여름송!이지만 여름 다 지나갔는데... 4인조 밴드인 위너즈(Wienners)의 타마야니센로쿠쥿파센토(玉屋2060%)가 곡 전반에 참여한 곡으로, 업템포의 계절감이 시원스럽게 다가오는 곡이다.


베이스의 슬랩과 드럼의 킥드럼 연타가 주는 타격감이 일품이며, 후렴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신스루프 또한 멤버들의 보이스 컬러와 잘 맞물리며 총천연색의 아이돌 월드를 펼쳐 보이고 있다. 호시노 겐이나 스미카가 떠오르는 서정적인 인트로로 초반에 승부를 결정짓는 'エバーグリーン'도 추천곡.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게 또 알차게 꾸며져 있어 짧은 시간동안 큰 만족감을 선사해주는 싱글이다. 하지만 여름이 다 지나....

(Single) 챤미나(ちゃんみな) 'Doctor'

올 여름 섬머소닉 등에 출현하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한일 혼혈 래퍼 '장미나'가 선보이는 근 1년만의 싱글. 이 또래의 래퍼들이 그렇듯 트렌디의 정중앙에서 파생된 간결한 비트와 랩 스타일을 통해 유행에 민감한 동세대들의 지지를 독차지할 준비를 끝낸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카리스마 있는 무대와 대비되는 버라이어티에서의 귀여운 모습이 현아를 떠오르게 만드는 아티스트이기도. 이전에도 브런치에 쓴 적이 있지만, 한국에 왔으면 당연히 걸그룹 멤버가 되었어야 할 이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행보를 굉장히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프로듀서는 전작 'My name'에서도 함께 한 적이 있는 JIGG.


(Album) 크리프하이프(クリープハイプ)
< 泣きたくなるほど嬉しい日々に >

얇디 얇은 고음 위주의 음색과 일정하지 않은 음정.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오자키세카이칸의 보컬 스타일은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이다. 분명 좋은 곡을 만들 수 있는 밴드임에도 얼마간 그들에게 집중하지 않았던 건, 나조차도 그런 가창에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일테다. 이전의 기대감을 모두 배제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른 5번째 정규작은, 예상을 웃도는 뛰어난 정규 앨범이라는 인상을 준다. 냉소에서 비롯되는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선율과 목소리의 밸런스, 곡 패턴의 다양화 등을 고려함으로서 그간 느껴졌던 매너리즘을 완전히 극복하고 있다.  

풍성한 베이스가 화려한 솔로잉을 탄탄히 받쳐주는 안정된 느낌의 '今今ここに君とわたし'크런치가 강하게 걸린 메인 리프를 필두로 ’さくら散るさくら散る~'로 시작되는 차분한 훅이 이별의 감정을 어느 노래보다 정확히 또 처절히 표현하고 있는 '栞', 동료 밴드인 프레데릭이 연상되는 리듬의 인트로가 흥미로운 'おばけでいいからはやくきて', 이번엔 도쿄 카랑코롱의 전매특허인 딜레이감을 품고 있는 사운드 메이킹이 돋보이는 'イト' 등 여러 바리에이션을 통해 폭넓은 크리프하이프의 세계를 펼쳐보여내고 있는 수작이다. 좀처럼 적응이 힘들었던 이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은, 입문작으로는 최고의 선택이 될 밴드의 재출발점.  


(Album) 캬리파뮤파뮤(きゃりーぱみゅぱみゅ)
< じゃぱみゅ >

패밀리 컴퓨터가 생각나는 8비트 칩튠으로 야심차게 시작하는 캬리의 신작은, 두번째 트랙부터 급격하게 힘을 잃는다. 오리엔탈 정서가 만재한 'キズナミ'는 사실 얼마전 선보인 퍼퓸의 신보 < Future Pop >에서도 엿볼수 있었던 스타일의 곡. 이처럼 한때 '카와이컬쳐'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그 기세가 예전같지 않은 지금, 예전으로 돌아가자니 진부하고 새로운 걸 하려해도 결국 '나카타 야스타카'의 세계를 맴돌 뿐.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きみのみかた' 역시 최근의 퍼퓸 앨범과 성격이 많이 겹치며, 동양적인 요소를 전반에 배치한 '演歌トナリウム'와 본래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고자 한 '原宿いやほい'는 익숙함보다는 재미없음으로 그 목적지가 귀결지어진다. 첫번째 트랙에서도 활용한 칩튠을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활용한 박력만점의 '音ノ国', 80's 신스팝을 캬리식으로 멋지게 재현해낸 'とどけぱんち' 정도가 성과랄까. 그래도 나카타 야스타카의 꾸준함만큼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옅어진 캐릭터성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해결되지 않은 과도기의 작품.


(Album) 테토(teto) < 手 >

2016년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인디신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활동을 망라하는 첫 풀렝스 앨범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작품. 중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충동과 상처로 잠식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을 선율로, 가사로 표현한 15개의 트랙이 빼곡히 그리고 치열하게 담겨있다. 굳이 다듬지 않은 거친 디스토션과 모든 정서를 일관된 톤으로 부르기 보다는 삐쭉한 생각들은 삐쭉한 대로 내지르는 밴드의 스타일이 직관적으로 그리고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작품.

EP < dystopia >의 수록곡이었던 '暖かい都会から'의 스피디함을 그대로 내재한 채 끝간데 없이 폭주하는 대표곡 'Pain pain pain', 펑크 사운드와 코러스의 맞물림이 기분 좋은 전주와 함께 절규에 가까운 후렴이 밴드의 지향점을 가리키는 '拝啓' 이 두 트랙만으로도 올해 나온 어떤 록 앨범이라도 소위 '발라버릴 듯한'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준다.


인트로와 솔로 프레이즈의 언밸런스가 미묘한 불편함을 일으키며 초장에 범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첫 곡 'hadaka no osama', 역시나 변칙적인 코드워크가 인상적인 '市の商人たち', 키보드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기반으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슬로우 넘버 '忘れた'까지. 깎이고 다듬어져 나오는 아티스트에게서 찾기 힘든 즉흥성과 충동, 개성적인 표현법이 타고난 대중적 감각과 어우러진 대단한 작품으로 마감질되어 있다. 실로 오랫만에 만나보는 날것의 마스터피스.


매거진의 이전글 제이팝 신보 소개(9월 넷째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